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17> 서른에서 아흔까지 ; 흔 숫자들

  • 박기철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1-06-07 19:53:26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태초에 가장 큰 숫자는? 인류학 지식에 의존하기 전에 우선 머릿속에 입력된 스몰데이터를 돌리고 굴려서 원시적 상상력을 동원하면 얼추 답할 수 있다. 유인원(類人猿)으로부터 분화된 인간의 종류인 인류(人類)가 약 200만 년 전에 나타나고 약 20만 년 전부터 슬기로운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활동할 때까지 숫자 개념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애를 조금 낳으면 적고 그 이상 낳으면 많고, 사냥감이나 열매가 부족하면 적고, 풍족하면 그냥 많다고 여겼을 것이다. 다만 적고 많음을 따지는데 다른 동물들보다는 분별력이 살짝 있었을 것이다.

   
3 4 5 6 7 8 9가 흔한 숫자들
그러다가 3만~4만 년 전부터 등장한 슬기롭고 슬기로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비로소 하나 둘 셋 등의 숫자 개념을 따졌을 것이다. 이들 현생인류는 적고 많은 다소(多少)를 숫자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약 1만 년 전에 채집이 아닌 농사, 수렵이 아닌 유목으로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하나 둘 셋보다 많은 숫자가 필요해졌을 것이다. 지금도 유용한 열 손가락(digit)은 숫자를 헤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면서 벽 기둥 점토판 등에 뾰죽한 꼬챙이로 등을 그으며 숫자를 썼을 것이다. 그러다 숫자를 뜻하는 단어를 말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령 우리 조상들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라고 했겠다. 처음에는 열이 가장 큰 숫자였다. 그러다 열보다 큰 수가 필요하게 되면서 두 배나 많은 스물이라는 단어가 발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많은 수를 어떻게 말하게 되었을까? 이상부터는 열과 비슷한 뜻인 ‘흔’을 썼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발음이 좀 변했다. 셋의 열인 셋흔→서른, 마름모나 마방진처럼 4를 뜻하는 마의 열인 마흔, 다섯의 열인 다섯흔→쉰, 여섯의 열인 여섯흔→예순, 일곱의 열인 일곱흔→일흔, 여덟의 열인 여덟흔→여든, 아홉의 열인 아홉흔→아흔.

이렇듯 30부터 90까지 ‘흔’ 계열의 숫자가 그런 뜻이라는 설에 근거가 있나? 물론 있다. 그냥 그런 대로 그럴 듯한 근거가 아니라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팩트다. 흔하다에서 흔!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흔하다는 열(10)처럼 많다는 뜻이니 그렇다. 열이 하나 둘도 아니고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나 있으니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다. 원시사회에서 아흔이라는 숫자는 세기 힘들 정도로 가장 많은 수였을 것이다. 소를 아홉 마리나, 쌀을 아홉 가마니나 가지고 있었다면 대단한 부자이자 권력자였을 것이다. 지금도 딱 그 정도로만 많게 가지면 좋으련만… .

   
이후 숫자 개념은 폭발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가히 숫자 폭발이었다. 부도 많아지고 권력도 커졌다. 이는 6000여년 전 자아 폭발로 이어졌을 듯하다. ‘자아 폭발’책에서는 이를 인류의 타락으로 규정짓는다. 이 시대는 또 뭐라 규정지을 수 있을까? 인간이 제조한 온갖 물질들이 아흔 수준을 넘어 너무 흔해져서 마구 버려지는….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7. 7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8. 8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9. 9[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10. 10“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3. 3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3. 3“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다시 피어나는 신중년
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부산에 살어리랏다…신(新)청산별곡
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