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대(오른쪽) 이숙희 씨 부부가 축사에서 암소에게 배합사료를 주고 있다. 이완용 기자
- 송아지 맑은 눈망울 좋아하던
- 농사 문외한 아내가 먼저 귀농
- 2008년 축사 직접 지어 이사
- 남편까지 은행 명퇴 후 합류
- 매일 곁에서 사료·질병관리 정성
- 우수한 유전자 확보 중요성 배워
- 서울 직장생활 아들도 귀농 꿈꿔
경남 사천시 곤양면 소재지에서 축동면 방면 지방도로 10여 분 달리면 대진리 어류마을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산골짜기로 500~600m 더 가면 2층의 관리사 겸 주택이 있고 그 앞에는 '이숙희농장'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이곳이 정용대(60) 이숙희(61) 씨 부부의 한우 농장이다. 부인 명의의 농장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부산에서 은행에 근무하던 남편보다 먼저 농촌으로 들어와 축산으로 귀농을 시작한 부인 이씨가 영농법인을 만들고 축협 조합원으로 활동하려다 보니 농장 이름이 필요했고 그래서 농장 명칭에 자기 이름을 넣었다.
은행원이던 남편은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마다 귀농을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부인 이 씨는 달랐다. 하고 싶은 일은 일단 시작하고 보는 그는 친정 동네에 빈 축사가 매물로 나왔다는 남동생의 말에 덜컥 일을 저질렀다. 귀농하려면 축산으로 적당한 소득을 올리고 농촌생활도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 "소도 모르고 소를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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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숙희 농장'에서 사육 중인 소들. |
부인 이 씨는 2005년 9월 곤명면 초량마을에서 180평의 축사에 생후 6개월 된 암송아지 5마리를 사 넣으면서 귀농을 시작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는 송아지가 마냥 좋았다. 눈망울이 크고 맑은 녀석들을 바라보는 자체가 즐거워 반려동물로 착각할 정도로 축사를 드나들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관계로 밥 먹고, 잠자고, TV 보는 일 아니면 송아지와 놀았다. 처음 1~2년은 그랬다.
소 배설물을 손수레에 싣던 중 배설물 무더기에 넘어지길 자주 했다는 이 씨는 소의 배설량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남편 정 씨도 금요일 저녁이면 부산에서 사천으로 달려와 축산 일을 거들며 귀농을 준비했다.
송아지는 자라 어미 소가 되고, 또 송아지를 낳고, 주변에서 송아지를 팔겠다면 사 모으고 해서 3년 만에 31마리로 늘어 축사가 비좁아졌다. 그러다가 2008년 말 두 번째의 큰 변신을 시도했다. 초량마을의 좁은 축사를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있자 곤양면 대진리 어류마을로 옮기기로 했다. 축사를 지을 때 자재를 주문해 직접 지었다. 이 씨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축사 일 탓에 인부를 따로 고용하는 것보다는 남편이 나서는 게 낫겠다 싶었고 결국, 정 씨는 명예퇴직을 택했다.
■ "세상에 어디 쉬운 일이 있던가요"
처음 송아지 입식 때 마리당 350만 원을 주고 샀다. 당시 시세가 최고가일 때 산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시세가 얼마든 잘 키워서 잘 팔면 된다고 여겼다.
어찌하다 보니 번식우와 육우를 모두 사육하게 됐다는 부부는 소가 새끼를 낳을 때 신경을 많이 쓴다. 유산이나 폐사하면 모든 게 끝장이기 때문이다. 송아지는 호흡기병과 설사병에 유의해야 하고 임신우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일반 소와 격리해야 한다고 했다.
부부는 축산을 시작한 뒤 단 하루도 쉬지 못했고, 집안 경조사 때에는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거나 부부 중 한 사람은 남아야 했다. 공부도 많이 했다. 정 씨는 농업기술센터 한우과정 1년, 경상대 최고경영자과정 1년, 경남과학기술대 마이스트 2년을 공부했다.
■ 축산 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
축산을 제대로 하려면 우수한 유전자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종축개량협회가 한우의 개별 체중과 배체장근단면적(등심 크기), 등지방 두께, 근내지방근을 일일이 재고 근친교배 여부를 감정해 최상 품종을 유지하도록 컨설팅해 준다. 이를 믿고 따르기만 해도 절반 이상은 성공이라고 한다.
배합사료를 주로 먹이지만 볏짚이나 건초 같은 조사료와 생균제(소화 촉진제), 영양제 등을 첨가해 소화 기능이 뛰어난 소로 키우면 육질이 좋아진다. 종합비타민제도 투여한다.
건초는 수입품을 써도 볏짚은 농가에 주문한다. 연간 550~600개 정도 곤포사일리지가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개당 5만5000원 선에 샀는데, 비쌀 때는 6만5000원 정도 된다. 남편 정 씨는 곤포사일리지가 들어오면 다음 날 전액 현금으로 결제한다.
■아들도 부모 따라 귀농을 꿈꾸다
부부에게는 남매가 있다. 딸은 출가했고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데 아들도 벌써 귀농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부모가 즐겁게 살면서 괜찮은 소득을 올리자 영농후계자가 되고 싶어한다. 서울 태생의 며느리도 함께 오겠다니 말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부부는 아들이 귀농할 것에 대비해 축사를 증축했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450여 평이던 축사를 2011년에는 600평으로, 지난해 780평으로 조금씩 늘렸다. 이사 올 때 31마리던 한우가 지금은 송아지를 포함해 230마리에 달한다.
솟값은 수송아지가 300만~350만 원, 암송아지는 200만~250만 원이고 육우는 A++등급을 받으면 마리당 1000만 원, A+등급은 800만 원에 육박한다. 이들 부부의 월평균 소득은 줄잡아 1500만 원 정도. 그래서 귀농인이 아니라 농촌에서 창업한 부부로 보였다. 이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