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한국시리즈 쉬운 상대로
- 롯데 골랐단 말 돌자 오기 발동
- 쳐봐라는 듯 같은 코스 3개 찔러
- 그 삼진이 팀 투지의 피 끓게 해
- “연봉 3000만 원 깎아도 되니까
- 동료 처우 개선에 돈 써주이소”
- 구단 회유에도 굴하지 않던 다윗
- 투병생활 때 남긴 마지막 사인볼
- 글씨는 힘없어 삐뚤빼뚤하지만
- 이름 석자의 위용은 꼿꼿하구나
“아부지, 해태는 선동열이 델꼬 그래 우승을 많이 했는데, 롯데는 왜 최동원이 델꼬 우승을 한 번 빼끼 몬 했십니꺼?” “아들아, 해태는 해태가 선동열이를 데리고 우승을 했지만은, 롯데는 최동원이가 롯데를 데리고 우승을 한 기라.- 나무위키, ‘1984년 한국시리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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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8. 28 최동원’이라는 글씨와 숫자가 힘 있는 필치로 적힌 최동원 선수의 사인볼. 야구인 최동원은 이 사인볼을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 해 9월 14일 타계했다. 이 사진의 출처는 2011년 9월 25일 방영된 KBS 스페셜 ‘무쇠팔 최동원 인생을 던지다’ 다큐멘터리이다. |
■ 85년 1월 롯데 구단 사무실
“최 선수, 정말 연봉으로 사인할 거야? 보너스로 처리 안 하면 자그마치 3000만 원 이상이 삭감돼요. 강남에 새로 짓는 아파트 한 채 값이라고.” 사무실 안이 조용해졌다. ‘후우’하는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카랑한 부산 사투리가 침묵을 깨었다.
“마, 상관없습니더. 연봉으로 처리해 주시지요.”
마주앉아 있던 롯데 구단 전무가 담배를 피워 물려다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빛이 마주쳤다. 그는 멈칫하더니 이내 담배갑을 내려놓았다. 그 밑에 깔린 서류 수십 장 중 제일 위에는 이것 보란 듯이 ‘선수 연봉 25% 상한선 규정’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선수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작년 연봉의 25% 이상은 인상할 수 없다는 6개 구단 담합 규정이었다. 프로선수에겐 악법 중 악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6개 구단과 KBO라는 거대 조직에 맞서 일개 선수가, 그것도 홀로 반기를 들고 맞서는 중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랄까? 전무는 상한선 규정 서류를 치워버렸다. 그러자 선수 성적이 담긴 서류가 그 다음을 장식했다. 정규리그 MVP, 탈삼진왕, 전기·후기 리그 총 100경기 중 51경기 등판, 선발 20번, 완투 14번, 총 284.2이닝, 27승(구원승 18승) 6세이브 13패, 탈삼진 223개, 평균자책 2.40, 투구수 4348개….
전무 옆에서 표기된 성적을 슬쩍 훑던 구단 관계자는 현실을 벗어난 듯한 데이터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내 앞에 있는 이 호리호리한 사나이가 이런 괴물이라고? 이렇게 던져놓고도 한국시리즈에 다섯 번을 더 등판해 4승 1패…? 그는 자기 눈앞에 있는 선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호해졌다.
“작년에 우리가 연봉 삭감해서 자존심이 좀 상한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걸었던 옵션대로 하고 비밀 보너스로 받자고. 언론에는 규정대로 계약했다고 발표하면 되잖아?”
“옵션대로 받으면 1억이 넘겠지요. 하지만 이중 계약한 보너스도 모조리 발표해야 됩니다.”
“어허, 그럼 연봉이나 다름없는데, 다른 구단에서 뭐라고 하겠어? 그렇게 하려면 3000만 원 삭감해야 한다니까?”
“삭감해도 됩니더. 삭감하고 25% 상한 조항 없애는 데 롯데가 앞장서 주이소. 프로에 안 맞는 그 조항 없애고, 그 3000만 원 다른 선후배 선수들이 받는다 치면 하나도 안 아깝습니다!”
전무와의 실랑이 속에서 구단 관계자는 상대가 점점 더 크게 느껴지는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바로 거인의 모습! 골리앗을 무너트렸던 진짜 거인 다윗의 모습이 그와 겹쳐졌다.
그로부터 한 달이 훨씬 지나서야 연봉협상의 진통은 끝났다. 결국 계약서는 선수 요구대로 작성됐다. 괌에서 전지훈련을 마지고 온 선수는 자신의 계약서를 눈으로 확인했다. 펜을 들고 있던 그가 와인드업을 할 때처럼‘후우’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힘 있는 필체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계약서에 새겨진 그 거인의 사인….
최동원!
