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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쉬는 동천'(숨동)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서면 영광도서 앞 인공 수로에서 동천 회생을 기원하는 종이배를 띄우고 있다. |
- "한국 산업경제 원천 되살리자"
- 2년 전 의기투합한 시민단체
- 복개구간 현장 누비며 답 찾고
- 정치권·학계 이슈로 이끌어
- 포항운하서 찾은 원대한 비전
- "하천엔 역시 배가 답이다
- 북항~서면~해운대 수로 뚫자"
동천은 부산의 아픈 자화상이다. 표정이 늘 어둡고 우울하다. 중·상류 구간은 콘크리트에 덮혀 존재감을 잃었고, 하류는 오·폐수에 쩔어 숨쉬기조차 버거워한다. 중국 황하의 물은 늘 흐리다 하여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했는데, 동천은 탁하기로 '오십년하청'쯤 될까. 동천 하류에 흐르는 탁류도 실은 절반이 바닷물이다. 해수 도수를 통해 동천은 겨우 하천 행세를 한다.
아, 불쌍한 동천…. 사람들은 이게 밉다고 '똥천'이라고 조롱한다. 누워 침뱉기인 줄도 모르고….
#'숨동'이 나서다
동천은 당감천 부전천 전포천 가야천 호계천 등을 지류로 거느린 길이 8.77㎞의 작은 도심 하천이지만, 기능이나 역할은 매우 크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과 LG의 전신인 락희화학, 그리고 수많은 신발기업이 동천의 물을 받아먹고 성장했다.
말하자면, 동천은 부산경제의 터전, 근대 한국 산업경제의 원천이었다. 과거의 동천보다 미래의 동천은 역할이 더욱 커진다. 동천 주변의 대형 프로젝트들, 즉 부산시민공원과 문현금융단지, 북항 재개발사업 등이 동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계성을 갖는다. 동천 회생을 부산 100년 대계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동천은 '근대 산업경제'의 젖줄이었음에도 한동안 외면되고 잊혀져왔다. 중 상류부는 복개되어 도로 밑으로 들어갔고, 열려 있는 하류는 콘크리트 직벽 속의 하수구처럼 돼 버렸다. 동천의 문제는 동천 자체에만 있지 않다. 동천의 지류들과 동천 유역민, 동천을 따라 형성된 도로망, 심지어 중장기 도시계획까지 모두 동천과 연관돼 있다.
산업화 이후, 동천은 한번도 시민들에게 사랑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것이 동천 문제의 본질이 아닐까. 사랑 부재, 소외에 따른 결핍이 동천을 악화시킨 요인이 아닌가 말이다. '숨쉬는 동천'(숨동)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시민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시민단체다.
태동한지 2년이 되지 않았고 조직도 허술하지만, 이들이 공유한 철학과 실천적 활동은 희망을 던져준다. '오십년하청' 동천에 모처럼 희망의 돛이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다.
#현장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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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앞서 숨동 회원들은 부전천 복개천 안에 들어가 조사활동을 벌였다. 국제신문 DB |
지난해 5월 17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부산진구청 인근의 부전천 맨홀 앞. 맨홀 뚜껑이 열리자 '숨동' 회원 20여 명이 차례차례 사다리를 타고 부전천 지하 박스로 내려갔다. 다소 들뜬 표정의 회원들은 안전모와 손전등, 가슴장화, 마스크 등으로 완전무장하고 있었다. 밑으로 내려서자 거대한 지하 세계가 펼쳐졌다. 높이 3.5m, 폭 10m의 하수관거였다. 빗물과 오수가 분리되고는 있었으나 일부는 오수가 뒤섞이고 있었고, 바닥에는 진흙과 찌꺼기가 쌓여 질퍽거렸다. 이날 시민 답사단은 약 1시간 가량 부전천 지하 복개구간을 답사했다. 답사에 참가했던 한영숙 싸이트플래닝 대표는 "복개된 부전천의 속이 몹시 궁금했는데 의문이 일부 풀렸다"면서 "복개 부분을 걷어내고 재생사업을 펼친다면 서면이 확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부전천 복개천 답사는 '숨동'의 현장조사 활동 중 하나로 이후 한차례 더 이어졌다. 2014년 2월 태동한 '숨동'은 매주 스터디 모임을 가지면서도, 조사가 필요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믿음은 태동 초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숨동'이 초청강연 중심의 '숨쉬는 동천 학교'와 별도로 '동천아 놀자' '동천 알파걷기' 같은 답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것도 현장성 강화의 일환이다.
