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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청년 졸업 에세이-1985년생 김지훈·김지혜 <3-1> 백 투 더 부산- 낯선 고향

‘큰물’찾아 떠났다가 고향 돌아온 청년, 저임금·고노동에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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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 없는 부산 등지고
- 교통·인프라·정보 우월한
- 서울로 취직해 떠난 청년들

- 발전한 도시서의 윤택한 삶
- 행복까지 담보하지는 않아
- 부모 형제 친구 찾아 귀향길
- 직장 구하면 급여·처우 열악하고
- 직접 창업해도 수도권 비교불가

- “잘 살아보려 다시 부산 왔는데
- 성공하려면 떠나야 하는 현실”
- 청년 정착 어려운 낯선 고향서
- 이들은 돌아올 이유 찾지 못한다

‘부산에서 태어났다’. 탈부산했던 청년 일부가 그래도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가장 강력한 이유다.

부산에서 태어난 1985년생 김지훈·김지혜 씨가 청년을 졸업(만 34세)하기 전 수도권으로 떠난 건 대부분 직업을 찾아서다. 돈벌이가 그곳에 있다는 일차적 사실이 그들을 고향 밖으로 밀어냈다. 여기에다 고향에는 절실하게 도전하고 싶은 일 자체가 없다는 상황까지 겹친다. 결국 그들은 일하기 위해 부산을 등졌다.

반대로 서울살이를 접고 되돌아온 이들에겐 ‘부산 출생’이란 사실이 이유가 된다. 금정산과 해운대를 향한 자긍심, 어릴 적 기억을 간직한 원도심 옛 동네, 무엇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과 친구를 떨칠 수가 없어서다. ‘미우나 고우나 나고 자란 고향’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 떠나는 청년이 줄을 잇는다. 부산을 빠져나가는 기업도 늘어난다. 그리웠던 ‘옛사람’은 이미 살던 곳을 떠나고 없다. 고향이 낯설다.

1980년대 최고로 흥행한 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는 김지훈·김지혜 씨가 태어난 1985년 개봉했다. 2020년 지금 부산에 필요한 건 김지훈·김지혜 씨의 ‘백 투 더 부산’이다. 하지만 김지훈·김지혜 씨는 고향 부산으로 돌아올 이유를 점점 잃어간다.
조현주 씨. 사진=김종진 기자(왼쪽), 이서은 씨. 사진=김성효 전문기자
■바다 보기가 쉽지 않다

큰물에서 놀고 싶었다. 이대로 부산에 머물면 어렵게 키운 꿈을 포대기 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서울 사람’이 된 친구들이 괜히 세련돼 보였다. 부산 출신 청년 졸업생 1985년생 조현주 씨는 스무 살 적 이렇게 생각했다.

조 씨는 남구 문현동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항공사에 다니던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국민학교)에 들어갈 무렵 경남 김해시로 이사했다. 이후 죽 그곳에서 살았다. 2003년엔 대학생이 돼 부산으로 돌아왔지만, 1년 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다. 통계를 전공했지만, ‘숫자놀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에서 술로 끝나는 대학 생활도 생각했던 것과 거리가 있었다. 부산에선 꿈을 꾸지 못할 것 같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조 씨는 건축사의 꿈을 얻었다. 2년간 유학 중 우연히 서양 건축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공간을 바라보는 이상적 시각과 이를 현실화하는 건축공법에 매료됐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건축사가 되는 가장 빠른 길부터 알아봤다. 3년제 건축학과가 있는 전문대로 편입해 학사 학위를 따는 게 최선이라 판단했다. 계획한 대로 2008년까지 새로운 공부를 마쳤다. 졸업한 해엔 경남 창원시의 한 설계사무소에 입사했다. ‘건축사가 돼 예쁜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창원에서의 생활은 잠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년 만에 수도권으로 향했다. 경기 의왕시의 한 사회단체로 자리를 옮겼다. 창원에서는 미국에서부터 품은 꿈을 펼치기 어려웠다. 몸담았던 곳은 건축사가 1명밖에 없는 업체였다. 왕년엔 잘 나갔지만, 외환 위기를 거치며 회사 규모가 크게 줄었다. 일할 사람이 없다 보니 각종 문서 작업부터 캐드(CAD·컴퓨터 지원설계), 건축 계획, 심지어 감리 보조까지 모든 업무를 떠맡았다. 그 대가는 월급 80만 원이었다. 흔한 명절 선물세트는 구경도 못 해봤다.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창원을 떠났다. 그렇다고 부산으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새 직장에선 신축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판별하는 일을 했다. 수도권은 분명 부산이나 창원보다 여러모로 나았다. 두 지역의 인프라 차이는 교통이나 주거에 한정된 게 아니었다. 수도권에선 취미부터 업계 모임까지 크고 작은 네트워크가 활성화돼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알고자 하는 분야의 정보를 빠르고 자세히 얻었다. 부산에서와 달리 출신 고등학교가 어딘지, 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인지 묻는 이도 없었다. 업무는 성과를 내는 데 집중돼 있었다. 여행하며 재충전할 만한 곳, 하물며 스트레스를 풀 클럽까지도 서울이 더 잘돼 있었다.

