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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다시! 최동원 <1> 운명 앞에서 와인드업하다

스핑크스 앞 나폴레옹처럼 … 야구란 수수께끼와 정면승부

  • 이성희 시인
  •  |   입력 : 2021-12-30 19:58:05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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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레전드 "마 함 해보입시더"

- 이집트 원정 나선 나폴레옹
- 테베의 저주 푼 오이디푸스
- 1984년 한국시리즈 최동원
- 일생일대 우승위해 전력투구

# 흔들리는 부산 정체성에 강속구

- 선수협회 결성·野 시의원 출마
- 손해란걸 알고도 직진한 배짱
- 자신을 끝까지 연소시킨 깡 등
- ‘부산 정신’ 대표 아이콘으로

한 철의 지독한 열병 같았던 그해 코리안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은 7차전의 승리투수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갖다 댔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아직 식지 않은 격정의 열기와 막 정상에 올라 선 환희, 엄습하는 피로, 그리고 그 아래로 알 수 없는 비애 같은 것이 스쳐가는 기이한 표정으로 젊은 투수는 말했다. “자고 싶어요.” 이게 뭐지? 세계 야구사에 전무후무할 황당한 답변. 이제 우리는 그 기이한 표정과 황당한 답변으로 최동원이란 이름을, 그 황홀하고도 쓸쓸한 기억을 소환해야 한다.

그의 폭포수 같은 커브를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적어도 나의 기억 속 최동원은 역동적인 와인드업, 전력으로 뿌리는 불같은 강속구, ‘칠 테면 쳐라’는 화끈한 정면승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절정의 높은 마운드 위에 금테안경을 끼고 오만하게 선 사내의 정면부 뒤로 길게 드리워졌던 고독의 긴 그림자와 한 시대의 스산한 바람을 떠올려야 한다. 그대 이제 그곳에서 평강하신가요?
19세기 신고전주의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1886). 캔버스에 유채.
■ 오라! 인생의 수수께끼여

19세기 신고전주의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한 점 그림이 묘하게 최동원의 긴 그림자와 오버랩된다. ‘스핑크스 앞의 보나파르트’(1886)는 장 레옹 제롬이 나폴레옹 탄생 100주년이 되는 1869년부터 기획한, 영웅을 기념하는 일련의 작품 중 하나다. 제롬은 이집트 원정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사막 가운데 기괴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와 조우하는 장면을 그렸다. 스핑크스의 머리 모양과 나폴레옹 모자의 형태가 서로 낯설면서도 닮아 있어 마치 이 만남이 어떤 운명에 이끌려진 것인 듯한 느낌을 준다. 화가는 프랑스 대군을 원경에 배치하고 수행한 참모들은 왼쪽 화면 끝에 그림자만 드리우게 했다. 그리하여 오직 한 인간만이 고독하게 스핑크스와 맞서고 있다. 그 사이로 살짝 건드리면 쩡 하고 금이 갈 것 같은 푸른 영원의 대기가 흐른다. 그 대기에는 아득한 옛날의 신화가 스며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입구에서 스핑크스를 만난다. 그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이라는 스핑크스의 저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저주에서 해방시키는 영웅이 된다. 그림 속 나폴레옹도 이집트 입구에서 막 스핑크스가 내는 수수께끼를 듣고 있는 것일까? 아니,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조만간 그는 저 원경에 대열을 짓고 있는 프랑스 정예부대를 이끌고 스핑크스를 지나 이집트를 정복할 것이다. 그리고 영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영웅, 금테안경을 낀 롯데자이언츠 등번호 11번 투수가 마운드에 섰던 그 어느 때인가에도, 어쩌면 그 7차전의 어느 순간 문득 등 뒤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면서 관중의 함성이 개수대에 빨려들어가는 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동료 선수들도 그림자만 남고 타자도 포수 미트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불현듯 야구의 신이나 스핑크스가 거대하게 솟아오르면서 그에게 수수께끼를 던졌을 것만 같다. 모두가 사라진 절대 고독의 푸른 대기 속에서 말이다. 그 수수께끼가 뭔지 모르지만, 투수는 금테안경을 한번 쓱 밀어 올리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1984년 코리안시리즈 선발 등판 전 최동원의 말)

그것이 야구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최동원의 풀이였으며, 그의 야구 미학이며 정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참으로 무모하고 미련하지 않은가. 앞으로 있을 수도 없고, 절대로 있어서도 안 될 그해 코리안시리즈 7차전, 3번의 완투와 한 번의 구원 다음 바로 선발등판하는 7차전, 그것은 최동원 일생일대의 미친 정면승부였다. 왜 그는 한발 물러설 줄 몰랐던 것일까?

