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 때 저라고 안 떨리겠어요
- 표시 안 낸 모습이 오해 불렀죠”
- 아픈 부친 비하한 구단과 마찰
- 부모 이름 걸고 야구했던 효심
- 어깨 망가져도 팀 헌신이 먼저
- 필요할 때마다 등판 마다 안해
-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힘
무쇠팔, 철완(鐵腕), 불같은 강속구, 강심장, 칠 테면 쳐봐라, 투혼의 화신, 함 해보입시더, 오기와 자존심, 부산의 영웅, 한국야구의 전설…. 야구선수 최동원을 규정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존재한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간 최동원은? 인간 최동원은 어떤 사람일까.
2008년 5월 필자는 야구선수 최동원 평전‘거인의 추억’을 출간했다. 이 책을 쓰며 최동원에 관한 수많은 문헌과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그를 세 번 만났다. 첫 만남은 2006년 9월 27일이다. 그는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로 재직 중이었다. 대전 구장에서 그를 만나 어느 관광호텔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책을 쓰고자 하는 취지를 설명하고 출간 허락을 받고 일어섰다.
두 번째 만남은 그해 11월 3일, 대전에서 다시 만나 학적부 열람 동의서에 사인을 받은 후 헤어졌다. 마지막 만남도 같은 해 12월 30일 이뤄졌다. 그는 혜화동 서울대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간단한 진찰을 받는데 진찰 후에 인터뷰를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인터뷰는 서울대병원 보호자 대기실에서 70분가량 진행됐다.
■ 착한 사람의 무모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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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동원 선수가 1989년 국제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이다. 국제신문 DB |
세 번의 만남으로 사람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느낌이란 게 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결코 강한 심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우리가 아는 ‘대찬 부산 싸나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홈런을 얻어맞아도 눈 하나 꿈쩍 않는 그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당연히 떨렸지요. 하지만 절대 표시 안 내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마운드에선 늘 거만하고 건방지게 보였겠지요. 사실은 아닌데….” (2004년 12월 16일 자 경향신문)
인간 최동원은 눈물도 많았던 모양이다. 각종 언론에서 ‘최동원이 눈물을 글썽였다’는 식의 보도를 여러 번 봤다. 사전 자료 조사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받은 느낌은 그는 강하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아니 강해지려고 무척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영웅이자 거인(巨人)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어떤 정치인은 “사실 나는 겁쟁이인데 옳은 길이라고 믿고 싸우다 보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용감하게 보인 것”이라는 말을 했다. 최동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겁쟁이까지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는 심성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런 그가 보통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는 희생과 투혼을 보여준 것은 ‘착한 사람의 무모한 용기’에서 비롯됐다고 나는 믿는다.
■ 영웅으로 가는 길을 열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우선 효심이 깊었다. 여러 보도와 증언이 있지만 두 가지만 소개한다. 1975년 5월 10일 자 중앙일보는 “최동원은 6·25전 상이 장교인 아버지의 열성적인 정신적 뒷받침이 오늘의 성장에 큰 힘이 되었고, 집안 생계를 맡은 어머니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연세대 학보인 ‘연세춘추’ 1978년 6월 12일 자에는 “‘실력보다 정신력이 중요해 경기장에 들어서면 우선 부모님께 마음속에서 인사하고 나서야 마음이 안정되어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최 군은 부산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은근한 효도파”라고 쓰였다.
효심은 모든 선한 마음의 근본이다. 나는 최동원이 한국야구의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지극한 효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는 삼 형제 가운데 맏이로서 책임감과도 연결된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 의족을 하고 다니시는 것만 본 사람들은 아버님에게 다른 불편은 없는 줄만 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집에서 의족을 푸시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하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때론 아버님은 고통을 못 이겨 손수 진통제를 놓기도 하셨다. 퉁퉁 붓고 벌게진 아버님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면서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몸도 불편하신 분이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열심히 해야겠다.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거인의 추억’ 중)
최동원은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야구를 했다. 1988년 구단과의 연봉 다툼과 뒤늦은 팀 합류는 사실 ‘90만 원’을 더 받아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비하한 구단 임원의 발언을 용서할 수 없었고 해당 임원의 사과를 받고서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4500만 원에 달하는 금전 손실을 감수했다.
