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의 철길 위에서 게릴라 공연을 펼친 국악 공연단 들소리 단원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전통문화 공연예술단 '들소리'는 철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들은 지난달 26일 부산으로 왔다. 동해남부선 옛 철길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데 앞장 선 부산 지역 시민단체의 소식을 듣고 동참했다.

들소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단체이지만 부산과 뚜렷한 인연은 없었다. 다만 '소중한 철길을 지키자'는 단원 10명의 뜻을 모아 부산행을 택했다. 들소리 하택후(34) 팀장은 "철길의 아름다운 경관을 지키는 데 예술·문화적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들소리는 시간적인 제약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게릴라 공연을 펼쳤다. 이들이 부산시민들과 함께 만든 장승 13개와 솟대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승과 솟대는 청사포에서 7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장승은 이제 철길을 찾은 시민들이 소망리본을 걸고 사진을 촬영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해프닝도 있었다. "마, 치아삐라." 철길에서 첫 공연을 하던 날 철길 마을 주민에게 들은 말이다. 하 팀장은 "이곳 주민은 80년간 기차 소음 속에서 살았다. 이제 막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북·장구 소리가 나니까 역정을 내셨던 모양"이라고 전했다. 들소리 서미숙(여·39) 이사는 "마침 공연 장소 바로 옆집에 초상이 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조심할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서 이사는 "전국적으로 해안을 낀 철길이 드물다. 너무 조급하게 개발 쪽으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팀장도 "철길이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들소리는 13일 서울로 떠났다. 다음 달부터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지에서 해외 순회공연을 마친 뒤 올해 말 한국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