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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22> 청설모

다람쥐의 사촌…인간 먹이에 길들여져 야생습성 잊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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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동백공원 상수리나무 숲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도토리를 먹으면서 땅 쪽을 살피고 있다.
- 등에 줄무늬 없어 다람쥐와 구분
- 겨울잠 안 자고 나무 열매 주로 먹어
- 천적 사라진 뒤 개체수 급격히 증가

- 동백공원 청설모는 사람 경계심 적어
- 먹이 줄까봐 서성이고 수돗물 마셔

- 솔방울 등 딱딱한 열매 까기 재주꾼
- 겨울 나려고 땅 속 비밀곳간에 저장
- 안 먹은 열매 싹틔워 나무와 공생관계

소나무 위에 앉아 솔방울을 잽싸게 돌리며 까는 청설모.
해운대 동백공원에 날쌔게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는 색다른 재주꾼이 등장했다. 다람쥐도 아닌 저 녀석은 대체 누굴까. 청설모다.

다람쥐는 아래에서부터 나무를 타고 올라가지만, 청설모는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마치 특공대가 자일을 타고 거꾸로 내려오는 모습이다. 고개를 수평으로 쳐들고 거꾸로 내려오면 고개가 아프지 않을까 싶은데 동물 중에서 거꾸로 나무를 타는 녀석은 청설모가 유일하지 싶다

쥐목 다람쥣과의 포유류인 청설모는 길이가 10㎝가 넘는, 회색을 띤 갈색의 몸뚱어리와 귀의 긴 털 그리고 꼬리를 갖고 있다. 잣나무 상수리나무 솔방울 등의 종자와 밤 땅콩 도토리 등의 나무 열매, 나뭇잎 나무껍질 등을 주로 먹는다. 나무 위에 집을 짓고 4-10월에 한 배에 3~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다람쥐와 청설모는 외모와 먹이의 종류, 분포지역 등이 유사하다. 구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등에 줄무늬가 있으면 다람쥐다. 청설모는 천적이 사라진 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환경부가 지난 2000년 해로운 짐승으로 지정했을 정도다.

겨울잠을 안 자는 청설모는 동백공원에서 무엇을 먹고 살까. 이곳의 청설모는 다른 곳의 청설모와 달리 사람이 가까이 가도 어느 정도 경계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주위에서 맴돈다. 한동안 지켜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사람들이 돌 위에 집에서 가져온 아몬드와 과자를 올려놓고 가기 때문이었다.

청설모가 물을 먹고 있다, 한번 먹으면 많은 양을 먹는다.
사람이 주는 먹이에 길들어져 이제는 사람이 자주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사람이 던져준 아몬드를 먹는 데 집중한 나머지 가까이 다가가 촬영을 해도 도망을 가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가 먹이를 주면 어디선가 다른 청설모들이 나타나 자기에게도 먹이를 달라는 듯한 시늉을 하며 그 사람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식사 후 녀석들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근처에 있는 수도꼭지 쪽으로 물을 먹기 위해 오고 있었다. 내가 위치한 곳이 수도꼭지 근처여서 녀석은 나를 힐끔 보면서 뜸을 들이며 수도꼭지 쪽으로 선뜻 다가오질 않는다. 나도 숨을 죽이며 잠시 먼 산을 보는 척하며 모른 채 했다. 잠시 후 녀석이 결심한 듯 조심스레 움직인다. 물을 먹을 찰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나자 일순간 나무 위로 쏜살같이 도망가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놀라면 나무 위로 도망가는 습성 그대로였다.

물을 못 먹어 아쉬웠던지 녀석은 나를 계속 경계하면서 수도꼭지 쪽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도 계속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행동하며 녀석의 동태를 끝까지 살피며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결국, 녀석은 수도꼭지 쪽으로 이동해 물을 재빨리 먹고 갔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먹고 있는 청설모.
알고 보니 이곳 수도꼭지는 청설모와 산새들이 물을 먹기 위해 몰려드는 장소였다. 쇠박새, 동박새, 직박구리, 진박새, 박새, 멧비둘기, 까치, 뱁새, 곤줄박이 등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물을 한 모금씩 먹었다. 어떤 놈은 목욕을 요란스럽게 하고 떠났다. 이들 중 청설모가 우두머리가 아닌가 싶다.

청설모는 먹이 저장을 어떻게 할까. 먹이 저장은 겨울철 생존을 위한 필수 행위다. 월동 준비를 위해 먹이를 저장해 두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추위가 엄습하면 숲에선 먹이를 찾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청설모가 열매를 찾기에 분주하다. 녀석은 열매를 나무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 열매를 발달한 앞니로 까는 데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녀석은 열매를 먹지 않고 입에 잔뜩 물기만 한다. 그리고 이동해서 열매를 자신만의 비밀 곳간에 저장해 둔다.

전나무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청설모 모습.
청설모가 솔방울을 까는 장면을 보면 먹는 건지 뱉는 건지 솔방울의 용도가 애매하지만, 솔방울을 잽싸게 돌리며 까는 발동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청설모가 열매를 까는 행동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경험에 의한 것일까. 열매를 까는 청설모를 관찰하자. 열매 껍데기에는 홈이 있다. 경험이 많은 청설모는 이 홈 속에 이빨을 넣을 수 있도록 앞발로 열매를 붙잡는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꽉 깨물어 열매를 쉽게 깬다. 이러한 일을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열매를 쉽게 까는 요령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단 한 번에 열매를 깔 수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청설모의 이런 습성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연구원들은 청설모를 자연상태에서 기르면서 어미가 될 때까지 씨앗이나 딱딱한 열매를 주지 않았다. 이 실험은 청설모가 개암나무 열매를 능숙하게 까는 것이 타고난 것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청설모는 본능적으로 열매를 분별하여 까지만 능률적으로 열매를 깔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행착오에 의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청설모 한 쌍이 술래잡기를 하듯 장난치고 있다.
청설모는 여러 가지 종류의 나무 열매나 과일 씨를 먹는 데, 한 가지 방법만으로 모든 열매를 다 깔 수는 없다. 결국, 이들은 각각의 열매마다 까는 방법을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배워야 한다.

청설모는 날씨가 추워지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자신만의 비밀 곳간에 저장해둔 먹이를 가져와서 먹는다. 청설모가 그동안 먹이를 저장해둔 장소를 다 기억할 수 있을까. 물론 청설모가 찾아내지 못한 열매들이 땅속에 그대로 남을 수 있게 마련이다. 덕분에 땅속에 묻힌 열매들은 싹을 틔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다. 청설모와 나무 열매는 서로 돕고 사는 셈이다. 청설모는 열매를 먹어서 좋고 나무는 자기 열매를 여기저기 퍼뜨려 자라게 하니 좋고. 이런 관계를 서로 돕고 산다고 해서 '공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글·사진=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okje.co.kr

취재 협조 = 박용수 조류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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