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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선수 시절의 최동원. 국제신문DB |
- 이광·박홍재·김삼환 시조시인 등
- 전설적 투혼부터 내면 상처까지
- 글에 녹이며 최동원 숨결 되살려
- 독자들과의 교감 가능성 보여줘
- 경기 중 홈런 맞고도 웃었던 그
- 춤꾼 이용진 “자신 불태운 경지”
- 창작열정 가득한 예술혼과 닮아
두 달쯤 전 손증호·이광·박홍재 시조시인께 전화해서 부탁했다. “최동원을 시조에 담아 표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들 세 시조시인은 오늘·여기·우리 삶 속의 문제에서 현대시조의 소재를 길어 올려 독자와 교감하는 시조단의 중진·중견이다. 그때까지 세 시조시인은 국제신문 기획탐사부가 ‘다시! 최동원’ 기획 시리즈를 준비 중이란 것을 몰랐는데, 이들의 대답이 한결같았던 점이 재미있다. “시조로 최동원을예?… 알겠심더. 함 해보입시더.” 한 달 뒤 이광 시조시인은 보내준 시조의 제목은 ‘함 해보입시더’였다.
■저마다의 마운드에 서서
함 해보입시더
-이광 시조시인
손에 쥔 공 하나로 승부를 걸곤 하는/ 야구라는 게임에는 돌고 도는 세상 있다 / 9회 말 투아웃에도 / 불꽃 튀는 생이 있다 //
추리닝 즐겨 입던 소탈한 부산 사내 / 가슴은 따뜻했고 피는 끓어 뜨거웠다 / 부산이 잘 나가던 시절 / 그도 역시 잘 던졌다 //
‘함 해보입시더’ 말과 함께 전설은 시작되고 / 네 번의 완투에다 한 차례 구원까지 / 84년 코리안 시리즈 / 거인은 우뚝 섰다 //
열세를 뒤엎으며 승리로 이끈 투혼 / 이제는 별이 되어 먼빛 같은 그 이름을 / 고향은 못 잊어 부른다 / 보고 싶어 찾는다 //
살면서 저마다의 마운드에 서는 동안 / 힘들고 지칠 때쯤 공이 되어 날아온 말 / 그래 마, 함 해보입시더 / 강속구로 꽂힌다 //
멋지지 않은가! 마무리는 더욱 절묘하다. ‘최동원 시조’? 되겠는데, 생각하는 사이 박홍재 시조시인의 작품이 이어 도착했다.
트로이카 시대 이끌다… 최동원
-박홍재 시조시인
금테 낀 경남고생 최동원 등장하며 / 김시진 대구 상고 김용남 군산상고 / 승리를 거머쥘 주역 자존심이 불붙다 //
강직한 마음 하나 야구인 앞날을 위해 / 올바른 길 가는 의지 꺾이지 않는 투혼 / 선수회 선봉장 횃불 앞장서던 그 결기 //
투박한 말투처럼 던지는 강속구는 / 무쇠 팔 완투 승리 부산 야구 불씨 살려 / 응원가 부산 갈매기 방방곡곡 퍼졌다//
시조단이 강하고 활발한 부산에서 시조 특유의 가락·리듬·시어로 최동원에게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겠구나, 최동원 콘텐츠는 생각보다 폭이 넓겠구나 생각하던 중 손증호 시인이 낭보를 전해왔다. 현재 부산시조시인협회장인 그는 수많은 시조를 살펴 ‘최동원 이미지와 어울리는 작품’을 3편 골라 보내주었다. 이호우의 ‘깃발’, 류제하의 ‘불꽃놀이’, 김삼환의 ‘거인의 자리’. 세 편 모두 에너지가 엄청나다. 이는 또 다른 방향에서 문학으로 최동원을 조명하는 일이었다. 세 편 다 이 지면에 소개하는 것이 어려워, 고심 끝에 김삼환의 시조 ‘거인의 자리’를 골라봤다. 손증호 시조시인은 “나는 야구를 잘 모른다”고 했는데, 최동원의 내면을 꿰뚫는 절창의 작품을 알려주었다.