#동천 발원지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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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희 '숨동' 대표 |
'숨동' 이용희(54) 대표의 하루는 모바일에 자료를 올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학박사로서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이 대표는 매일 카카오톡에 동천 관련 기사나 사진, 현장고발성 글을 올려 회원들과 공유한다. 회원들은 댓글이나 의견을 달아 상호 소통한다. 요즘 숨동의 중요한 일상이다. 이 대표는 "숨동의 정회원은 70명이나 온라인 회원은 약 300명에 이른다"면서 "구체적 자료를 통해 소통을 하기 때문에 가끔씩 온라인 상에서도 생산적 토론이 이뤄진다"고 소개했다.
이 대표는 '숨동'의 가장 뜻깊은 활동 중 하나로 동천 발원지 찾기를 꼽는다. 지금까지 동천은 발원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숨동이 어렵사리 찾아낸 곳은 당감천 최상류인 선암사 뒤편 계곡이다.
"동천을 살리려면 근원이 있어야 하고, 그곳의 상징성을 시민들이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당감천 상류에 신석기 시대 패총이 있으니 먼 옛날 농경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반증이 되죠. 삼국시대 때는 이곳이 동평현의 치소(治所)였고, 선암사 선암바위에서 화랑들이 무술을 연마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여기에 부산의 정중앙 표지석이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대표는 올해 안으로 동천 발원지에 걸맞는 정체성을 정리해 유관기관 협조를 얻어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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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동' 회원들이 꾸린 동천탐사단. |
동천 재생에 대한 관심은 최근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 7월 17, 24, 31일에는 나성린 국회의원 주최로 부산진구청에서 '숨쉬는 동천 릴레이 세미나'가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세미나에선 동천 발원지를 비롯, 수질개선 방안, 시민운동 활성화 과제 등이 심도있게 다뤄졌다. 지난 20일에는 부산상의 대강당에서 이헌승 국회의원 주최로 '동천복원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모두 '숨동'이 주관한 행사였다.
숨동은 지난해부터 '한국 강의 날' 포럼에도 참가하고 있다. 지난 12일 동의대에서 열린 '2015 한국 강 포럼'에서는 안익태 숨동 자문위원이 '동천 수질개선 사업'이란 발제를 통해 동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도 숨동은 지난해 여름 부산시민회관이 주최한 '동천 오작교 세븐데이 축제'에 참가했으며, 올들어서는 경성대 김해창 교수가 주도한 '탈핵 걷기'에도 동참, 사회적 이슈를 동천에 끌어들여 활동 보폭을 넓혔다.
#동천 부활의 꿈
올초 숨동 회원들은 자체 특별 프로그램으로 '포항 운하'를 답사했다. 동천 재생의 구체적 방안과 비전을 찾아보자는 뜻에서였다. 포항 운하는 낙후지역인 동빈 내항과 형산강을 잇는 길이 1.3km의 인공 물길을 말한다. 이 사업으로 포항은 도심 재생과 관광객 유치, 항구도시로서의 이미지 쇄신 등 3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포항운하의 핵심은 막힌 물길을 뚫어 도심형 관광 크루즈선을 띄웠다는 데 있다. 강한 인상을 받고 돌아온 이용희 대표는 핵심은 역시 배였다고 전했다.
"하천에는 역시 배가 다녀야 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포항운하에는 46인승, 17인승 두 대의 크루즈선이 운항되는데 효과가 아주 크다고 합니다. 향토기업이 공동출자하여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수익 일부를 환원하는 공익적 운영 구조도 인상적이었고요. 동천에도 배를 띄워야 합니다."
비전을 말하자면 동천에는 포항 운하를 능가하는 녹색운하 사업이 제시된 바 있다. 부산대 박익민(재료공학) 교수와 동아대 김승환(조경) 명예교수 등이 주장한 이른바 '부산 도심 블루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이 구상은 북항(재개발구역)~동천~서면~부산시민공원~부산시청~온천천~수영강~해운대를 잇는 녹색운하를 열자는 것이다. 총 사업비는 5000억 원 정도 예상되지만 오픈 스페이스를 잘 조성하면 민자 유치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지금으로선 원대한 꿈일 수밖에 없으나 해양도시의 비전을 실현하면서 물류, 관광, 도시재생 효과를 얻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숨동 회원들은 우선은 동천의 절친(절실한 친구)이 된다는 생각으로 손에 잡히는 작은 일부터 원대한 꿈을 찾는 비전 사업까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다. 그러기에 함께 하는 동천학교나 답사가 그 어느 곳보다 유익하고 재미 있다. 숨동의 활동 덕에 숨막힐 것 같은 동천이 조금씩 숨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동천의 밝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