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더 안 주면 본전 못 준다 협박
사업가 행세를 하며 수십억 원대의 사기 행각(본지 지난 10월 2일 자 8면 등 보도)을 벌인 30대 남성의 '주 무기'는 고급 외제 승용차와 명품 옷, 뛰어난 언변이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고 난 뒤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긋나긋하고 친절한 말투는 사라지고 협박만 남았다. 피해자들은 '본전' 생각에 계속해서 돈을 줬지만 결국 남은 것은 빚과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정모(33) 씨는 지난해 7월 모 백화점 직원인 A(여·53) 씨가 보낸 고객 안내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를 잘못 보내셨다"고 말을 건 정 씨는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한 달가량 문자를 주고받은 후 A 씨와 만났다. 1980년생인 정 씨는 69년생이라고 자신의 나이를 속이고 명품 옷으로 치장한 뒤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A 씨를 왕비처럼 모셨다.
그런 뒤 "강원랜드에 지인이 있는데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30% 이익을 볼 수 있다. 재미삼아 100만 원만 투자를 해보라"고 제의했다. 이에 A 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100만 원을 정 씨에게 보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정 씨는 113만7000원을 A 씨에게 보냈다. 수차례에 걸쳐 정 씨는 투자금에 이익금을 보태 A 씨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정 씨는 강원랜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게 정 씨는 A 씨와의 만남을 이어가며 신뢰를 쌓았고 상당한 친분 관계로 발전했다. 그제야 정 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정 씨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부실기업을 인수해 되팔면 7배의 이익이 남는다. 일반인을 상대로 사채를 빌려주는 금융사업도 한다"며 투자를 요구했다. A 씨는 10개월에 걸쳐 16억5690만 원을 정 씨에게 전달했다. 정 씨는 "돈을 달라"는 A 씨에게 "외국에서 돈이 들어와야 하는데 압류가 걸려 있어 풀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돈을 더 안 주면 투자금 중 한 푼도 받지 못한다"고 협박까지 했다. 정 씨는 같은 수법으로 10명의 여성에게 사기 행각을 벌였다.
정 씨의 범행 대상에는 남성도 끼어 있었다. 외제 스포츠카 동호회에서 만난 남성에게는 중국 사업 투자와 대전 지역 모텔을 사들인다는 명목으로 1억1000만 원을 빌린 뒤 잠적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남성은 그나마 7400만 원을 돌려받았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28일 여성 등을 상대로 사업투자비 명목 등으로 27억 원가량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정 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정 씨는 앞서 지난 19일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두 달 만에 울산에 있는 내연녀 집에서 붙잡혔다. 정 씨는 검거 당시에도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명품 옷을 입고 다녔으며 "무죄다. 변호사를 불러달라"며 뻔뻔함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