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성폭행에 저항하며 범인의 혀를 깨물었다가 유죄를 선고받은 여성이 50여 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법적 증거 등의 문제로 기각하지만 청구의 가치 만큼은 높이 산다는 이례적 평가를 덧붙였다.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는 18일 최모(여·75)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1964년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그해 5월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노모(당시 21세) 씨에게 저항하던 중 그의 혀를 깨물었다. 노 씨는 혀가 1.5㎝ 절단됐다. 당시 부산지법은 최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인정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도 소개됐다.
최 씨가 이 판결에 불복한다는 뜻을 밝힐 수 있었던 건 50년 넘는 세월이 지나서였다. 2018년 국내외에서 미투 운동이 불거지는 가운데 그는 ‘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지난해 5월 재심을 청구했다. 끔찍한 범행에 대항하기 위한 정당방위였던 점을 인정해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법원은 ‘새로운 증거의 출현’ 여부를 이유로 들어 이를 기각하면서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무죄 등을 인정할 새로운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가해자 노 씨는 최 씨 주장대로 (혀가 잘렸음에도)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보이지만, 그의 언어능력에는 실제로 상당한 장애가 발생했다”며 “형법상 중상해죄 구성요건인 ‘불구’의 개념이 신체 조직의 고유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 최 씨가 재심을 청구한 판결은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당하는 불구’를 형법상 중상해죄로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법원은 “이 사건은 정당방위에 관한 법리를 논할 때 언제나 등장하는 사건이다. 바로 그 사건의 당사자가 반세기가 흐른 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달라고 법정에 섰다”며 “청구인의 외침이 헛되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