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월 만에 모인 ‘서면 촛불’ 회원들
- 세월호 리본·팔찌 나눠주며 추모행사
-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부채감 여전
- 비정기모임 계속… 정부조치 지켜볼 것”
- 해운대 집회 참석한 시민들 한목소리
- 4년간 4곳서 2만5630여 명 마음 모아
“잊지 않겠습니다.”
노란 리본이 다시 나타났다. 4년간 부산 시민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에게 보냈던 다짐이다. 시끌벅적했던 부산 서면 번화가가 ‘팽목항’으로 변했다. 서면의 빨간 조형물 ‘사랑’은 그곳의 등대가 됐고, 시민도 4년 전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는지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리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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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NC백화점 앞에서 해운대촛불모임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월호 4주기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아빠가 망각할 때 딸은 기억”
무엇이 이들에게 4년 전 그날을 기억하게 했을까. 지난 11일 오후 7시 해운대구 좌동 NC백화점 앞에서 만난 학원 강사 A(53) 씨는 이를 ‘어른의 부채감’으로 표현했다. A 씨는 “작은딸이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과 동갑이다. 2014년 당시 딸은 5월에 가는 수학여행에 입을 옷과 가방을 사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참사 후 딸만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자신과 동갑내기 친구 수백 명을 잃은 것 아닌가”라며 “어른이자 아빠로서 딸의 친구가 고통 속에 가라앉을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게 한이 됐다”고 말했다.
A 씨는 “그러나 세월이 좀 지나며 참사에 대한 기억이 점차 잊히더라. 그러다 2016년 딸의 고교 졸업식에 갔는데 교실에 노란 리본이 있었다. 어른이 외면할 때 아이들은 그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정말 부끄러웠다”며 “이후 딸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할 수 없었다. 차마 입 밖으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무관심에 대한 부채감은 A 씨뿐만이 아니다. 정선욱(여·26) 씨는 “참사 후 일부러 세월호에 마음의 거리를 뒀다. 그러나 2주기 때 한 집회에 참석했을 때 참사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했던 지난 날이 부끄럽고, 희생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다른 참석자도 비슷한 마음의 짐을 지니고 있었다. 참사 후 200일 동안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던 고교 교사 B(여·63) 씨도 “수백 명의 아이가 배와 함께 침몰하는 동안 어른은 그냥 보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며 “수업할 때 학생을 보면 갑자기 울컥할 때가 많다.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강달용(50) 씨도 “자식 셋 있는 처지에서 부채감이 생기더라. 지켜주지 못한 마음과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우리 아이를 지켜주기 위한 마음으로 추모 집회에 나온다”고 털어놨다.
■서면 등지에서 4년간 추모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이곳에서 추모집회를 열었던 일명 ‘서면 촛불’ 회원 7명은 이날 다시 서면으로 나왔다. 지난해 11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2기 출범이 결정난 지 약 5개월 만이었다. 서면 촛불 회원들은 세월호 리본과 팔찌를 시민에게 나눠줬다. 지나가던 20대 청년이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라는 응원을 보탰다.
이 집회를 이끌어온 시민단체 민들레의 박신열 대표는 “사고 발생 후 3개월간 매일 나왔다. 멀리 떨어진 부산에서도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팽목항의 유족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횟수를 주 3회→2회→1회로 줄였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너무 추우면 지하상가에서 추모를 이어갔다”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이렇게 긴 시간 추모하게 될지 몰랐다. 그러나 유족의 한을 모두 풀고, 국가가 안전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까지 비정기적 모임을 계속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정부를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4년간 세월호를 추모하고 기억한 것은 서면만이 아니었다. 해운대구 좌동, 북구 화명동, 중구 남포동 등 부산 동서남북에서 3년 이상 정기적으로 촛불을 들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다. 서면 촛불과 남포동 촛불은 지난해 12월 정기적 추모 집회를 중단했으나, 사안이 있을 때마다 비정기적 추모 행사를 한다. 해운대 촛불과 화명동 촛불은 현재까지 매주 한 번 희생자와 유족을 기억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4개 단체가 지금까지 부산에서 연 추모 집회는 총 960여 회, 참석자는 2만5630여 명으로 추산된다.
세월호 이후에도 대형 안전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와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난 불로 75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2기 특조위 활동이 진행 중이고, 세월호 선체 수색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다.
박호걸 김봉기 기자 rafael@kookje.co.kr
‘세월호 4년’과 남은 절차는 ※자료 :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
2014년 4월 15일 밤 |
세월호 인천항 출발 |
16일 오전 8시50분 |
맹골수도서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 |
18일 오전 11시50분 |
완전히 침몰 |
11월 11일 |
실종자 수색 중단 |
2015년 4월 22일 |
세월호 인양 결정 |
8월 7일 |
인양 작업 착수 |
2017년 3월 23일 |
세월호 선체, 수면 위로 드러남 |
4월 11일 |
목포 신항 부두에 거치 |
2018년 2월부터 |
세월호 직립 작업 착수 |
5월까지 |
직립을 위한 선체 보강 작업 |
5월 31일 |
해상크레인 이용해 세월호 직립 예정 |
6월 14일 |
수평 빔 제거, ‘워킹 타워’ 설치 |
8월까지 |
마지막 미수습자 수색작업 및 침몰 원인 규명조사 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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