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퇴 29일 만에 경찰조사 받아
- 여직원 성추행 혐의는 시인
- 추가 의혹·선거법위반은 부인
- 14시간 동안 조사받고 돌아가
- 시민들 “특혜·엄호 출석” 비난
- 공증 맡은 법인 변호사와 동행
- 변호사법 위반 논란도 불거져
부하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강제추행한 뒤 이를 인정하고 사퇴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물러난 지 29일 만에 부산경찰청에 소환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았다. 오 전 시장은 사퇴 후 불거진 갖가지 의혹에 입을 굳게 다물고 잠적한 데 이어 부산경찰청에도 이른 오전 ‘뒷구멍’으로 진입해 한때 부산을 대표했던 정치인으로서 ‘끝까지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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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22일 부산경찰청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뒤 청사를 나서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던 중 눈을 감고 있다. 서정빈 기자 |
오 전 시장은 22일 오전 7시35분께 흰색 승용차를 타고 부산경찰청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 여성청소년수사계 조사실로 곧장 올라갔다. 지하주차장의 화물용 엘리베이터 진입구는 평소 문이 잠겨 있다. 이날 경찰은 세간의 눈을 피해 비공개로 출석하겠다는 오 전 시장의 요청을 받아 특별히 화물용 승강기 진입구의 문을 열어 주는 ‘특혜’를 제공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산경찰청 방문자는 예외 없이 정문이나 후문에서 발열 검사를 받고 출입 대장을 작성한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은 수사관이 준비한 간이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한 뒤 청사에 들어섰다. 이에 오 전 시장은 이날 외부 노출 없이 조사실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식사는 외부에서 반입된 도시락으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오 전 시장에게 지난달 초 직원을 성추행한 혐의 외에도 지난해 또 다른 직원 성추행 의혹, 총선 전 사건 무마 시도(직권남용 혐의), 성추행 무마 대가 일자리 청탁 의혹(직권남용), 총선 전 성추행 은폐(공직선거법 위반)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시장 측은 지난달 초 성추행 혐의의 기본적인 사실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법리 적용 등에는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혐의들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의 지난달 강제추행 사건은 최종적으로 적용법률을 검토 중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나머지 의혹은 수집된 증거자료와 관련자 진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추가 소환 여부와 신병처리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14시간 동안 조사받고 이날 밤 10시께 귀가한 오 전 시장은 부산경찰청 1층 출입구에서 대기하던 취재진에게 “경찰 조사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남색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낀 채 포토라인에 선 오 전 시장은 추가 성추행 의혹 질문에 “그런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인했다. 다른 질문에는 “죄송하다”는 말만 여섯 차례 반복한 뒤 서둘러 준비한 차량에 탑승해 부산경찰청을 빠져나갔다.
350만 부산 시민의 수장이었던 오 전 시장이 뒷구멍으로 경찰에 출석하고, 언론의 요청에 마지못해 포토라인에 선 뒤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빠져나가자 “부산 시민으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는 비판이 빗발친다. 이날 부산경남미래정책은 성명을 내고 “오 전 시장이 부산경찰청의 ‘엄호’ 아래 비공개로 경찰에 출석했다. 부산경찰청이 피의자 오거돈을 대하는 행태를 보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귄위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오 전 시장이 이날 법무법인 ‘부산’ 대표인 정재성 변호사와 함께 출석해 법률 조력을 받자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법무법인 부산은 지난달 오 전 시장과 강제추행 피해자 양측의 합의 내용을 ‘공증’했다. 공증서에는 ‘오 전 시장이 강제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4월 안에 사퇴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변호사법 51조를 보면 ‘법무법인은 그 법인이 인가공증인으로서 공증한 건에 관해서는 변호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명시해 법무법인 부산 측이 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SNS를 통해 “법무법인 부산이 한 공증행위는 사서증서 인증행위로, 오 전 시장이 개인적으로 작성한 진술서가 오 전 시장이 작성한 것이라는 점을 공증인의 자격으로 인증해주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인증행위의 당사자가 아니었다”며 “변호사법 시행령은 (공증을 맡은 법무법인) 변호사가 할 수 없는 행위를 정하는데 이번 건은 그에 해당하지 않아 변호사법 위반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박정민 이승륜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