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를 뺨치는 음모와 '가짜뉴스'가 한 교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진리를 공부하는 상아탑에서 제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스승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다. 누명을 쓰고 숨진 교수의 동료 교수는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덮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7일 유명 조각가인 동아대 손현욱(미술학과) 교수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 교수는 미술학과 재학생 A 씨가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자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손 교수의 결백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16일 부산 서부경찰서는 8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허위 내용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로 A 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전공분야가 다른 손 교수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마치 손 교수의 성추행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대자보를 쓴 혐의다.
경찰 조사와 함께 진행된 동아대 진상조사에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동아대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경북 경주에서 미술학과의 스케치 수업이 진행됐다. 뒤풀이 도중 누군가 여학생 1명의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에 연루된 강사 B 씨는 출강을 그만뒀고 이후 성추행 사실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손 교수도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소문이 학내에 퍼졌다. 그해 4월 7일 미술학과 선배 교수인 C 교수가 참석한 자리에서 피해자를 포함해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은 '손 교수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썼다.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A 씨가 거짓 내용의 대자보를 게시하면서 다시 논란이 촉발됐고 손 교수는 생을 마감했다.
경찰과 동아대에 따르면 피해 학생을 성추행한 사람은 손 교수가 아닌 C 교수였다. C 교수는 자신의 범행이 알려질까 봐 피해 학생에게 접근해 '아무 일(성추행)이 없었다'는 다짐을 받았다. C 교수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아끼던 피해 학생은 지난해 10월 학교 측에 C 교수의 성추행을 알렸다. 동아대는 지난 3일 C 교수를 파면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당시 미술학과 D 교수가 수차례에 걸쳐 '손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밝혀야 한다. 네가 진상조사를 하라'며 지시했다"고 말했다. D 교수 역시 지난해 4월 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총장 비서실에 접수돼 내부 감사를 받는 중이었다.
동아대는 D 교수에 대해서도 추가로 감사를 할 예정이다. 대자보를 붙인 A 씨는 졸업을 며칠 앞둔 지난달 퇴학처분을 받았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