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정판결땐 재소송 어려운 구조
- 피해자 소 제기 가능시효도 3년
- 관련자들, 배상 가능여부 불투명
- “대법원 판결 늦어” 아쉬움 토로
군사 정부 시절 내려진 ‘긴급조치 9호’는 국가배상 청구의 대상이 맞다는 대법원 새 판례가 나오면서 부산지역의 대표적 피해 사례인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들에게 국가 배상의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다만 이미 옛 판례에 근거해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은 사실상 구제가 어려워 “대법원 판단이 늦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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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표(앞줄 가운데)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 이사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박정희 유신시대 긴급조치 발령의 불법성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뒷줄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 연합뉴스 |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한 피해자와 그 가족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총 1억9100만 원을 배상하라”며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며 원고 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는 맞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국가배상 청구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한 2015년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발령됐다. 대통령이 국가의 안전 보장 또는 공공의 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자주 사용돼 대표적인 반민주 조처로 지목됐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때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의 민사적 구제 방안이 나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및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 따르면 항쟁 당시 긴급조치 9호 위반 등으로 수사받은 피해자는 부산·경남을 통틀어 72명에 이른다. 군 검찰에 송치된 이가 40명, 일반 검찰에 넘겨진 이가 32명이다.
이 중 23명은 재판을 받아 면소~징역형 처분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부산·동아·고신·경남대 등에 소속된 학생으로, 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았다. 항쟁에 참여한 시민 다수가 소요죄를 적용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법무법인 민심에 따르면 현재 지역 하급심에서 진행 중인 관련 소송은 30건 수준이다. 민심은 부마항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도맡고 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부마항쟁 때 긴급조치 9호로 부당하게 인신이 구속된 이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전부 기각됐다. ‘긴급조치 9호 발령은 위헌·무효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정치적 책임만 질 수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 탓이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다만 이미 소송을 치른 피해자들은 구제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부마항쟁 관련자인 이진걸 씨는 “형사적으로는 대부분 피해자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아 보상받았지만, 민사적으로는 한 차례 기각당했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고려하면 민사 재심이 가능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항쟁 전날인 그해 10월 15일 부산대 곳곳에 ‘민주선언문’을 뿌리며 학원 민주화와 유신정권 철폐를 요구하는 한편 학생들의 도서관 집결을 시도했다. 이후 이 씨는 부산대 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그해 10월 20일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그해 11월 열린 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소 제기 시효도 문제다. 불법 행위의 책임은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이다. 부마항쟁 피해자는 부마민주항쟁조사위원회에 의해 피해자로 인정받은 날로부터 3년까지가 제소 시효다.
법무법인 민심 변영철 변호사는 “2015년 판례를 근거로 기각당한 이들은 새 판례를 근거로 민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무관하게 시효 문제로 기각당한 이들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대법원의 새 판단이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많은 이들이 구제받았을 것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