■ 약자 위해서도 몸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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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 롯데 자이언츠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한 김용희(왼쪽부터) 김용철 최동원 유두열 선수. 국제신문 DB |
착한 사람은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때, 또는 모두가 기적만을 바라고 있을 때 몸을 사리지 않는다. 1977년 연세대의 23연승, 1981년 ‘롯데 자이언트’(아마 구단)의 ‘코리안시리즈’ 우승,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제패에서 보여준 그의 투혼은 영웅 이상의 그것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동원보다 탁월한 기록을 남긴 선동열은 비가 오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등판을 꺼렸다고 알려져 있다. 결코 그를 낮춰 보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프로 의식’이다. 선동열은 최동원보다 위대한 ‘프로야구 선수’였다.
그러나 최동원은 한국야구 역사상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불멸의 ‘야구선수’였다. 그의 헌신과 투혼은 미련할 만큼 무모했다. 그가 필요한 상황, 그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오면 그는 기꺼이 스파이크 끈을 고쳐 매곤 했다. 그는 약자를 위해서도 온몸을 던졌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협의회 결성 과정에서 그는 네임밸류 없는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스스로 총대를 멨다. 부산에서 특히 약자인 ‘꼬마 민주당’ 간판을 걸고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은퇴 후 그는 한때 숟가락을 들기 어려울 만큼 어깨가 만신창이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1984년 한국시리즈 같은 기회가 다시 온다면 마운드에 오르겠느냐’는 질문을 받자 기꺼이 그러겠노라는 답했다. 뜬금없는 상상을 해본다. 그가 왜적을 맞이한 부산진성의, 동래성의 장군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죽음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는 몸을 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의리와 명분을 위해 무모한 용기를 부릴 줄 아는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스웨덴의 팝그룹 ‘아바’가 부른 ‘페르난도’는 자유를 위해 전쟁에 참전한 병사의 회고를 노래한다. 병사는 친구인 페르난도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너무 두려웠네, 페르난도(I was so afraid, Fernando).… (하지만) 그날처럼 또 싸워야 한다면 기꺼이 싸우겠네, 친구여(If I had to do the same again, I would, my friend).”
■ 오직 최동원만이
최동원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2011년 7월 22일 경남고와 군산상고 ‘레전드 리매치’ 경기에서 그는 경남고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등장했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말기 암 환자 모습이었지만 그는 ‘다이어트 중’이라며 애써 허세를 부렸다. 나는 이것이 정말 그다운, 진정으로 최동원다운 세상과의 공식 작별 인사라고 생각한다.
그가 진정 강한 심장의 소유자였다면 어땠을까. 시한부 인생임을 밝히며 헛헛한 웃음으로 ‘잘 계시라’며 세상에 인사를 보내지 않았을까. 이날 그는 끝내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그저 유니폼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입고 싶어 경기장에 나왔다는, 유족 전언이 나중에 알려졌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강하게 보이기 위해, 아니 강해지기 위해 잦아드는 힘까지 짜고 또 짜냈다. 세상이 바란 영웅 최동원 이미지를, 감내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이제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약자 중 약자가 된 인간 최동원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사람이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야구선수 최동원도 모든 걸 가질 수는 없었다. 사람은 그러나, 모든 걸 던질 순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모든 걸 던지지는 않는다. 한국야구에서 최동원만이, 오직 최동원만이 자신의 모든 걸 던졌다.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됐고, 한국야구의 전설이 됐다. 단언컨대 이제 ‘또 다른 최동원’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영원히.
정범준 ‘거인의 추억’ ‘돌아오라 부산으로’ 저자
※공동 기획=국제신문 최동원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