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22> 천 단위와 만 단위 ; 글로벌 스탠다드?

  • 박기철
  •  |   입력 : 2021-07-12 19:29:2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배운 유용한 지식이 있다. 선생님께선 큰 숫자를 읽을 때 네 자리씩 콤마를 찍어서 만-억-조 순서대로 거꾸로 읽으면 된다고 하셨다. 이후로 나는 가끔 대기업들의 재무상태표에서 큰 숫자를 만나면 딱 그렇게 했다. 가령 35,788,965,428,691원과 같이 세 자리마다 콤마로 끊은 숫자를 보면 네 자리씩 콤마를 끊었다. 덕분에 35,7889,6542,8691은 35조 7889억 6542만 8691원으로 쉽게 읽었다.

   
천(1,000) 단위인 서양 숫자와 만(1,0000) 단위인 동양 숫자
세 자리씩 천 단위로 끊어 읽는 것은 서양식이다. 미국인들은 35,788,965,428,691을 35 Trillion 7 Hundred 88 Billion 9 Hundred 65 Million 4 Hundred 28 Thousand 6 Hundred 91으로 읽는다. 저들에겐 그리 끊어 읽는 게 편하겠지만 우리에겐 무척 불편하다. 그런데도 한국인의 숫자 표기는 전적으로 서양식을 따르고 있다. 왜 읽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그렇게 하고들 있을까? 필자 머릿속으로 대충 짐작하기로는 그렇게 한 게 불과 100년도 안된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의 강점기에 서양식 은행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저들이 천 원 이상의 숫자에 천 단위로 콤마 넣는 걸 보고 그냥 그러려니 따라했을 가능성, 또 하나는 8·15광복 후 중앙 한국은행이 시중 민간 은행들에게 그리 하도록 전면 시행 행정지침을 내렸을 가능성이다. 어찌 되었든 순리보다 모방이나 강제로 그리 된 것같다.

숫자가 조를 넘어서면 아무리 천 단위의 숫자 표기에 능숙한 은행원들도 읽기 매우 힘들다. 실제로 은행을 10년이나 다닌 아내에게 72,835,788,965,428,691을 어떻게 읽는지 물었는데 귀찮은지 답변을 피했다. 만 원 단위로 끓으면 7,2835,7889,6542,8691이라 7경 2835조 7889억 6542만 8691이라 금방 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숫자 끝자리부터 만 단위로 끊는 우리식 숫자체계는 만(萬)-억(億)-조(兆)-경(京)-해(垓)-자(秭)-양(穰)-구(溝)-간(澗)-정(正)-재(載)-극(極)으로 커져간다. 아무리 큰 글자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천 단위로 끊는 미국식 숫자체계인 Thousand-Million-Billion-Trillion-Quadrillion-Quintillion-Sextillion-Septillion-Octillion-Nonillion-Decillion-Undecillion-Duodecillion-Tredecillion-Quattuordecillion-Quindecillion을 쉽게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네 만이나 억 등에 해당하는 하나의 영어 낱말이 없기 때문이다. 1만은 10 thousand이며 1억은 1 Hundred Million이다. 반대로 Million이나 Billion 등에 해당하는 하나의 국어 낱말도 없다. 1 Million은 100만이며 1 Billion은 10억이다. 그나마 세 자리수와 네 자리수가 서로 겹치게 되는 10의 12제곱인 Trillion과 조, 24제곱인 Septillion과 자, 36제곱인 Undecillion과 간, 48제곱인 Quindecillion과 극은 서로 콤마 자리가 같으니 뜻이 같다. 그래도 굉장히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식대로 만원 단위로 끊는 게 우리 숫자 문화에 당연히 어울린다. 하지만 천원 단위로 끊어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제도라는 관습적 명분을 어기기 힘들다. 백년도 안된 습관적 명분에 따른 제도라도 그에 따르는 게 대세면 바꾸기 힘들다. 세상만사 다 그렇다. 잘못된 제도가 혼란하며 부당해도 ‘그냥 그러려니 그러네’하고 여전히 따라 간다. 사람 사는 세상 참 거시기하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기초연금 받으면 부자?…수급 상위 1% 근로소득 월 220만원
  2. 2부산·울산·경남 대체로 맑음…낮 최고 19∼21도
  3. 3트럼프 “이란과 대화 중…전쟁에 쓴 돈 베네수서 만회”
  4. 4기표소서 투표지 촬영해 단톡방 공개한 50대…벌금 50만원
  5. 5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0.5원 ↑
  6. 6한미일 외교장관 “北 완전한 비핵화 위한 의지 재확인”
  7. 7무면허 음주 뺑소니에 제지하던 사람 다치게 한 40대 항소심도 실형
  8. 8전조등 얼굴에 비췄다고 운전자 폭행한 50대 징역 6개월
  9. 9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웃돈 붙여 되판 10대 검거
  10. 10“나 감방서 나왔다”…출소 나흘 만에 또 스토킹한 60대 징역형
  1. 1한미일 외교장관 “北 완전한 비핵화 위한 의지 재확인”
  2. 2진성준 뒤늦게 美비자 발급, 野"한미동맹 균열 드러낸 외교 망신"
  3. 3李대통령 "다문화 지원 필요하나 역차별까지 정당화 안 돼"
  4. 4장동혁 “李대통령 ‘황제골프’ 수준 넘어 ‘민폐골프’”
  5. 5“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6. 6“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7. 7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8. 8[속보]한동훈, "李 정권 막는 명분 같이라면 '훈훈연대' 힘을 모을 것"
  9. 9[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10. 10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1. 1기초연금 받으면 부자?…수급 상위 1% 근로소득 월 220만원
  2. 2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8.3원… 전주보다 0.5원 ↑
  3. 3한화오션까지 동참… '조선사 빅3' 공동납품 체계 완성
  4. 4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5. 5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6. 6‘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7. 7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8. 8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9. 9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10. 10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1. 1부산·울산·경남 대체로 맑음…낮 최고 19∼21도
  2. 2기표소서 투표지 촬영해 단톡방 공개한 50대…벌금 50만원
  3. 3무면허 음주 뺑소니에 제지하던 사람 다치게 한 40대 항소심도 실형
  4. 4전조등 얼굴에 비췄다고 운전자 폭행한 50대 징역 6개월
  5. 5프로야구 입장권 부정구매 후 웃돈 붙여 되판 10대 검거
  6. 6“나 감방서 나왔다”…출소 나흘 만에 또 스토킹한 60대 징역형
  7. 7[날씨칼럼] 가을 하늘, 안전을 돕는 페이스메이커
  8. 8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9. 9“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10. 10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1. 1“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2. 2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3. 3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7. 7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한 아이의 내일을 바꾸는 '부산의 힘'
한부모 가장 장애자녀 셋 돌봄…낡고 좁은 집 ‘위태’
위기가정 긴급 지원
홀로 질병과 생활고 견디는 독거노인…수도까지 끊겨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