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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최동원 <5> 스포츠와 뮤지컬 사이 그의 부활을 꿈꿔본다

투구는 0.1초 승부… 그 찰나의 환희를 뮤지컬로 소환하자

  • 심문섭 프로듀서·예술은공유다 대표
  •  |   입력 : 2022-01-25 19:28:24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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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의 폭행·메이저리그 좌절 등
- 권력 횡포에도 꿋꿋이 전력투구
- 그의 삶은 동시대 한국사 자화상

- 음악은 관객의 정서 뒤흔들 요소
- 인간 최동원 그려내기에 효과적
- 무턱대고 만든 콘텐츠는 실패해
- 충분한 예산과 시간 들여야 성공

스포츠와 공연예술은 물과 기름처럼 속성이 매우 다르다. 공연은 의도한 대로 잘 짜인 설계와 재생을 통해 관객에게 같은 정서적 동요를 불러일으키지만, 스포츠는 다르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며, 매 순간 즉흥의 연속이다.
광주시·광주문화재단이 민간과 함께 만든 ‘뮤지컬 광주’ 한 장면. 이 작품은 2020년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창작 부문 프로듀서상을 받는 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신문 DB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 했던가. 스포츠와 공연예술은 다르면서도 무척 닮았다. 드라마틱한 장면 장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두 방망이질 치게 하고, 모두의 마음이 모여 하나의 간절한 염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반복 불가능한 ‘각본 없는 드라마’에 잘 짜인 각본을 덧대 재생하면, 그때 그 감동은 물론 우리가 놓쳤던, 또는 성공과 승리의 화려함에 묻혀 몰랐던 다른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손기정 옹, 4전 5기 챔피언 홍수환, 맨발 투혼 박세리, 한국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등등 대한민국 스포츠를 수놓은 이슈와 스타가 즐비하지만, 구도(球都) 부산에 사는 창작자로서 뺄 수 없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79년 부마항쟁부터 88 올림픽까지, 권력의 통치정책으로 견인된 스포츠 무대에서 홀로 양말을 끌어올리고 공을 감아 쥔 한 명의 야구선수. 1984년 한국시리즈 4승 이후 ‘잠을 자고 싶다’는 한 마디를 남긴 최동원이다.

최동원을 검색하면 뜨는 많은 기사 중 나는 ‘최동원 폭행사건’에 주목했다. 대학에 가고 국가대표로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우승했지만, 조직사회에 만연한 기강을 빙자한 폭행은 군부가 장악한 한국 사회에서 그에게도 닥쳤다. 쿠데타로 출범한 제5 공화국은 선배의 폭행으로 선수 생명 위기에 선 선수와 부친이 오히려 고초를 더 겪는 시대였다. 1980년 광주에 방아쇠를 당기고도 피해자를 폭도로 몰던 시대였고, 권력에 의한 폭력은 88 올림픽을 앞두고도 거침없었으니, 일개 야구선수에게 가해진 선배의 폭행은 피해자의 과잉 반응으로 정리되는 게 순서였을지 모른다. 6·25에 참전해 다리를 잃고 의족을 했던 부친은 자식의 팔을 지키고자 최선의 선택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을 던지던 최동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동원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결심한다. 파격적 계약 내용이 오갔다. 그러나 무산됐다. 서명만 남긴 상황에서 그를 막아 세운 건 국가와 협회였다. 이어 정부 주도로 대기업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것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손에 잡은 공의 속도와 궤적뿐. 1984년 그 공 하나로 기적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선동열과의 퍼펙트 대결, 롯데에서 방출까지 그의 삶은 동시대 한국사를 증명하는 최고 자원이다.

■ 어설픈 재연 말고, 창의성

최동원의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는 창작자를 자극한다. 연극으로 만든다면 최동원과 주변인물 대사를 통해 심리·상황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특정 사건에 집중하기에는 최적화된 장르로 볼 수 있으며, 인간 최동원을 다시 들여다 볼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인물, 변화하는 환경, 그라운드 장면 그리고 긴장감을 속도감 있게 끌어내려면 시간을 더 편리하게 편집할 수 있는 장르가 필요하다. 영화를 제외하면, 공연에서는 뮤지컬이 가장 알맞다고 할 수 있다.

뮤지컬의 핵심은 음악에 있다. 음악은 가장 짧은 시간에 목표하는 정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잘 설계된 장치다. 그라운드에 홀로 서서 공을 던지기 직전의 루틴을 행하는 최동원, 경기장 밖 민주화 시위, 흥분한 관중, 최동원을 둘러싼 정부·구단·협회, 가족·선후배의 각기 다른 사정을 동시에 다양하게 내보이는 장점이 있다. 망원경으로 주변을 둘러보듯 말이다. 망원경을 돌릴 때마다 음악은 솔로와 중창으로 바뀌고, 눈에서 망원경을 떼고 전체를 바라볼 때 합창이 들리는 것이 뮤지컬이다.

