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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20> 시베리아 호랑이

박제로만 남게 된 '조선호랑이'…듣고싶다, 그 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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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위풍당당한 걸음걸이, 강렬한 눈빛을 내뿜는 시베리아 호랑이. 그 모습만으로도 상대를 얼어붙게 하는 무서운 사냥꾼이다. 최기순 감독 제공
- 일제시기 무분별 사냥으로 남한선 멸종
- 목포 유달초교에 박제·전시된 호랑이가
- 국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조선 호랑이'

- 야생동물 다큐 전문가 최기순 작가 등
- 북한에 남아있는 호랑이 보호 지원하고
- 멸종시킨 일제 책임 촉구에 한목소리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찍기 위해 지리산에 잠복한 지도 어언 10개월. 숙소인 절에 지인이 책 한 권을 가져왔다. 국내 최고의 야생동물 자연 다큐멘터리 전문가인 최기순(53·사진) 감독의 '시베리아 야생동물의 비밀'이었다.

표지부터 강한 끌림이 있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눈 덮인 산맥을 배경으로 매서운 표정으로 상대를 얼어붙게 하는 공격성이 전해지는 호랑이. 오래전부터 러시아에 가서 호랑이를 찍고 싶었던 나는 최 감독을 한 번 만나보기 위해 수소문 결과 그의 동생이 강원도 인제군청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형은 러시아로 촬영 떠난 지가 오래됐습니다. 언제 올지 기약이 없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화번호를 남겼더니 보름 만에 전화가 왔다. 월동장비들을 사러 잠시 한국에 나왔다는 것이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서 전시 중인 국내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조선(아무르) 호랑이 박제 앞에서 어린이들이 구경하고 있다.
"그 어떤 책보다 의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로 인사를 대신했다. 최 감독은 1997년 4월 러시아에 첫발을 디딘 후 지금까지 주로 시호테알린산맥 동쪽의 '테르네이'와 '라죠' 지역에 머물며 사라진 야생동물을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최 감독이 호랑이를 어떻게 촬영했는지. 그는 홀로 연해주 원시림의 눈 덮인 나무 위에서 위장막을 쳐놓고 극한의 시베리아 바람을 맞으며 준비하고 연습한 대로 생활하며 애오라지 호랑이를 기다렸다.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촬영을 위해 밤을 지새운 상황과 촬영하는 몇 달 동안의 식사와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들으면서 경외심마저 들었다.

   
러시아 시호테알린 산맥에서 6개월 동안 추적 잠복 끝에 시베리아 호랑이를 만났다. 최기순 감독 제공
3시간 정도 인터뷰 내내 그의 두 눈은 깊은 원시림의 나무를 빼닮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듯한 강렬한 눈빛은 호랑이와 마주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다. 가슴 아픈 얘기 한 토막은 잊을 수가 없었다.

"2년 전 춘천의 육림공원에 있는 호랑이는 나이가 많아 곧 죽을 것 같았어요. 평생 철창 속에 갇혀 구경거리만 죄다 죽을 때가 되었으니 '행복한 죽음을 위해 동물원에서 해방해주자'라는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복잡한 절차와 규정 때문에 호랑이는 아쉽게도 그만 슬픈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지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맹수처럼 누비며 호랑이 촬영을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도전한 최기순 감독.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최 감독의 커다란 두 눈동자가 붉어졌다.

   
영하 30도의 혹한 속, 광활한 러시아 시호테알린 산맥을 맹수처럼 누비면서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생명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도전하는 최기순 감독이 호랑이 동태를 살피고 있다.
그는 한국에는 야생동물 생존권 보호구역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본지 10월 1일 자 '합천 오도산 표범 이야기' 기사를 러시아에서 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1962년 합천 오도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표범을 동물원에 보내지 말고 다시 숲으로 보내고, 오도산 주변을 '생존권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표범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남한에 없는 호랑이가 북한에는 살아있다고 했다. 개마고원에 김일성 생존 당시 '생존권 보호구역'을 정해 관리를 해 오고 있으므로 러시아를 지원하면 두만강을 살리고 국내 야생동물 멸종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보였다. 그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귀에 맴돈다. "누군가는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저라서 행복할 따름입니다."

   
모래 위에 호랑이가 지나간 흔적이 뚜렷하게 나 있다.
취재팀이 지리산에 머물러 있을 동안 예부터 이곳 지리산 일대에 호랑이가 많이 출몰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지리산 아래 동강마을엔 조선 시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관영 차밭이 있었다. 이곳은 옛날 아주 큰 절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마을 아이 하나가 사라졌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봤단다. 그 아이가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 사연을 물었더니 호랑이가 매일 무슨 풀잎을 따와 먹였다는 것이다. 그게 호랑이 차(茶)라 해서 호차(虎茶)라고 불렀는데 그 마을에 점필재 선생이 차나무를 재배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조선 호랑이'는 박제품으로 전남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다. 1908년 2월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 인근에 한 농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아사한 놈이다. 10살 안팎의 수컷으로, 몸통 길이 160㎝, 신장 95㎝, 몸무게 180㎏ 정도였다. 당시 한국에 살던 일본인 하라구치 쇼지로 씨가 죽은 호랑이를 사들여 박제로 만든 뒤 이 학교에 기증했다. 일제강점기 때 사냥 된 호랑이는 호피나 박제로 모두 국외로 반출되었지만, 이 불갑산 호랑이만 남아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호랑이를 촬영하기 위해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튼튼한 나무를 골라 7m 높이에 잠복 텐트를 설치했다. 최기순 감독 제공
우리 땅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유일한 증거물인 박제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희미한 눈동자가 자신들의 종족을 멸하게 한 인간을 증오하는 눈빛처럼 보여 애써 눈을 감았다. 국내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마구잡이 사냥으로 인해 멸종되다시피 했다.

한국호랑이 보호협회 임순남 회장. 그는 2004년부터 매년 3월 1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호랑이 영정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한국 호랑이를 멸종시킨 일본의 책임을 촉구하고 그들의 사과를 받기 위함이다.

야생 동물이 사라져 가는 이유는 인간의 욕심에 기인한다. 비록 오늘은 학교 복도에 전시된 운명이지만 야생동물을 사랑하고 숲을 지키려는 최기순 감독이나 임순남 회장과 같은 분들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인해 고려범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마음껏 활보하는 그 날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글·사진=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okje.co.kr

취재 협조 = 원돈 벽송사 주지 스님·박용수 조류전문가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010-8516-3298).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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