■ 뛰쳐나가 장렬히 부딪치다

역투하는 최동원. 국제신문 DB
오이디푸스도 나폴레옹도 영웅이 되지만 그들의 삶은 결국 비극으로 끌려들어간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이중적이었다. 드러난 수수께끼 아래 숨겨진 수수께끼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드러난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숨겨진 수수께끼를 몰랐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비극의 격랑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된다. 우리의 영웅 최동원의 남은 여정도 그러했다. 그는 자신을 소진시키고 고향에서 추방당하여 떠돌다 결국 암으로 쓰러지게 된다. 숨겨진 수수께끼란 뭘까? 그것은 스핑크스 자신이 아닐까? 그 자신이 상징하는 ‘신비’ ‘모순’ ‘자연의 힘 ‘운명’ ‘죽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분명 그랬을 것이다, 최동원이 만약 숨겨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직면했다면 다시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알겠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그래야 최동원이다.

1984년 코리안시리즈에서 삼성의 에이스였던 김일융은 2011년 인터뷰에서 “내가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라고 생각할 때 최동원은 ‘나는 어디까지든 가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고 술회하고 있었다. 최동원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혹독한 보복을 예상하고도 약자들을 위한 선수협의회 구성을 주도하고, 그 때문에 그는 고향에서 추방당했다. 은퇴 후, 군부 세력과 합당해 대세를 구축한 김영삼의 민자당이 던지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꼬마’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 서구 광역의원에 출마하였다. 그리고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신바람나는 한판 승부를 겨루겠습니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장렬히 낙선했다. 동기와 후배들이 프로 구단에서 감독급 한 자리씩 할 때, 천하의 최동원은 그 자신이 일으켜 세웠다 할 고향 구단은 고사하고 다른 구단 2군 투수 코치로 전전했다.

그러다가 암과의 마지막 정면승부 끝에 그 찬란하고도 고달픈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그렇게 살았다. 어쩌면 그는 이 모든 결과를 예감하고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것만 같다. 모든 것은 그해 시리즈 7차전의 연장선에 있었다. 선수협의회도, 광역의원 출마도, 그리고 마지막 암투병까지도. “마 함 해보입시더”하고 그는 정면승부로 전력투구한 것이다. 그리고 승부마다 자신을 소진시켰다. 우승 첫 소감이 “자고 싶어요”일 정도로.

■ 부산의 정신·미학·사랑

항구도시 부산의 정체성은 오랜 전통의 동래부와는 상당히 불연속적인 듯 보인다. 오히려 부산포에서 부산이라는 근대 도시의 형성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은 짧은 기간 기형적일 정도의 급격한 양적 팽창이었다. 전통의 부재와 급격한 팽창에 따른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공복감 때문에 항도 부산은 자주 과도할 정도의 집단적 열기에 휩싸이곤 했다.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부마항쟁, 1987년 전국에서 가장 격렬했던 민주화 시위, 그리고 부산의 저녁을 광란으로 빠뜨리던 야구가 있었다. 그곳에 최동원이 있었다. 최동원이 보여준 온몸을 던지는 역동적 와인드업, 손해임을 알고도 직진하는 미련하고도 화끈한 정면승부, 자신을 끝까지 연소시키는 깡, 그리고 약자에 대한 따뜻한 연민은 좀 거친 듯한 부산 사나이들의 억센 억양의 향기와 미학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부산이 이미 사라지거나 시들어버린 ‘임시수도’ ‘신발 공장’ 외에 텅 빈 정체성에 허기졌을 때 그곳으로 최동원의 강속구가 날아들었다. 그리하여 최동원은 부산 정체성과 부산의 정신, 부산의 미학을 이루는 중요한 한 기호가 되었다.

부산이 가장 열광적으로 사랑했으면서도 부산이 추방해버린 우리의 영웅, 최동원은 부산이 극복하지 못하고 한 번씩 반복하면서 아프게 재생하고야 마는 마음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다. 그는 부산의 위대한 기념탑이자 우리 가슴에 몰래 감춘 주홍글씨이며, 훈장이자 상처이며, 자부심이자 미안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움이다. 그대 그곳에서 평강하시라!

이성희 시인·미학자

※공동 기획=국제신문 최동원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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