■ 거인 앉았던 자리의 고요
거인의 자리
-김삼환 시조시인
강물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 속 깊은 상처 아물어 / 생살 돋을 때까지 /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지 //
바위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 속으로 울음 울어 / 불길 잡힐 때까지 /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지//
시조뿐 아니라 시 부문에서도 이런 일이 되겠구나 싶었다. 사회인 야구를 오래 열심히 해온 김요아킴 시인에게 연락했다. 그는 야구 시집 ‘왼손잡이투수’를 냈을 만큼 야구 사랑이 크다. 김 시인은 “써놓은 최동원 시가 있다”며 두 편을 곧장 보내줬다. 그중 ‘1987년 5월 16일’을 소개한다. 최동원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1987년 5월 16일
-김요아킴 시인
내는 선동열이 나오든, 누가 나오든 죽도록 던집니다. 한 물 갔건, 두 물 갔든 끝날 때까지 던집니다. 내한테 그기 야구입니다. 내가 지든, 이기든 내 게임은 내가 나갑니다. -영화 ‘퍼펙트 게임’ 최동원 선수의 말 中에서
무쇠 같은 해가 떨어지지 않으려 / 안간힘을 쓰는 / 폭격기의 속도처럼 새로운 태양이 / 솟아오르려는 / 꼭 쿠데타가 연상되는 그날, / 광장은 각기 두 차례의 홈만을 허용하며 / 팽팽한 긴장을 호소하고 있었다 //
시대의 과녁을 향해 다섯 시간 가까이 / 무려 사백 여개의 공이 / 끝까지 홈을 지키려 / 마운드에서 던져진 그해, / 좀체 조합이 되지 않는 역설의 날짜는 / 무승부라는 연장의 빌미만 / 마련해 놓았다 //
목 성대의 위치를 알게 된 관중들은 /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 곧 다가올 유월을 예비하는 듯 했고 / 그때 나는 학교 기숙사 휴게실에서 / 어제 주워온 돌멩이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 중계방송이 끝날 때까지 / 모든 장면을 스크랩하고 있었다 //
■ 현대춤꾼 이용진 “완전 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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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무대에 선 이용진. 마운드에 선 최동원의 내면 풍경이 연상된다. 춤 공연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 박병민이 촬영했다. 이용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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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가 이용진(38·댄스프로젝트 에게로 예술감독)은 정연하고 탄탄하게 자기 예술론을 언어로 표현하고, 그 예술론을 춤 작품 속에 실제로 구현하는 능력이 매우 인상 깊은 예술가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트리트 댄스를 추면서 뛰어난 스트리트 댄서로 활약했다. 부산예술대 실용무용과에 진학했고 경성대 무용학과에 편입해 한국 춤을 익혔다. 부산시립무용단에서 2년 동안 춤췄고, 그가 주도해 만든 댄스프로젝트 에게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대무용 단체다.
붕 뜬 이야기 말고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올해 초 연락해 “최동원의 삶, 인간 최동원, 최동원이 우리에게 남긴 의미와 이미지로 현대무용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알아봐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한 달이 흐른 지난달 24일 그를 만났다. ‘최동원 현대 춤’은 가능할까? 최동원 콘텐츠를 우리는 확장할 수 있을까?
“저도 최동원을 좋아합니다. 연락받고 얼마간은 막막했어요. 그러다 한 시간짜리 작품으로는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겠구나 싶더군요. 의미를 함축해 은유로 표현하는 게 현대 춤의 특징인데,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시(詩)처럼 표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동원 개별 ‘인물’이 아니라 최동원 속에 있는, 최동원이 보여주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을 다루는 것이 제가 할 일이더군요. 그래서 키워드를 뽑아봤습니다. ‘순수함’. 삶을 꽉 차게 사는 사람만이 갖는 지구력으로서 ‘집요함’ 그리고 ‘완전 연소’, 이 세 가지입니다.
특히 ‘완전 연소’ 이미지는 심장이 얼얼할 정도로 좋은 발견이었다. “최동원이 홈런 맞고 웃는 사진이 있지요? 저는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워 완전 연소에 이른 경지를 느낍니다. 자책 같은 것도 없어요. 실수한 게 아니니까. 완전 연소한 거죠.” 이용진은 최동원 작품의 장면과 구상을 더 들려줬다. 설명을 들으며, 그 또한 완전 연소 중임을 알았다. 그게 최동원의 힘이다.
※공동 기획=국제신문 최동원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