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장 "그럴 거면 본국 돌아가라"
- 평소 속 썩인 베트남 선원 질타
- 2명, 담보금없이 내릴까봐 범행
광현803호 선상살인 피의자들은 사건 당시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선장의 엄포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4일 부산해양경비안전서(부산해경)의 수사 내용을 보면 사건은 한국인 선장과 외국인 선원들 사이의 사소한 의사소통 문제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19일 오후 9시께 선장 양 모(43) 씨는 다음 날 조업을 준비하는 선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양주 1병과 수박 1통을 꺼내와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10여 명이 함께 한 회식은 1시간 정도 이어졌고 1병이었던 양주는 5병까지 늘어났다.
베트남 선원 V(32) 씨와 B(32) 씨는 술에 취해 선장의 말을 가로막으며 "요~요~"라며 베트남어를 외쳤다. 건배를 뜻하는 베트남어였지만, 선장은 반말처럼 들리던 말의 속뜻을 몰랐을 뿐더러 이어 "캡틴 베리굿!"이라는 말 역시 비아냥처럼 들렸다. 평소 항구에서 선장 허락 없이 휴대전화 수리 등 개인 업무를 하느라 하선하는 일이 잦았던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선장은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거면 본국으로 돌아가라"며 소리쳤다. 격분한 V 씨는 동료 선원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선장의 뺨을 연거푸 때렸다.
이에 화가 난 선장은 베트남 선원 7명을 모두 조타실로 호출했다. 친척 간이었던 V 씨와 B 씨는 본국으로 돌려보내질 것이 두려웠다. 강제로 하선을 당하게 되면 베트남 선원 송출 회사에 맡긴 담보금 300만 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300만 원은 베트남 현지 4인 가족 1년 치 생활비 수준의 거금이다.
결국 V 씨와 B 씨는 선장 살인을 공모하고 동료선원을 협박했다. 식당에서 흉기 2개를 가져왔지만, 조타실로 가는 사이 동료 선원들이 흉기를 빼앗아 바다에 던지자 V 씨는 맨몸으로 선장에게 달려들었다. 그 사이 B 씨는 다시 선내 식당에서 흉기를 꺼내 와 선장을 살해했다. 술자리에서 기관장과 말다툼을 벌였던 B 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침실에서 자고 있던 기관장 강모(42) 씨마저 살해했다.
이들의 살인극은 한국인 항해사 이모(50) 씨 덕분에 마무리됐다. 이 씨는 외국인 선원으로부터 "사장님! 사장님! 선장님 산타마리아~"라는 말을 들었다. '산타마리아'라는 말은 통상 선내에서 물건이 없어지거나 사람이 죽을 경우 쓰는 말이다. 이 씨는 급히 조타실로 올라가 거즈 등으로 선장을 응급조치했다. 이를 본 V 씨가 항해사 이 씨에게마저 흉기를 내보이며 협박했다. 하지만 무술 유단자인 이 씨는 V 씨와 B 씨를 차례로 제압했다.
이번 사건은 평소 원양업계의 불안 요소가 한 번에 터져 나오면서 발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원양업계 선원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국적의 외국인이 대부분이지만 선장, 기관장 등 상급선원은 여전히 한국인이다. 국적이 다른 선원들끼리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오해도 잦고 욕설도 오가게 된다.
부산해경은 광현803호와 비슷한 크기와 구조를 지닌 선박에서 이르면 5일범행 당시 피의자들의 모습을 재연할 예정이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