■ 2011년 8월 경기도 일산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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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12일 부산 사직야구장 광장에서 최동원 선수 10주기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오른쪽은 고인의 모친 김정자 여사. 국제신문 DB |
글씨가 참 안 써지네…. 꼭 한국시리즈 7차전에 문연이 미트에 투구할 때처럼 컨트롤이 잘 안돼…. 그라고 보이 컨트롤이 제일 잘 됐던 건 한국시리즈 1차전이구마. 1번 타자가 장태수 형이었제. 우연인지 필연인지 7차전 마지막 타자도 그 형이었다 아이가. 그런데 나는 우째 마지막 삼진보다 1차전 첫 번째 삼진이 더 기억에 남는가 몰라. 바깥쪽으로 직구, 두 번째는 슬라이더, 세 번째도 직구. 자신도 있었지만 나는 거기서 승부를 걸었거든. 삼구 삼진! 상대가 삼성 아이가? 정규시즌에 열 번 붙으면 한 번 이길까 말까 한 팀이었거든. 전기리그 우승한 삼성이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만만한 롯데를 골랐다는 말이 있었지. 져주기 경기 조작으로 후기리그 우승시켜줬다고…. 솔직히 그런 말에 자존심이 상했지. 그래가 정정당당하게 함 붙어보자, 하고 공 세 개를 똑같은 코스에 안 던짔나? 속으로 이래 외쳤다 아이가?
“삼성 너거가 실수한 거라. 부산에는 대한민국 최고 투수 최동원이 있다!”
세 번째 공은 시속 150㎞가 훨씬 넘었을 기라. 진짜로 있는 힘껏 던짔거든. 바깥쪽 꽉 찬 볼에 문연이 플레이밍(포수가 볼을 받을 때 스트라이크 쪽으로 미트를 살짝 움직이는 스킬)이 또 기가 차게 들어가더라고. 주심 손이 올라가면서 아웃을 부르는데 ‘그래, 할 수 있다’란 생각이 들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마운드를 정리했지. 그런데 고개를 드니까 1루 쪽 용철이 행님하고 눈이 마주치더라고. 고개를 끄떡하고는 팀 동료들을 쭉 안 돌아봤나? 전부 내를 보고 있더라고. 사실은 그때 처음 혼잣말로 이 말을 했었제….
손가락이 떨렸다. 그의 이름 한 글자 한 글자가 비뚤비뚤 야구공에 새겨졌다. 아마도 그가 만지는 최후의 야구공, 그가 남기는 최후의 사인이 될 것이었다.
ㅊ ㅗㅣ ㄷ ㅗ ㅇ ㅇ ㅜㅓㄴ
그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던 이들 중 몇몇은 결국 참지 못하고 돌아서 눈가를 문질렀다. 하지만 아들의 공을 받아든 어머니는 정작 이렇게 타박했다. “야야, 사인 한두 번 하나? 여, 니 글씨가 와 이리 삐딱빼딱 하노?”
거인은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펜을 잡는 것도 힘들었던지 떨리는 손 밑으로 펜이 떨어져 굴러갔다. 아마도 방금 건넨 공이 자신의 마지막 사인볼이라는 걸 직감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이내 씨익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특유의 카랑한 목소리로 대거리를 했다.
“어무이도 참 내…, 가만히 보이소. 글자 한 개 한 개는 삐뚤한 거 같지만, 아들 최동원 이름 자체는 똑바로 안 서 있는교?”
공의 사인을 다시 보던 어머니의 눈에서는 결국 눈물이 넘쳐 주르르 흘러내리고 말았다.
‘11. 8. 28 최동원’
과연 그랬다. 비틀거리는 글자가 모여있음에도 거인의 이름은 묘하게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84년 우승할 때도 안 그랬나? 한 회, 한 회가 다 위기였다 아인교….” “그래, 내도 어찌나 손에 힘을 주고 봤는지 내 어깨가 다 빠질라 카더라.” “진짜 힘들었어요. 사람이 아니었지. 그래도 3, 4회 지나고 나서는 공이 더 빨라지데. 그거는 나도 이해가 안 가….” 거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야야, 니 많이 피곤해 보인다. 괜찮나?”
“야아, 괜찮은데…, 좀 자고 싶어요.”
거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깨가 살짝 아픈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그 느낌이 반가웠다. 꿈결인 듯 관중의 환호가 그의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 그해 한국시리즈 1차전
“투낫싱. 오늘도 최동원 투수의 투구폼이 정말 호쾌합니다. 아, 장태수 바깥쪽 삼진으로 물러납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 첫 타자 삼구 삼진! 세 개의 볼 모두 바깥쪽 같은 코스였다. 캐스터의 흥분된 목소리에 하일성 해설위원의 입담이 더해졌다.
“공 세 개로 스트라이크 아웃이란 것은, 어떻게 보면 최동원 선수가 자신의 위용을 과시한다는 얘기이거든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마운드를 정리하던 거인이 꼿꼿이 고개를 들고 가슴을 폈다. 그리고 돌아서서 동료들을 쓱 한 번 훑어보았다.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인은 공 세 개의 삼진으로 직접 보여준 필승 사인이 동료 전체의 피를 끓게 했음을 직감했다. 2번 타자를 맞아 투수판을 밟는데 포수 한문연의 미트가 사인을 보내며 박력 있게 움직였다.
“전부 다 단단히 맘 묵었구마….”
거인이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중얼거렸다.
“그래 마, 함 해보입시더!”
마운드에 일자로 우뚝 섰던 왼쪽 다리가 가슴팍 위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오른팔이 뒤로 훅 빠지더니 이내 머리 위로 회전하며 앞으로 쭉 뻗어나갔다. 그러자 거인의 손끝에서 108개의 실밥으로 만들어진 야구공이 포수의 미트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공동 기획=국제신문 최동원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