그러나 ‘발전한 도시’가 행복을 담보하지는 않았다. 조 씨는 바다를 볼 수 없는 날들이 늘어나는 데 지쳐갔다. 고향 바다가 그리웠다. 전철 속 표정 없는 사람들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사는 건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다. 아파도 돌봐주거나 병원으로 데려다줄 사람이 없었다.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이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해 집에서 숨졌다는 등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공포에 빠졌다. 쉬는 날이면 이유 없이 부산에 내려와 태종대를 걸었다. 타향살이가 싫었다.

그 무렵, 조 씨를 끔찍이 아끼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목구멍이 밥을 넘기지 못했다. 타지에서 우울한 나날이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해졌다. 보다 못한 부모님이 조 씨를 어릴 적 살던 부산 남구로 데려왔다. 할머니가 일구던 텃밭을 가꾸며 마음을 추슬렀다.

부산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고향은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직장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수도권에서 받던 처우에 견줘 크게 열악했다. 노동 시간은 훨씬 길었지만, 급여는 더 낮았다.

원하는 직장이 없었다. 직접 회사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2018년 4월 ‘코이지’라는 배리어 프리(무장애) 인테리어 기업을 창업했다. 집 안에서 일어나는 노인 낙상사고를 막아 요양병원 입원 등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게 목표다. 의왕에서 같이 일한 동료들은 아직도 서울이나 경기로 올라오라고 충고한다. 사업하기엔 수도권이 부산보다 몇 배는 일거리가 많은 현실 탓이다.

조 씨는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다. 본인처럼 고향 부산을 떠나는 청년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는 이들, 지역에서 직장을 구했지만 결혼하면 금방 일을 그만두는 이들이 안타까웠어요. 저만 해도 그렇죠. 안정적 기업만 있다면 돈을 벌려고 부모 형제를 떠나 외지에서 외롭게 생활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산에서 그런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우리 회사의 비전입니다.”

그러나 아직 꿈은 멀다. 그동안 20여 차례 견적을 냈지만, 실제 인테리어 작업을 따낸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부산엔 청년이 일할 곳도 부족하고, 청년 창업가를 받아줄 시장도 좁다.

■대박 치려면 떠나야 하는 역설

부산에서 대규모 채용을 하는 기업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청년 창업은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를 확보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수많은 청년 창업 도전자 중 단 1%만 ‘큰 기업’을 일궈도 엄청난 성공이다. 스타트업 잭폿, 이른바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 설립한 지 10년 이하 스타트업)이 하나 탄생하면 부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이 생긴다. 자연스레 많은 지역 청년을 붙잡을 수 있다. 부산 청년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니, ‘대박’이다.

