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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人 도심갈맷길-세 가지 이야기 <하> 피란역사문화길

자갈치에 곰장어 좌판 늘어선 까닭? 골목마다 근현대사 사연 가득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06-14 20:08:32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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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두산공원 자리의 초량왜관
- 조선 내 외교·무역 유일한 공간
- 강화도조약으로 부산항 열자
- 초량 일대 일본인 세상 돼버려

- 대청동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 미국문화원·대사관으로 쓰다
- 50년 만에 반환 후 역사관으로

- 6·25 전쟁땐 임시수도 역할
- 부산역·국제시장 연이은 화마
- 불 쓰는 곰장어·양곱창 가게들
- 바다 가까운 자갈치에 몰린 이유

‘스토리人 도심갈맷길-세 가지 이야기’ 가운데 남은 이야기는 ‘피란역사문화길’이다. 이는 부산 중구 중앙동 사거리에서 출발해 40계단, 백산기념관, 한성 1918, 용두산공원, 부산근대역사관, 보수동 책방골목, 깡통시장과 국제시장, BIFF광장, 자갈치시장을 거쳐 영도다리에 닿는 코스다. 전체적으로 5㎞ 정도 되지만, 골목을 누비는 구간이 많아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초량왜관과 근대개항장 등 한일관계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고 6·25전쟁으로 말미암은 피란살이의 신산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 근대개항, 식민지 조선의 서막

부산 자갈치시장 곰장어 골목. 1950년대 대형 화재가 잇따르자 부산시는 화덕을 쓰는 곰장어 양곱창 등의 업소는 바다와 가까운 쪽에, 불을 덜 사용하는 김밥 비빔당면 업소는 국제시장, 남포동 등에 배치하는 묘안을 짜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정빈 기자
들머리는 40계단인데, 용두산공원 일대에 있었던 초량왜관의 이야기보따리를 먼저 풀어보자. 초량왜관 이전에는 지금의 부산 동구 수정동 수정시장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두모포왜관이었다. 1678년 4월 초량왜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그 자리는 ‘예전의 왜관’이란 뜻의 ‘고관’으로 불린다. 초량왜관으로 이사할 당시 움직였던 일본인이 총 489명(또는 454명)이었다는 기록으로 미뤄볼 때 왜관에는 500명 정도의 일본인이 거주했던 모양이다. 조선 후기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무역을 위해 일정한 거주지를 마련해 줬다. 일본인은 왜관 안에만 머물도록 했다. ‘조선 속의 작은 일본’ 왜관에는 성인 남자만 거주했다. 임진왜란 이후 왜관은 외교·무역의 조선 내 유일한 공간이었다. 초량왜관은 1876년 부산항의 근대개항 때까지 존속했다.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은 동북아시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그해 2월 27일 조선의 전권대신 신헌(申櫶)과 일본의 특명전권판리대신 구로다 기요다카(黑田淸降) 사이에 12개 조의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가, 같은 해 8월 24일 후속 조처로 조일수호조규부록이 잇달아 체결됐다. 이에 따라 부산은 조선에서 가장 먼저 항만을 열었다. 또 일본인의 치외 법권 인정, 일본 화폐 통용 및 무관세 무역 등을 보장해야 했다. 이듬해인 1877년에는 부산구조계조약(釜山口 租界 條約)이 체결됐다. 이를 통해 부산에 일본인 전관 거류지가 생겼다. 초량왜관에 적용됐던 각종 잠금장치는 모두 풀렸다. 부산의 초량 일대는 일본인 세상이 됐다. 부산에서 식민지 조선의 서막이 올랐다.

■ 동척, 식민지 토지 수탈에 앞장

대청동 부산근대역사관은 원래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 부산지점 건물이었다. 국책회사인 동척은 일제가 조선의 경제 침탈을 위해 설립했다. 동척은 전국 각지의 토지를 강제로 매수하는 등 토지 수탈에 앞장섰다. 김해평야의 일원인 강서구 대저1동에 설립된 대저수리조합. 동척은 1925년 기준 대저수리조합의 구역 1861정보(町步·1정보는 약 3000평) 중 235정보를 소유했다. 대저수리조합 지주 중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했다. 동척은 당시 김해 대저에서 소작농에 이중소작료를 요구해 소작쟁의가 발생하는 등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런 동척의 부산지점 건물은 해방 이후 미국의 주둔지 건물로 사용되다가 1948년 9월 한미 간 협정에 따라 미국문화원으로 무상 사용됐다. 6·25전쟁 기간 부산 임시수도 시절에는 미국 대사관으로 쓰였다. 결국, 1999년 4월 미문화원 건물은 50여 년 만에 대한민국 정부에 반환됐다.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문을 연 것은 2003년 7월.

