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 년 전 감천화력발전소

- 사용후 나온 재 무더기 매립

- 폭우에 붕괴돼 주택 등 덮쳐

- 4명 매몰 … 2명 숨진채 발견

역시나 또 인재(人災)였다. 산사태로 무너져내린 건 토사가 아니라 석탄재였다. 수십 년 전 불법으로 매립한 석탄재가 폭우에 무너지면서 참사를 빚었다.

3일 오전 일가족을 비롯한 4명이 매몰된 부산 사하구 구평동 산사태 현장을 찾은 119토목구조대는 석탄재인 ‘플라이 애시(fly ash)’가 무너져내려 주택과 식당을 덮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결국 ‘석탄재로 쌓은 산’이 태풍과 폭우 탓에 붕괴된 것이다.

플라이 애시는 화력발전소에서 미분탄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폐가스에 포함된 석탄재다. 가벼운 가루 성분으로, 점착성이 없는 게 특징이다. 구조대 관계자는 “산사태가 발생하면 토사는 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그러나 이번 사고 현장으로 쏟아진 석탄재에는 물이 섞여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구조대의 설명처럼 이번 산사태 현장은 대부분 시커먼 석탄재로 뒤덮였다. 석탄재는 흙과 섞여 야산 정상 부근 예비군 훈련장 비탈에서부터 300여 ｍ를 흘러내렸다. 산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주변 흙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의 지형은 1964년 감천동에 건설된 화력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를 쌓고 매립해 형성됐다. 이번 참사를 일으킨 플라이 애시는 원칙적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처리해야 하지만, 오래전 관행으로 이곳에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과학기술대 정진효 토목과 교수는 “그 당시엔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 없이 석탄재를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석탄재를 땅에 묻는 건 엄격히 금지돼 있다”고 알렸다. 김태석 사하구청장은 “감천화력발전소가 설립된 당시부터 30년 전 즈음까지 석탄재를 매립하는 관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번 산사태를 계기로 한 번 더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구평동 산사태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와 양상이 비슷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일부 전문가는 산 정상 부근 예비군 훈련장의 배수에 문제가 생겨 한꺼번에 많은 빗물이 비탈로 넘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우면산 산사태 때도 산 정상에 공군 부대가 있었고, 당시 배수 문제가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이날 산사태는 오전 9시9분 발생했다. 사하구 구평동 야산에서 쏟아진 석탄재와 토사가 주택과 식당 가건물, 공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주택에 있던 일가족인 권모(75) 성모(여·70) 권모(45) 씨와 식당 주인 배모(여·68) 씨가 매몰됐다. 배 씨와 일가족 중 1명은 각각 이날 오후 3시24분과 5시22분 숨진 채 발견됐다. 

 배지열 신심범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