뮤지컬과 스포츠의 결합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경기 장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답은 간단하다. 포기다. 스포츠와 뮤지컬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어설픈 재연으로,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실수를 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뭘 해야 할까? 바로, 음악으로 시간을 왜곡시켜야 한다. 투수의 공이 시속 150㎞로 날아가 포수 미트에 닿는 0.1초를 보여주는 건 스포츠다. 그 찰나 그 순간을 매우 느린 템포의 아다지오로 1분간 들려주며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음악이며 뮤지컬이다.

그 찰나의 순간을 왜곡해 더 큰 긴장과 안도와 환희를 전할 수 없다면, 제발 최고의 콘텐츠 인물인 최동원을 소비하지 말길 바란다. 뮤지컬 창작자들은 보여주려는 강박을 버리고 0.1초의 찰나를 어떻게 들려줄지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최동원 뮤지컬 공연의 승패 갈림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홈런을 맞은 공이 머리 위로 날아갈 때 최동원 시점의 음악은 그에게는 낭패감이지만, 관중이 아닌 관객에게는 코미디로 치환할 여유도 필요하겠다.

■ 충분한 투자

예술은공유다(대표 심문섭)가 부산발(發) 뮤지컬로 제작한 ‘1976 할란 카운티’.
기준은 세웠으니 이제 시작해보자. 몇 가지 질문을 예상할 수 있다. 대본 작가는 누가할까? 음악 작곡은 누가할까? 연출은? 배우는? 내년에 공모해 6, 7개월간 준비하면 되겠지? 예산은 역대 최대 2억이면 충분하겠지? 감히 말하건대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면, 이 뮤지컬은 망한다. 먼저 바쁘디 바쁜 한국 사회에서, 특히나 지역임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2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건축설계와 같은 대본·음악·디자인이 시작될 수 있다. 이 셋은 매우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어 작업방식과 소통, 참여 밀도에 문제가 있다면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추가로 대본작가·작곡가·디자이너·연출가는 최동원과 야구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는 애정·열정이 필수요소다. 관객을 상상케 할 창작자의 애정과 창의력이 야구팬의 이해도보다 낮다면 누구도 작품을 신뢰할 수 없다. 뮤지컬 또한 야구처럼 팀플레이다.

■ ‘뮤지컬 광주’의 큰 성공

이제 가장 중요한 ‘주체’의 문제가 남았다. 제2 도시 부산이 애써 부정하는 ‘자신 없음’ 과 ‘부산 불신’에서 소극적인 태도가 나온다. 스포츠가 그러하듯 뮤지컬은 자본과 수많은 플레이어(창작자 배우 스태프)의 도전과 융합이 관객을 만나는 현장이다. 행여 1억, 2억 원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꼭 말리고 싶다. 안하는 것 보다 낫지 않느냐 하겠지만, 안 하는 게 낫다.

국내 대극장 뮤지컬 제작 규모와 상황을 고려하면, 두 달 공연하는 규모 있는 작품에 드는 비용은 일단 25억 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광주시·광주문화재단 등이 제작해 2020년 초연한 ‘뮤지컬 광주’는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며 시즌 3을 준비 중이다. 광주문화재단이 2019년 이 콘텐츠의 제작사를 공모했을 때 밝힌 총사업비는 26억 원이었다. 이렇게 보면, 부산시 예산과 국가 지원 그리고 기업 투자와 수익 재투자를 총합해 20억-50억 원이 최소 예산이라 하겠다. 뮤지컬은 산업이다. 만약, 무대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포맷에 맞는 확장형 콘텐츠로의 발전을 고려한 전략 수립과 실행을 접목하겠다면, 적어도 100억 원은 예상해야 한다. 최근 몇 년 새 큰 인기를 끈 순수 국내 창작 뮤지컬의 제작비를 살피면 ‘웃는 남자’가 175억 원, ‘마타하리’가 약 130억 원, ‘엑스칼리버’가 100억 원 이상으로 보도됐다.(뉴스핌 양진영 기자 2020년 1월 21일 보도‘뮤지컬도 100억 원 시대’)

부산에서 인물을 소재로 한 다수의 뮤지컬이 창작됐지만, 하나도 살아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아는가? 한 번 실패한 인물 콘텐츠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 부산의 최동원을, 우리의 최동원을 잃고 싶지 않다. 스포츠 산업과 뮤지컬 산업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싹을 틔우기 위해 씨를 뿌리고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열매가 다시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는 일련의 ‘루틴’ 사이에서 시장이 만들어진다. 시장이 또 다른 창작자와 부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다.

※공동 기획=국제신문 최동원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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