부산 출신 1985년생 이서은 씨의 꿈도 유니콘 기업 대표다. 남구 대연동에서 태어나 경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부산에서 본인 회사 ‘채시미’를 운영한다. 해외 고객이 한류 스타의 드라마 속 패션 또는 화장품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미지 인식 및 빅데이터 이용 모바일 플랫폼을 서비스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류 스타가 사용한 것과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저렴한 제품을 소개한다. 홍콩 청년 3명이 창업해 대형 여행 스타트업으로 성장한 ‘클룩’처럼 되는 게 목표다.

2006년 싱가포르 유학 시절 한류에 열광하는 현지 친구들을 보며 사업 아이템을 얻었다. 곧바로 사업에 뛰어든 건 아니다. 2008년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 들어와 여러 회사에 다녔다. 2010년 변호사 사무실에서 국제변호사 영어 통역 업무를 봤다. 2012년엔 수입 전문 경제단체에서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기도 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한 번뿐인 인생, 원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2018년부터 창업을 준비했다. 그해 부산정보산업진흥원의 갈매기 SW사관학교에 등록해 사업 아이템을 가다듬었다.

이듬해 경기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 들어가 지금의 팀을 꾸려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고향 부산에서 창업하고 싶었다. ‘채시미’의 주 타깃이 해외 고객이니 굳이 수도권에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해운대구 센텀시티에는 서울 못지않게 업계 네트워크가 활발해 정보 교류도 어렵지 않았다. 블록체인이나 소프트웨어산업 등 부산시가 밀어주는 분야만큼은 수도권과의 정보 격차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현실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까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대박을 터뜨릴 기미가 보이면 주저 없이 부산을 떠나야 한다. 큰 시장은 수도권에 있다. 특히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일 만큼 잠재력을 인정받은 기업이라면, 성장을 위해 부산을 떠나야 한다. 직원을 뽑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청년 인구가 몰린 수도권, 인재 풀이 넓은 서울이 채용에 유리하다. 구인·구직에 드는 시간도 훨씬 줄어든다.

이 씨는 언젠가는 부산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지금도 사원 3명 중 2명이 서울에서 오신 분이에요. 언젠가 회사 규모가 커지면 구인 때문에라도 서울로 회사를 옮길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청년이 떠나버린 부산에선 원하는 인재를 제때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 1985년생 조현주 씨

- 부산 남구 문현동 출생, 부산·김해서 청소년기 보내

- 부산서 대학 입학. 1년 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학

- 건축사로 진로 정한 후 창원서 설계사무소 입사

- 1년 만에 수도권 업체로 이직

- 다시 귀향해 배리어 프리 인테리어 기업 ‘코이지’ 창업


※ 1985년생 이서은 씨

- 부산 남구 대연동 출생, 경남서 청소년기 보내

- 싱가포르에서 유학 후 대학 졸업

- 국제변호사 영어 통역, 수입업체 해외 마케팅 업무 등 담당

- 경기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서 팀 꾸려 창업 준비

- 부산 내려와 K-뷰티 빅데이터 이용 모바일 플랫폼 ‘채시미’ 창업


권혁범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부산 읍·면·동별 종사자 증감 (2007~2017년) 

읍·면·동

  종사자 증감

동구 초량1동

-2680명

사상구 감전동

-1651명

동구 범일1동

-1614명

영도구 봉래2동

-1272명

동구 초량3동

-1239명

중구 영주2동

-958명

남구 우암동

-943명

동구 범일5동

-683명

사하구 다대1동

-630명

동래구 명장1동

-612명

중구 대청동

-491명

사상구 학장동

-485명

사상구 삼락동

-468명

사하구 장림2동

-467명

금정구 서1동

-446명

사상구 주례1동

-440명

부산진구 부암1동

-395명

사하구 신평2동

-335명

남구 감만1동

-319명

해운대구 반여2동

-294명

해운대구 반여4동

-264명

동래구 사직3동

-241명

연제구 거제4동

-237명

중구 남포동

-200명

영도구 영선1동

-194명

동래구 명장2동

-170명

자료:통계청 사업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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