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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치매 보듬는 사회 <6> 덴마크 스벤보르시 치매마을

치매 어르신이 가게서 계산 않고 물건 가져가도 당연시

  •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  |   입력 : 2019-04-17 19:12:11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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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 환자 125세대 집단 거주
- 집에서 돌봄서비스 받는 시스템

- 공동 식당·헬스장·상점 등 갖춰
- 텃밭 채소 가꾸고 닭·토끼 사육
- 기업 기부로 정원·캠핑시설 마련
- 정서적인 안정 꾀해 치유에 도움
- 간호사·직원 상주하며 의료지원
- 외부 지역민에 치매 관련 교육도

지난달 18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2시쯤 되자 어르신들이 마을 레스토랑에 모여 앉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끼리 차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옆 서재에도 대여섯 명이 둘러앉았다. 카드놀이를 시작하려던 참이다. 옆방 헬스장에는 데이케어센터(노인주간보호시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체육수업이 한창이다. 덴마크 스벤보르시 치매마을(Dementia village)인 ‘브라이구짓 스벤보르 디멘스비(Bryghuset Svendvorg Demensby)’의 일상 풍경이다.
   
덴마크 치매마을 ‘브라이구짓 스벤보르 디멘스비’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이 관리동 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있다. 스벤보르 치매마을 제공
■덴마크 처음이자 유일 ‘치매마을’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기차로 2시간 떨어진 인구 5만9000명의 작은 도시 스벤보르는 ‘치매 친화 도시’로 유명하다. 2016년 12월 문을 연 ‘치매마을’ 덕분이다. 치매마을이란 치매에 걸린 어르신이 모여 사는 집단 거주지를 말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달리 각자 집에 거주하며, 돌봄을 받는 시스템이다. 치매 어르신에 특화된 ‘고급 실버타운’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치매 환자 거주지를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의 새로운 형태인 셈이다. 이곳 시설은 덴마크에선 최초이자 유일한 치매마을이다.

   
치매마을 주민이 관리동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스벤보르 치매마을 제공
스벤보르 치매마을은 모두 125세대로 구성된다. 각 아파트는 방 2개와 주방, 거실, 화장실이 있으며 한두 명이 거주할 수 있다. 부부가 같이 살 수 있고, 부부 중 치매를 앓는 1명만 입주할 수도 있다. 일반 아파트처럼 각자 거주하는 세대 외에 공동으로 생활하는 그룹홈이나 단기보호시설 개념의 세대도 있다. 8인실의 단기보호시설은 보호자가 급한 일이 있어 집을 비워야 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치매 어르신을 최장 3주간 맡아주는 용도로 이용된다.

치매마을 관리동에는 레스토랑과 서재, 헬스장, 상점, 미용실 등 다양한 시설이 가동돼 마을 주민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각자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나, 원하면 공동생활을 할 수도 있다. 가령 각자 아파트에서 거주하지만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 귀찮다면 공동 레스토랑을 이용하면 된다. 돈 계산이 어려운 치매 노인 특성상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계산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돈을 내지 않았다면 생활비에 추후 청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관리동에는 의료지원을 담당하는 간호사를 비롯, 직원 125명과 자원봉사자가 상주해 어르신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지를 시시각각 살핀다.

치매마을은 거주자는 물론 스벤보르 지역주민도 참가할 수 있는 데이케어센터를 운영한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운영되며 정원 꾸미기, 카드놀이, 댄스교실, 노래교실 등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된다. 치매마을 거주자는 물론 지역민까지 매일 50~70명의 어르신이 데이케어센터를 다녀간다. 이런 치매 친화적 환경 덕분에 마을에 들어오고자 하는 대기자가 많다. 입소자는 치매 전문 상담사가 판단한다. 개별적으로 가정방문해 어르신 상태가 어떤지를 평가, 입주 여부를 결정한다.

치매마을은 치매 어르신의 거주지로서뿐 아니라 지역 치매 관리의 거점 역할도 한다. 스벤보르 치매마을 피터 모리슨 매니저는 “거주 어르신이 밖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그를 발견한 주민이 ‘치매마을에 가면 집을 찾아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모시고 온 적이 있다. 다행히 입주민이었다. 그만큼 지역민은 치매 하면 이곳 마을을 떠올린다”며 “치매 이해를 돕기 위해 지역민을 대상으로 ‘치매 환자의 이상 행동’ 등에 관한 교육도 펼친다”고 말했다.

■기부받아 치유의 정원 조성

   
덴마크 스벤보르 치매마을 전경. 이선정 기자
관리동 바깥으로 나가니 텃밭과 토끼 사육장이 나왔다. 닭장도 보인다. 채소를 기르고 동물을 키우는 것이 어르신 정서 치유에 좋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텃밭 옆 목공실에선 목공품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목공실을 나와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제법 규모가 큰 정원이 펼쳐졌다. 세계 최대 해운업체인 덴마크 기업 ‘머스크’사의 기부를 받아 정원을 꾸미는 중이다. 높다란 나무를 심고 연못과 쉴 수 있는 정자를 만들었다. 흙을 밟고, 꽃을 보며, 정원 작업도 직접 하면서 어르신의 인지 기능을 끌어올리는 쉼터 기능을 할 예정이다. 정원 한쪽에는 캠핑 시설을 별도로 갖췄다. 젊었을 때 캠핑하러 자주 갔던,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리자는 취지다.

정원 울타리가 독특하다. 치매마을은 겉보기에 일반 건물이나 실종자 방지를 위해 담을 쳐놓았다. 치매 노인이라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 설치한 안전장치다. 하지만 ‘가둔다’는 의미의 펜스라는 느낌이 덜 나도록 울타리 바로 앞에 나무를 심어 숲처럼 보이게 했다.

치매마을은 스벤보르시가 750만 크로네(13억 원가량)를 들여 예전 양조장 등으로 이용되던 현 건물을 리모델링해 설립했다. 운영비는 별도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이용자 본인부담금으로 모두 충당한다. 모리슨 매니저는 “노인은 매달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데 월세(6000크로네·100만 원), 식비 세탁비 같은 생활비(1300크로네·22만 원) 등 필요 경비를 모두 내더라도 일반적으로 3000크로네(50만 원) 정도가 남아 시설을 이용하는 어르신의 경제적 부담은 없다”고 설명했다. 치매 케어는 ‘노년의 빈곤’ 문제와 직결된다. ‘치매 국가책임제’ 성공의 관건은 결국 촘촘한 노인복지와 사회안전망에 있다는 말이다.

덴마크 스벤보르=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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