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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갈맷길 2.0 <3> 가이드북 더 정교하게

시·종점만 알려주는 길 지도… 다른 진입코스 찾기 힘들어

  • 박창희 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1-10-17 20:32:40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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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평이하고 전망이 좋은 영도 봉래산 둘레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 장산 너덜길

- 복잡한 출발점에 단순한 안내, 갈래길 많지만 선 하나로 표시

◇ 봉래산 둘레길

- 출발·도착점 단 1개로만 표시, 다양한 접근방법 제시 필요

- 부산시 "지도 보완할 계획", 부발연 용역 후 대안 마련

걷기꾼들에게 길 지도는 자동차의 네비게이션과 같다. 든든한 길 지도 하나 쥐면 여행이 편안해진다. 전문가들은 "길 지도를 보면 그곳의 탐방로 관리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갈맷길 지도는 개선의 여지가 많다. 두 종류의 길 지도가 나와 있으나 어느 것도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지도 하나만 들고도 갈맷길을 맘 놓고 걸어가게 할 수는 없을까.

■장산너덜길이 어디지?

해운대 장산에는 전국에 자랑할만한 멋진 산 허리길이 있다. 갈맷길 중의 한 곳인 장산너덜길(13.4㎞)이다. 부산시가 만든 길 지도에 의지해 따라가봤다.

출발점이 반송도서관으로 나와 있다. 부산도시철도 4호선 영산대역이 있는 곳. 반송도서관 앞에선 누구나 당황한다. 길은 보이지 않고 시가지 건물만 즐비하기 때문. 이곳은 아랫반송으로, 장산에 가려면 윗반송까지 가서 반송 경동아파트를 찾아야 한다. 주민들에게 물어 물어 찾아낸 곳은 경동아파트 옆의 소로. 장산너덜길 안내판 옆으로 좁게 난 길을 따라가야 한다. 초행자들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장산에 들어서면 무성한 숲길이 나타난다.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 갈맷길만을 고집하며 걷기가 어렵다. 거미줄처럼 얽힌 길이 결국은 서로 통하지만, 갈래길이 나올 때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스럽다. 간혹 만나는 갈맷길 리본이 그마나 위안이다. 갈맷길 지도에는 경동아파트~체육공원 1㎞ 구간에 달랑 선 하나가 그어져 있다.

장산너덜길은 시·종점부에 갈맷길 종합안내판이 있고 이정표 9개가 설치돼 그나마 안내체계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부실한 지도를 이정표가 부분적으로 보완해 주지만, 체육공원~돌탑(2.2㎞), 억새밭~중봉 갈림길(2.3㎞) 구간에선 몇차례 헤매야 했다.

갈맷길 지도는 시·종점만 뚜렷하게 나타나 있을 뿐, 걷기꾼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

■봉래산 둘레길 진입로는 딱 한 곳?

갈맷길 트래킹 맵에는 출발점을 어울림문화공원 한곳만 표시해 놓은 데다, 길 안내 역시 친절하지 않다.
영도는 탐방로의 보고다. 부산항 남쪽에 방파제처럼 버티고 앉아 앞쪽은 도시화가 많이 이뤄졌지만, 남서쪽은 섬의 자연성이 살아 있다. 남항을 벗하며 걷는 절영해안산책로와 중리 해안길, 태종대 일주도로 등은 걷기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삼신할매가 산다는 봉래산에는 호젓한 둘레길(7.3㎞)이 열려 있다. 길이 평이한데다 부산 남항과 북항을 골고루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봉래산 둘레길 지도를 들고 답사해본 결과, 이곳 역시 지도가 허술했다. 지도에는 영도 어울림문화공원이 출발점으로 나와 있다. 시내버스 70, 71, 508번을 이용하여 와치 종합사회복지관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여기서 BMC 아파트 뒤의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산불초소와 철망을 넘어서면 본격 둘레길이 시작된다. 초입만 찾으면 한바퀴 돌아 원점 회귀하므로 길 잃을 염려도 별로 없다.

하지만 출발점을 달리 잡아야 할 경우, 지도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둘레길 곳곳에 도로와 정류소가 있음에도 애오라지 어울림문화공원에서만 출발하라는 식이다. 실제 많은 걷기꾼들은 남항 전망대와 덱 산책로가 있는 75광장이나 목장원 앞에서 둘레길로 진입하고 있다. 아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둘레길 진입 코스를 잡겠지만, 지도에 의지해야 하는 외지인들은 둘레길을 찾아가기 어렵다. 갈맷길 지도에 관련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의 길'이란 단행본을 집필 중인 좌상훈 '사람 사는 세상 연구소' 대표는 "갈맷길을 거의 다 섭렵했는데 기존의 지도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서 "보다 정교한 걷기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걷고싶은부산 이성근 사무처장은 "길 지도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어린이가 갈림길에서 망설임없이 정방향 역방향 모두 찾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고, 다양한 현장 안내체계가 함께 갖춰질 때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용역 후 보완 계획"

