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개 점포 상인들 머리 맞대
- 상인 DJ가 입담 뽐내는 라디오
- 식탁 주재료 특화한 ‘식탁예찬’
- 가격·원산지 표시, 간판 통일 등
- 창의적 콘텐츠·마케팅으로 순항
- 온라인몰 8개월 만에 매출 15배
- 구청장 출연 홈쇼핑도 진행 예정
“주부님~, 요즘 봄철 밥상 고민하느라 바쁘시지요? 우리 시장에 참 잘 오셨습니다. 봄맛이 제대로 담긴 취나물부터 봄비 내리는 날에 제격인 부추까지 이곳에서 모두 살펴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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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오후 부산 사하구 괴정동 괴정골목시장 상인회관에서 조영미(왼쪽)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이 김태석(가운데) 구청장 장채순 상인회장과 함께 상인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호형 프리랜서 |
지난 23일 오후 2시 부산 사하구 괴정골목시장. 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여성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여명희(52) 씨. 여 씨는 시장 한 가운데 상인회 건물에 마련된 7㎡(약 2평) 남짓한 부스에서 대본을 들고 “미세먼지 심한 날 마스크 꼭 착용하시고 손을 자주 씻는 등 위생에 신경을 써 주세요. 저 ‘여부인 DJ’ 여명희에게 신청곡도 많이 전해 주세요”라며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방송에 참여한 김태석 사하구청장은 “상인 DJ의 목소리 덕분에 시장 분위기가 확 사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으니 조금 떨리는데 고민과 걱정거리가 있다면 친구에게 넋두리하듯 언제나 저를 찾아주세요”라며 전문 DJ 못지않은 진행 실력을 보였다.
괴정골목시장의 라디오 방송인 ‘상인 방송국’은 2019년 5월부터 매일 오전 15분, 매주 금요일 2시에는 상인 DJ 2명이 고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배우’ ‘굿모닝’과 같은 예명으로 시장 상인 10명이 2인 1조로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는다. 상인회 부회장인 정육점 주인 김성호(63) 씨는 “전화 및 문자 카카오톡 등을 통해 주민의 사연과 신청곡을 받고 있다. 단골은 점포 칭찬도 아끼지 않아 상인들이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 젊은 소비자 유인해 성공
괴정골목시장은 사하 지역 단일 시장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물건을 사러 온 시민으로 북적였다. 60년째 운영되고 있는 이 시장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사하 지역의 중심 상권이었다.
230개 점포 상인들은 어떻게 하면 오래된 단골과 젊은이를 시장으로 불러 모아 30년 전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댔고, 그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상인 방송, 축제의 일상화였다. 여기에 정기 방역과 청소, 상인 친절도 개선, 가격 및 원산지 표시 100%를 이루는 등 대대적인 고객 서비스 정비에 나섰다.
이날 찾은 괴정골목시장은 상인 DJ의 생동감 넘치는 입담을 비롯해 깔끔하게 정리된 대형마트 같은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먼저 매장 앞에 진열된 상품마다 원산지 표시와 상품 설명이 기록된 카드가 눈길을 끌었고 시장 내부에 어지럽던 판매대는 청결하고 통일성 있게 정돈돼 있었다.
조영미 괴정골목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은 “시장상인회와 함께 진열 디자인(VMD) 전략을 도입해 손님이 좀 더 쉽게 상품을 볼 수 있도록 새롭게 진열했다. 시장이 깔끔해지자 손님이 늘었고 단골까지 생겼다”고 흐뭇해했다.
■브랜드 차별화, 마케팅으로 승부수
사업단이 괴정골목시장 변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식자재와 반찬 등 식탁을 책임지는 시장에 걸맞은 브랜드 확립이었다. 2018년 특성화첫걸음시장에 선정돼 시장의 정체성을 드러냈다면, 2020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후 ‘식탁예찬’이라는 브랜드 시장을 탄생시켰다.
식탁예찬 브랜드를 바탕으로 괴정골목시장만의 특징을 살린 특화 콘텐츠 개발에 집중했다. 근린생활밀착형 시장의 상권 특수성과 식탁의 주재료를 특화해 바이럴 마케팅(온라인 SNS 등 공유 채널)에 접목한 것이다. 판촉 홍보 효과는 대성공이었다. 고객 재방문율이 급증했고 이는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시설에도 많은 변화를 줬다. 먼저 시장 남쪽과 북쪽 출입구에 세워진 기둥 모양의 파사드(사진)를 교체했다. ‘괴정골목시장’ 글자만 새겨진 다소 심심했던 현판을 뜯어내고 LED 조명과 시장 브랜드 ‘식탁예찬’을 새겨 젊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파사드로 바꾼 것이다. 밤의 풀컬러 연출은 젊은 층과 지역민의 셀카 성지로 입소문이 났으며 환한 조명은 안전한 시장의 이미지로 변모했다. 점포별 간판도 깔끔하게 통일시켰다.
■전통시장 온라인 주문·배달 서비스
승승장구하던 괴정골목시장도 코로나19 여파를 비껴가지 못했다. 연 평균 매출이 지난해 30% 이상 하락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섰던 사업단이 1년 만에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시장의 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은 온라인 주문과 배달 서비스.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시장 상인회 회관에서 접수를 한다. 상품을 주문받은 콜센터 직원이 상인에게 전화를 걸면 상인이 직접 주문 상품을 상인회 회관으로 가져와 포장한다. 소비자가 오후 4시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 사하구 전 지역에 무료로 배송한다.
나이 든 상인들이 많은 전통시장의 특성상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진척도는 저조했지만, 지난해 6월 1일 31개 점포가 참여한 온라인 쇼핑몰 ‘괴정골목배달’을 오픈했다. 결국 괴정골목배달은 근거리 무료배송과 부산전역 익일택배로 운영한 지 8개월 만에 쇼핑몰 운영 첫 달 매출의 15배를 넘기는 등 순항하고 있다.
시설개선은 물론이고 상인방송국 운영, 온라인 주문·마케팅 등 시대 변화에 맞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소방로를 점거한 노점과 노후화된 시설로 손님을 맞던 사하구 대표 시장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조화를 이루는 ‘초현대식 시장’으로 거듭난 것이다.
조 단장은 “괴정골목시장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창의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상인의 협력이 중요하다. 내달 온라인 박람회와 구청장님이 홈쇼핑의 쇼호스트로 변신해 제품을 소개하는 이벤트도 계획 중이다.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한 괴정골목시장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원 기자 leejw@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