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부산 정치권과 지자체 일부가 ‘개천에서 나는 용’을 돕자며 고향 출신 수도권 대학 재학생을 위해 학숙 등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을 살리는 데 기여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서울공화국’ 체제를 굳히는 데 헛심을 쏟는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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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강서구 내발산동에 자리한 공공기숙사. 동래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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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부산 북구에 따르면 북구의회 김태식(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임시회 5분 발언에서 구에 ‘재경학숙’ 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북구장학회 등을 활용해 서울·경기지역으로 진학한 북구 출신 학생에게 기숙사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제안에서 김 의원은 연어의 모천회귀(바다로 간 연어가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것)를 언급하며 “도움을 받는 지역 우수 인재가 고향을 생각하며 북구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전국 광역·기초지자체가 자체 운영하는 재경학숙은 모두 27곳이다. 2014년부터는 지자체 18곳이 연합해 서울시가 건립한 강서구 내발산동 공공기숙사를 운영 중이다. 부산에서는 동래구가 이 연합에 포함돼 있다.
동래구는 2019년부터 서울·경기권 학생을 위한 공공기숙사에 참가했다. 내발산동 기숙사와 서대문구 홍제동에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세운 홍제 행복기숙사를 더해 매년 14명의 학생을 선발한다. 한 해 예산은 2500만 원이다. 이 두 곳을 ‘동래학숙’이라고 이름 붙인 동래구는 수혜 학생의 편지를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동소문동에도 기숙사를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
기장군도 2024년 1학기 운영을 목표로 서울 용산구에 입사생 750명 규모의 대학생 연합기숙사를 세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지원금 400억 원으로 경주시 울주군 영광군과 함께 건립한다. 기장군 등은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고향 출신 학생에게 1인당 한 달 15만 원 정도만 받고 학숙을 제공할 예정이다.
수도권으로 진학한 고향 출신 학생을 위해 이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건 기대 심리에 기반한다. 서울로 간 학생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줘 이들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면, 결국 고향에 모종의 기여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녀를 서울로 보내지 못하는 가정을 지원한다는 명분도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생계가 어려워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학생을 돕는 것은 지역민인 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일방적인 희망 사항에 가깝다. 국제신문이 한국고용정보원의 2018년 대졸자직업이동경로(GOMS)를 분석한 결과, 2017년 대학 졸업생 중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경기지역 대학으로 진학한 응답자 250명 가운데 부산권 기업에 취직한 이는 8명에 불과했다. 반면 서울권에 취직한 응답자는 107명, 경기권은 31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지역 인재의 수도권 유출 현상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른바 수도권 명문대 진학생은 대부분 고소득자 부모를 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부산 연제) 전 의원이 2018년 공개한 ‘2018년 1학기 서울·고려·연세대 대학생 소득분위 산출 현황’을 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이들 학교의 재학생(전체의 43%) 중 소득 10분위(월 소득 1200만 원 이상) 비율은 30%, 9분위(730만 원 이상) 비율은 16%로 모두 더해 46%였다. 이 대학들의 저소득층(기초·차상위계층) 비율은 6%에 그쳤다. 반면 나머지 대학의 학생 중 9·10분위 비율은 25%였다. 세 학교의 고소득층 비중이 다른 대학보다 배가량 많다. 지자체가 ‘개천에서 나는 용’의 산파 역할을 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자체가 나서 서울권 재학생을 위해 학숙이나 학비를 지원하는 건 ‘서울공화국’ 체제를 공고히 하는 자해 행위란 비판이 제기된다. 전북대 강준만(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지방 식민지 독립 선언’에서 “인재를 서울로 보내면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할 수 있느냐”며 이 같은 행태를 지적했다.
지방분권전국회의 박재율 공동대표는 “대학 서열이라는 큰 흐름이 작용하는 상황을 놔둔 채 지자체를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지역 분권 차원에서는 분명히 모순적인 행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