탐방로 개설과 관련, 전국 어느 지자체보다 발빠른 행보를 보여온 부산시는 올초 갈맷길 21개 코스가 정해지자, 3월 중순 접이식 갈맷길 21선 안내도 7만7000부, 책자형 가이드북 3000부를 각각 발간해 배포했다. 이들 지도는 관광안내소나 시내 호텔, 주요 관공서에 비치돼 있다. 부산시 그린생활지원계 송종홍 계장은 "갈맷길 개설 후 간단한 지도라도 있어야겠다고 판단해 1차적 정보를 담아 2종의 지도를 제작했다"면서 "갈맷길의 연륜이 짧은 만큼 아직 다듬고 보완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갈맷길 조성 및 관리운영 실시계획' 용역을 진행 중인 부산발전연구원은 가이드북 개선 및 보완의 필요성을 인식, 대안을 마련 중이다. 부발연 강기철 연구위원은 "요즘 1000분의 1 정밀 항측도를 들고 갈맷길을 답사하고 있다"면서 "전체 지도와 코스별 상세 지도가 담긴 가이드북 제작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 연구위원은 "갈맷길의 경우 제주올레나 북한산 둘레길처럼 하나의 틀에 의해 완결되지 않고, 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한 측면이 있다"면서 최적의 관리방안을 수립해 정책에 반영토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타 지역 모범사례

- 5만분의 1 지도 강화나들길, 일일이 수작업으로 길 표시
- 제주올레 4종 세트 내용 알차
- 佛 토포 가이드 연 40만권 판매

길 안내가 정교하고 상세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는 강화나들길 지도의 한 부분. 5만분의 1 지도를 바탕으로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만든 안내도다.
길 지도(트래킹 맵)는 아직 모범답안이 없다. 각 탐방로 관리단체 및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가이드북이나 길 지도를 발행하고 있으나, 형태나 내용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접이식 안내도의 경우, 앞면에는 전체 개념지도가 들어가고 뒷면에는 구간별 간략한 약도와 교통·관광 정보가 소개되는 식이다.

전국의 길 지도 중 길 전문가들이 잘 만든 모델로 추천하는 것이 강화나들길 지도다. 역사의 섬 강화도 전역에 조성된 강화나들길은 현재 8개 코스(총연장 146㎞)가 열려 있으며, 관리 전담 사단법인도 있다. 이곳의 길 지도는 A3용지 두장을 이어붙인 크기로, 국토지리정보원 발간 5만분의 1 지도를 바탕으로 일일이 수작업을 하여 완성한 안내도다. 제작자인 인천 심디자인 심민섭 대표는 "공간적 요소인 도로, 명소, 지명 등을 살리고 가장 최신 길 자료를 활용해 이용자 편의 위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강화나들길 지도가 잘 만든 것으로 소문나자, (사)한국의 길과 문화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성 중인 해파랑길 지도를 심디자인에 제작 의뢰했다. 심 대표는 "묘한 인연으로 현재 해파랑길 부산 구간(오륙도~기장 고리)의 갈맷길 지도를 만들고 있다"면서 "한달 뒤엔 시안을 볼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올레의 경우, 현재 4종류의 가이드북을 내놓고 있다. 올레 패스포트를 사면 가이드북과 지도 2장을 함께 준다. 4종 세트 가격은 1만5000원. 가이드북만 사면 5000원인데, 내용이 비교적 알차다. 올레 전체 지도는 길을 걸을 때 어디쯤인지,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지도에는 또 식당, 숙소, 교통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과 연락처가 정리돼 있다. 지도 뒷면에는 각 코스의 특성, 난이도, 전체 경로, 지점별 볼거리가 소개돼 있다. 모두 걷기꾼들에게 유용한 정보들이다.

길 지도의 세계적인 모델은 프랑스 랑도네협회에서 발행하는 토포 가이드(Topo guide)가 꼽힌다. 랑도네(randonnee)는 '오랫동안 산책하듯 걷는 운동'을 뜻하며, 총연장 18만㎞의 국가 단위 탐방로다.

현재 280종이 발간된 토포 가이드에는 랑도네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다. 지도는 말할 것도 없고 지형적 특성, 구간별 소요시간, 동·식물상, 대피소, 숙박시설, 주의사항이 100~200쪽 책자에 빼곡히 들어 있다. 책자는 한 권당 8.5~15유로(한화 1만4000~2만4000원)지만, 1년에 40여만 권이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다.

가이드북과 관련, 부산 갈맷길은 가야할 길이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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