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사 13년차 소년부 담당하며
- 결손 가정 소년범 삶 맞닥뜨려
- 재범 막을 방법 자나깨나 생각
- ‘그룹홈’ 재범 20%P 감소 성과
- 6년뒤 정부 복지시설 인정 받아
- 국민참여예산제도 선정 기적도
- ‘계속이 힘이다’ 삶의 신념 빛내
- “청년 혼자 무얼 하기 힘든 시기
- 진정 원하는 걸 찾아 버텨내길”
“안돼. (형량을) 안 바꿔줘. 바꿔줄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천종호(56)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과거 법정에 나온 비행청소년을 단호하게 꾸짖는 장면이다. 그에게 ‘호통판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천 판사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 별명은 ‘소년범의 대부’다. 위기 청소년이 바른길을 걸을 수 있도록 누구보다 헌신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8년 넘게 부산과 창원의 가정법원에서 소년범 재판을 맡았다. 민사 재판부로 옮긴 지금도 청소년 문화·스포츠 활동과 자립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만사소년’을 이끌고 있다. 그가 호통을 친 이유는 “소년범이 다시 재판정에 서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천종호 판사는 대안 가정인 청소년 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를 정착시켰다.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최근 천 판사를 만나 ‘계속이 힘이다’는 그의 좌우명에 대해 들어봤다.
| |  |
| 천종호 판사 |
■까치고개 돌부처
부산 아미동 까치고개 단칸방에서 7남매 중 셋째로 자란 천 판사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수업시간에 쫓겨나기도 했다. 그가 판사를 꿈꾼 이유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바르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 공부할 공간이 없어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생활 습관을 중학생 때부터 유지했다. 가족들은 그를 ‘돌부처’로 불렀다.
고 3때 위기가 찾아왔다. 학력고사 성적이 생각보다 저조해 장학금을 받기 어려웠다. 집안 사정을 고려해 사범대 진학 권유도 이어졌다. 원서 접수 마지막 날 모든 걸 포기하고 국제시장을 거닐던 중 ‘천사’를 만났다. 고교 동창이었다. 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친구는 천 판사의 사정을 듣고 돈을 손에 쥐여주며 “무조건 원서는 쓰라”고 권유했다. 두 사람은 원서 마감을 30분 남겨두고 부산대로 달려가 간신히 법과대학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천 판사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법대에 못 갔죠. 친한 친구도 아니었는데 원서비는 물론 영도에서 장전동까지 가는 교통비를 다 대줬어요. 신기한 건 세월이 지나서 친구한테 그 얘기를 하니 기억도 못 했어요. 여러분도 별것 아닌 선행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사소년(萬事少年)
천 판사는 7전 8기 도전 끝에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견뎠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1997년 부산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20년 정도 지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10년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로 가면서 인생 항로가 완전히 바뀌었다. “재판정이 부족해 3주에 1번 소년재판이 열렸어요. 한 번 재판이 열리면 6시간 동안 100명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1명당 3분밖에 할애하지 못하다 보니 인적사항 확인하고 처분 내리기 바빴어요. 아이들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사실 청소년 범죄는 가정 환경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재판정까지 온 소년범은 결손가정일 확률이 높아요. 재비행을 막으려면 환경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때부터 자나깨나 소년(만사소년)만을 생각했다. 위기 청소년 보호를 위한 후원금을 마련하려고 사재를 털거나 책을 썼다. 함께 여행이나 운동을 하며 부모 역할도 자처했다. 흔히 알려진 ‘호통판사’ 보다 ‘소년범의 대부’로 유명해진 이유다. 천 판사의 가장 큰 숙제는 2010년부터 추진한 ‘사법형 그룹홈’이었다. 정식 명칭은 청소년 회복센터. 경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은 소년원행 대신 ‘1호 처분’을 받는다. 보호자가 잘 관리해 재범을 막으라는 취지다. 그런데 가정이 붕괴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그들을 위한 대안가정이 사법형 그룹홈이다. 실제로 사법형 그룹홈에서 생활한 결손가정 아이들의 1년 내 재비행률은 50%대에서 비결손가정 아이들 수준인 30%대로 떨어졌다. 천 판사는 효과를 확인하고 법제화에 나섰다. 민간의 후원금과 봉사정신으로 운영되는 사법형 그룹홈을 정부가 껴안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무슨 판사가 그렇게 자주 언론 인터뷰를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지요. 저는 사법형 그룹홈의 효과를 알려 정부 예산을 받기 위해 TV에 출연했는데 ‘정치나 출세 목적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래도 천 판사는 “사법형 그룹홈이 교정시설 기능을 한다면 운영도 정부가 책임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  |
| 사단법인 ‘만사소년’에서 위기 청소년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며 그들의 건전한 성장을 응원하고 있는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 모습. 만사소년 제공
|
■계속이 힘이다
2016년 ‘청소년 복지지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법형 그룹홈이 청소년 복지시설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법안 통과라는 1차 관문은 넘었지만 국비 확보라는 2차 관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6호 처분을 받은 소년들을 돌보는 ‘6호 처분 수탁기관’도 수십 년 동안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예산 마련이 진통을 겪던 2018년 2월 천 판사는 인사원칙에 따라 소년부를 떠나게 됐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맘에 걸려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얼마 뒤 기적이 일어났다. “국민참여예산제도(국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해 예산을 결정하는 제도)라는 걸 우연히 알게 돼 신청했습니다. 공무원이나 사법형 그룹홈 운영자 모두 회의적이었어요. 결국 큰소리를 냈죠. ‘조금이라도 노력해서 올해 안 되면 내년, 내후년 계속해야 한다’고. 결국 1300여 개 단체를 제치고 최종 30개 단체에 포함돼 그룹홈 1곳당 5800만 원을 받게 됐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거죠.”
천 판사에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냐”고 물었다. “제 인생 신념이 ‘계속이 힘이다’에요. 저는 IQ가 높거나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게 아닙니다. 대신 중간에 멈추지는 않아요. 요즘은 소년이든, 청년이든, 젊은 세대가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바꾸기 정말 힘든 시기입니다. 섣부른 조언일지 몰라도 이 말은 해주고 싶어요. 눈앞의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찾았다 싶으면 꾸준하게 버텨보세요. 생각지 못한 결론이 나올 겁니다. 그 힘이 합쳐지면 우리 사회도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제작지원 : B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