식민지 조선의 출발점이던 부산은 근대 금융도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백산기념관 바로 옆의 옛 한성은행 부산지점(청자빌딩) 건물은 1918년 세워졌다. 일제 강점기 부산의 중심부이던 본정1정목 일대 근대기 은행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은행 건물에서 사무소 및 주택으로 사용되면서 일부 변형이 이뤄졌지만, 지상 1층 외형에는 건물 건립 당시 원형이 일부 확인된다. 이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역사·문화적 공간인 ‘한성 1918’로 거듭났다.
■ 자갈치시장에 있는 양곱창, 왜

근대에서 현대로 시간여행을 옮겨간다.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 시절 얘기다. 당시 부산은 전국에서 들이닥친 피란민으로 넘쳐났다. 일제강점기 인구 30만 명 수준에 맞춰져 있던 도시는 하루아침에 100만 명 도시가 됐다. 평지는 물론이고 산비탈까지 몸 비빌 곳이면 어디나 판잣집이 들어섰다. 용두산 대청동 보수동 부평동 충무동 등 빈터는 판잣집으로 가득 채워졌다. 앞서 1945년 무렵 일본인이 본국으로 떠나면서 남긴 물품, 징용을 갔던 한국인이 가지고 온 물품 등을 맞바꾸는 ‘국제(國際)적인 시장(市場)’이 들어섰다. 6·25전쟁 이후에는 미군의 원조 물자와 밀수품도 부산에 대거 들어왔다. 1948년 자유시장으로 불리던 이곳은 1950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부산은 1950년대 초반 연이은 화마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다. 1953년 11월 27일 저녁 영주동 판잣집에서 불이 났다. 14시간 동안이나 타오른 화마는 부산역 앞 일대 번화가 건물을 비롯해 민가 등 1250채를 태웠다. ‘부산역전 대화재’다. 화마로 지금의 도시철도 중앙역 쪽에 있던 근대건축물 부산역사가 사라졌다. 국제시장에도 화마가 덮쳤다. 1953년 11월 27일에 이어 이듬해 1월 30일 국제시장에 잇달아 불이 났다. 화재로 국제시장 대부분이 소실됐다. 이재민은 1만여 명에 달했다. 다닥다닥 붙은 시장통에서 화덕을 쓰는 좌판도 골칫거리였다. 결국, 부산시는 불을 사용하는 곰장어 양곱창 등의 좌판을 바다에 가까운 자갈치시장 쪽으로, 불을 쓰지 않는 김밥과 비빔당면 등의 좌판은 국제시장, 남포동 골목길에 배치하는 묘안을 짜냈다.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 “하자마 땅값 올라간다” 비아냥

보수사거리와 대청사거리 사이에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다. ‘헌책이 새 주인을 만나 새롭게 태어나는 창조의 공간’이다. 보수동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놔두고 간 책이 많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를 모아 팔기 시작한 게 책방골목의 시작이라는 설, 피란 온 부부가 헌책을 팔면서 시작됐다는 설 등이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피란 시절 구덕산과 보수동 일대에 들어선 임시학교의 등·하굣길이기도 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민주화운동의 산실이기도 했다. 1978년 설립된 양서협동조합은 ‘좋은 책 보급’ 운동을 하면서 진보적인 지식인과 청년 학생들의 민주화 여론 형성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는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의 밑거름이 된다. 보수동 책방골목 내 양서협동조합을 기리는 글 판이 있는데, 그 뒤쪽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부산중부교회가 있다.

영도다리로 향한다. 1934년 11월 개통된 영도다리는 우리나라 연륙교로 처음이고, 교량을 들어 올리는 도개교로도 최초의 존재다. 일제 강점기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땅 부자로 통했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는 영도에도 많은 땅을 소유했다. 그래서 영도다리가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은 “하자마 땅값 올라간다”고 비아냥거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영도다리 건설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당시 부산부(釜山府) 공식 집계로만 조선인 사상자는 사망 17명, 중상 41명. 이 때문에 영선고개에 위령탑을 세웠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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