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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싹삼 농사를 짓는 홍은표(왼쪽) 박문자 씨 부부가 새싹삼 온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완용 기자 |
- 대기업 다니다 명예퇴직 선택
- 두부장사·당구장 등 운영하다
- 하동에 내려와 버섯농사 시작
- 적자 허덕이다 4년 만에 접고
- 새싹삼 재배 도전 고소득 올려
경남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에 귀농해 새싹삼 농사를 짓는 홍은표(54) 박문자(52) 씨 부부. 그들의 귀농 스토리는 실패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오뚝이 인생 그 자체다.
홍 씨는 경기도 화성이 고향이고 용인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았다. 농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고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살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지금 시골 농부로 살고 있다.
홍 씨의 원래 직장은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그룹 삼성SDI. 젊고 건장한 사원을 필요로 하는 회사 특성상 나이가 들자 은근히 퇴사 압박을 받았다. 39살 때인 1999년께부터 노골적인 말까지 들어오다가 42살 때인 2003년 아예 지방(양산)으로 발령받자 19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명예퇴직을 택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까지 아이가 셋이라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귀농을 결심했더니 처남이 처가와 가까운 지금의 자리를 소개해 줬다고 한다.
■ 퇴직 후 두부 장사, 당구장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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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라고 있는 새싹삼. |
홍 씨는 퇴직 후 처음 1년간 놀며 무얼 할까 궁리하다가 경기도 수원에서 즉석 두부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돼 직장 다닐 때보다 수입이 좋았다. 아파트 주민이나 부녀회 등에서도 잘 해줬다. 그러던 중 2, 3명이던 두부 장사하는 이가 3년쯤 지나니 20여 명으로 늘어나 경쟁도 치열했다. 경쟁이 심해지자 술판까지 벌어지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 나중에는 아파트 입주민이나 부녀회에서 싫다며 출입을 막았고 장사는 형편없었다. 하루 100만 원까지 달하던 매출은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결국, 두부 장사를 접었다. 2600만 원에 사들인 기구들은 200만 원도 안 되게 넘기고 손을 털었다.
이번에는 용인에서 당구장을 했다. 당구대가 11개였는데 처음에는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밤과 낮이 바뀐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막내 동생뻘 되는 대학생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게 싫었다. 담배꽁초를 바닥에 함부로 버리고 짬뽕 국물이나 치킨 양념을 당구대 카펫에 닦으면 눈이 뒤집혔지만, 참을 수밖에 없어 마음의 병이 생겼다. 돈도 귀찮고 사람도 싫어졌다. 그래서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고 싶었다.
■ 새송이버섯 농사로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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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싹삼을 담은 용기. |
귀농을 결심한 홍 씨는 처음에는 경남 남해의 폐교를 빌려 수련원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휴양과 스포츠를 겸한 레저사업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에다 용인에 아파트도 있어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공고까지 했던 폐교 임대 계획이 하루 전 철회되는 바람에 준비했던 5억여 원을 쓸 데가 없었다. 그래서 처남에게 농사지을 땅을 부탁했고 지금의 자리를 사들였다.
홍 씨는 13필지의 작은 계단식 논밭을 2개의 큰 필지로 만들었다. 생각지도 않은 토목 공사비로 2억여 원이 들어갔다. 10동의 패널하우스와 전기, 냉장시설, 지하수 등을 준비하는 데 2억5000여만 원이 더 들어갔다. 새송이버섯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경험이 없어도 쉽게 재배할 수 있고 수익도 많다는 권유에서다. 버섯농사 자체는 어려움이 없었다. 온도와 습도만 맞춰주면 쉴 새 없이 자랐다. '시작부터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은 딴판이었다. 인건비와 경비에 금융비용까지 겹쳐 매달 적자였다. 농사는 풍년인데도 돈이 없어 쩔쩔맸다. 초기에 시설비를 워낙 많이 들이다 보니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귀농하려는 아들을 극구 말리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해 4억여 원을 더 끌어와 고비를 넘겼으나 그래도 한 달에 700만~800만 원은 적자였다. 홍 씨는 아마 그때 아버지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귀농을 접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급기야 버섯 가격도 폭락했다. 너도나도 앞다퉈 새송이버섯 농사에 뛰어든 결과였다. 버섯 종균을 한 번 주입하면 300여만 원이 드는데 한 달에 10번 정도 주입한다면 3000만 원이 필요한데도 판매대금은 2000만 원도 되지 않았다. 4년을 버티다 두 손 두 발 들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싹삼 도전
몇 달을 쉬다가 2011년 여름 충남 서산에서 백합농사를 하는 한 귀농인이 새싹삼도 함께 재배하는 것을 보고 관심을 보였더니 판로가 확보되지 않으면 망한다며 말렸다. 그러나 홍 씨는 새송이버섯을 재배한 시설이 있어 음지식물인 새싹삼 재배가 쉬울 수 있고 버섯 거래처가 확보된 까닭에 새싹삼으로 전환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 문제는 흙이었다. 습기를 좋아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토양이 필요해 대학의 벤처기업을 통해 흙을 사들였다. 물과 공기도 중요했다. 양질의 지하수를 공급하고 환기에 공을 들였는데, 이젠 빛이 문제였다. 백열등이나 일반 형광등은 실패했다. LED는 비용 부담이 엄청나 망설였다. 1칸에 3억 원이라는 견적이 나왔는데 10칸이면 30억 원…. 그러다가 식물용 형광등이 있다는 걸 알았다. 1개 동에 1500여만 원으로 재료를 사 설치했다.
