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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9일 전북 익산시 원광대 총장 집무실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과 함께 전망을 밝히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 개성공단 실무회담 단계별 합의를
- 외국기업 입주 어려워 국제화 과욕
- 獨 통일과정처럼 北 지원 늘려야
- 나는 합리적 보수·중도라고 생각
- 국회 대화록 공개 추진은 잘못
- 남북관계 정상화하려면 덮어야
- 朴 대통령, 미래연합대표 시절
- 방북했던 것처럼 용단 가능성
- 류길재 장관 소신 갖고 일해야
"남북관계는 쉬운 것부터 풀어가야 하고 대화를 해가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실무회담 등으로 남북에 대화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지난 9일 정세현(68)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남북관계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들어봤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정 전 장관은 이날 전북 익산시 소재 원광대 총장 집무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비판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관계에 용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학자 출신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 대해서는 "키신저처럼 학자적 소신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 전망은.
▶이 쪽에서 회담 수석대표에게 달성해야 할 목표를 얼마나 주느냐에 달렸다. 대통령이 개성공단 운영의 국제규범을 직접 이야기 했으니까 그 범위 안에서 회담을 하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기업인들이) 10일 설비점검을 하고 이후 또 가는 식으로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다음 협상에서 조율할 것이다. 서너 번 회담을 여는 식으로…. 이틀 만에 회담을 끝내라고 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으로 넘어가는 식이 돼야 한다.
-개성공단의 국제화, 발전적 정상화는 어떻게 보나.
▶통일부 장관 시절, 개성공단 첫 삽을 뜨고 인건비를 결정할 때 대비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면 안전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남북협력기금으로 개성공단을 개발했다. 부지의 불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는 토지공사로 하여금 이익을 남기지 않고 실비로 제공하도록 했다. 3.3㎡ 당 14만9800원이었다. 세금으로 공단을 만들고 중소기업이 가도록 한 것인데 외국기업을 끌어들인다면 특혜가 된다. '대북 퍼주기'가 아니라 '대외 퍼주기'가 된다.
개성공단은 노동집약 산업이 주를 이룬다. 미국 일본은 노동집약 산업을 하지 않고 중국은 개성공단에 들어올 이유가 없다. 북한에게 만만하지 않은 외국기업이 어디 있느냐. 없다. 일단 우리끼리, 우리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합작기업(한국+외국) 비슷한 것을 만들어 국제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기업들이 오너인 것들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 국제화를 하겠다는 것은 현 단계에 비춰 과욕으로 보인다.
-남북 통일을 독일 통일 과정에 비춰보면.
▶동독은 예속되지 않기 위해 서독의 지원을 안 받으려 했다. 서독은 여러 가지 명분으로 지원을 받도록 권고했다. 서독의 지원이 일상화되면서 동독은 의존성이 생겼다. 그때 (서독이) '이것 저것 고치자, 이것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방식을 써보지도 못하고 이 방식이 옳으냐 그르냐를 놓고 싸우는 데 10년이 걸렸다. 개성공단을 일단 가동시키면서 (일정 정도 수준이 올라가도록 해서) 그때 떡을 들고 협상하자고 해야 한다. 북한이 말을 듣게 하려면 떡을 들고 '이거 욕심나지?' 이렇게 해야 한다.
-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는.
▶로직(논리)이나 레토릭(수사)으로서는 괜찮다. 신뢰는 신뢰를 갖자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의심하면서도 만나서 사귀어 보니까 '의외로 괜찮은 면이 있어, 이것 저것은 마음에 안 들지만 똑부러지게 믿을 수 있어'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신뢰와 진정성을 어떻게 보이나. 보완하며 생기는 것이다. 진정성이라는 것은 계속 왕래·접촉하는 과정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일단 만나서 쉬운 것부터 합의하고 이것이 이행되는지 확인해가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해야 신뢰가 생긴다. 점진적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북한 비판을 자주하신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했지만 나는 합리적 보수? 중도 그 정도다. 그 쪽에서는 진보로 쳐주지도 않고 보수 쪽에서는 진보나 종북좌파라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통일원에 들어가 김영삼 청와대 비서관을 했다. 북한 사람들한테 할 말하고 남북 회담할 때도 대놓고 싫은 소리하고 글 쓸 때도 비판한다.
-민주당 측에 남북관계를 조언한다면.
▶민주당이 억울한 것은 알지만 풀 텍스트를 공개하게 되면 앞으로 남북관계를 참 어렵게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을 해서 남북관계를 제대로 하려면 빨리 덮어야 한다. '우리하고 대화하면 이런 일 없다'라고 해야 하고 북한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도 그러면 안 된다. 이성을 찾아야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군인 출신들에 둘러싸여 제 목소리를 못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 영향을 받았다. 2002년 5월 박 대통령이 미래연합 대표 시절 방북했을 때 만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평양에 가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어머니를 그렇게 잃어 (북한에 대해) 적개심을 가질 만한 가족사가 있는데 정치적으로 크지 않으면 택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 대통령은 (향후 남북관계에서) 본인이 방북했던 것과 같은 용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류 장관은 나이가 적지만 장관은 장관이다. 국무위원 서열도 통일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보다 위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한다. 통일부의 존재이유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북한학자로서 북한을 오랫동안 들여다 본 이론적 배경으로 설득해야 한다.
키신저가 실무경험이 있어서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성공했느냐. 키신저가 그야말로 미중관계를 개선하는 데 획기적 역할을 하고 국제정치와 관련해 발언권을 행사한 것은 학자로서의 소신을 대통령에게 입력시켜 자기 생각대로 대통령이 움직이도록 끌고 갔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주눅들어서는 안된다.
# 정세현은 누구
- 현장·이론 겸비 대북전문가
- 진보로 알려졌지만 北 비판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국민의정부 마지막, 참여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남북관계 전문가다. 중국 연구에 관심이 많아 냉전기에 자유중국이었던 대만으로 유학을 다녀왔을 정도다. 이후 그는 모교인 서울대에서 '모택동의 대외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서 몇 안되는 현장과 이론을 겸비한 대북 전문가로 꼽힌다.
정 총장은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가 공산권연구관, 대화운영부장을 지냈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역임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다"면서 "통일원 시절 중국 사회주의와 북한 사회주의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면 윗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원광대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원광대를 중국문제 특성화 대학으로 선언하고 올해 한중관계연구원을 발족했으며, 총장인 자신이 연구원 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연구원 산하에는 법률·정치외교·통상·역사 등 4개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다.
진보 진영의 대북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 총장은 사실 반공 강사였다. 아직도 그는 북한에 대해서도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보수 진영의 인사들처럼 '미북관계'라고 하고 '북미관계'라고 하지 않는다. '미북관계'라는 용어는 외교부 '워싱턴 스쿨'(미국 라인) 인사들이 주로 쓰는 용어다.
그는 "북미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북한을 편드는 것 같아서 그랬지만 (사실은) 습관"이라고 말했다.
1945년 5월 북만주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부친의 고향인 전북 임실에 가서 성장했다. 저서로는 '모택동의 국제정치사상' '남북한 통일정책 비교' '정세현의 정세토크' '정세현의 통일토크' 등이 있다.
※ 프로필
▷1945년 북만주 출생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82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박사 ▷1998년~1999년 제11대 통일부 차관 ▷2002~2004년 제29~30대 통일부 장관 ▷2005~2009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 ▷2010년 제11대 원광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