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산업재해 추방 운동을 벌인 제가 사고를 당할 거라곤 솔직히 생각도 못했습니다.”
부산 기장군의 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에서 일하는 정성환(60대·가명) 씨는 4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올해를 끝으로 퇴직하는 그는 지난해 11월 오른쪽 눈을 잃었다. 작업장에서 기계 금속 가공 업무를 맡은 그는 자신의 파트가 아닌 일을 돕다가 사고를 당했다. 연말이라 공장이 한창 바쁠 때였다고 한다. “유압 프레스로 조립용 핀을 밀어넣는 작업인데, 정확한 위치에 정밀하게 세팅해야 합니다. 유압 프레스를 한 번도 다뤄본 적 없었지만, 연말에는 조립 파트가 워낙 일이 많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프레스를 세팅해 핀을 압입하는 과정에서 핀이 부러졌고, 부러진 핀이 정 씨의 눈을 찔렀다. 원래 이 작업을 할 때는 아크릴로 만든 보호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는 회사 사정상 작업 공정 속도를 올려야 하는 시기였다.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업 사정을 먼저 고려해야 했다. 처음 핀이 눈을 찔렀을 땐 눈에 새가 한 마리 첨벙 들어오는 느낌이었고, 통증이 없었다. 눈을 떠보니 뿌연 무지개 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철 파편을 뽑아낸 그의 눈은 이미 동공이 터져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돼 있었다. 재건 수술을 해도 회복된다는 확신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정 씨는 결국 한쪽 눈을 포기했다.
사실 정 씨는 1990년대 초부터 상급 노조에서 활동하며 산업재해 추방 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직접 노동자들에게 산재 예방 교육이나 상담도 진행했다. 롤러에 팔이 잘린 사람, 공장 내 유해한 공기 탓에 질병을 앓는 사람,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은 노동자 등을 숱하게 봐 왔다. 이들의 장례를 치러준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그도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정 씨는 안전과 작업속도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산재를 막으려면 작업장의 위험 불안정 상태를 없애도록 안전 장비를 마련하고, 안전책임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런데 돈이 든다. 그래서 기업은 ‘노동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노동자는 조심하는 것과 상관 없이 다치게 돼 있다. 납품을 빨리 하라고 주문하면, 노동자들은 안전장치를 폐쇄하고 편하고 빠르게 작업하려 한다. 회사는 이걸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사고가 나면 자신들이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현 시스템에서 기업은 동종업체보다만 산재율이 낮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경우엔 노동청의 근로감독을 피할 수 있고, 시정명령을 받아 돈을 들여 안전 장비를 구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며 “그렇다고 기업주가 휴머니스트라고 사고가 막아지는 것 또한 아니다. 사업주가 착한 사람이냐 아니냐에 따라 목숨이 결정되어선 안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기업주가 확실히 경각심을 갖게 할 수단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신심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