2014년 1월 재배에 성공했다. 빛을 해결하니 의외로 시험재배 기간이 짧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또 망했다. 판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1t 트럭 3대분의 새싹삼이 나왔으나 수출도 되지 않았다. 흙이 묻어있는 식물이라 검역 등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친지와 지인들에게 시식용으로 나눠주고 나머지는 진액으로 만들었다.
새옹지마. 2015년 초 메르스 사태로 대박이 났다. 면역력이 높다는 인삼이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을 빚었다. 또 북천면 소재지에서 해마다 개최되는 메밀꽃축제와 코스모스꽃축제 덕에 숨통이 트였다. 지난해에도 3억여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금은 시설 일부만 사용하므로 매출은 연간 10억 원도 가능하지만 수요를 봐가며 재배하는 까닭에 부부가 감당할 정도의 일만 하고 있다.
2008년 초 처음 귀농해 지금까지 쏟아부은 액수는 모두 15억여 원. 홍 씨는 "짧은 기간이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역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이제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친구들이 하동으로 내려오고 싶다며 주위에 땅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흙이나 자연이 거짓말을 하지 않듯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 새싹삼 성공 재배 팁
- 재배토양 선택 무엇보다 중요
- 묘삼 생존율 50~80%로 올리고 음식점·소비층 충분히 확보해야
새싹삼은 뿌리와 함께 잎과 줄기까지 먹는 삼으로 온실에서 속성으로 자라 부드럽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고기에 쌈을 싸거나 반찬으로 먹도록 만들어진 삼이다. 재배를 위해 무엇보다 토양이 좋아야 한다. 물과 공기, 빛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삼이 우리 몸에 좋은 약재이지만, 산삼 인삼 산양삼 모두 값이 비싸다. 잎 채 먹는 새싹삼은 적게는 400~500원에서 보통 1000원으로 먹을 수 있다. 굵은 것은 5000원도 한다. 통째로 먹다 보니 독특하게 알싸한 향이 입안에서 오래간다. 건강을 중시하는 요즘 인삼을 찾는 사람이 많아 시장성이 있고 성장 잠재력도 충분하다.
한 채(크기에 따라 100~120뿌리)에 2만5000원에서 9만5000원 하는 묘삼을 적기에 사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량을 확보하려면 묘삼의 생존율을 높여야 한다.
습기를 좋아하면서도 오래도록 물을 많이 머금으면 뿌리가 썩는다. 병균에도 취약하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므로 토양과 수질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수경 재배는 비교적 실패하기 쉽다. 토경 재배하면서 삼이 좋아하는 흙을 써야 한다. 원가를 줄이려고 제대로 된 흙을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홍은표 씨는 묘삼의 생존율이 50%에서 80% 선으로 끌어올린다면 경제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밀폐된 곳에서 재배하므로 농약을 살포할 수 없어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지 않을 수 없다. 냉장고에서 한 달 이상 보관할 수 있다. 순환 주기가 45일가량이어서 자금 회전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무엇보다도 판로 확보가 관건. 경기의 영향에 가장 민감한 채소다. 귀한 식재료를 필요로 하는 음식점을 폭넓게 확보하고 소비층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