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돈 쥔 보호종료아동 등 타깃
- 멤버들 위협해 사기 행각 동원
- 피해자 중에는 지적 장애인 포함
- 입법적 보호장치 필요 목소리도
가족 관계 단절이나 의사소통 능력 부족으로 외로움을 겪는 청년을 노린 성인 ‘가출팸’(패밀리, 가출인 집단생활) 사기가 사회 전반의 문제로 대두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범행이 보호종료아동 등 목돈을 쥔 민법상 성인을 타깃으로 이미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는 성인이지만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법률적 보호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11단독 김유신 판사는 성인 가출팸을 이용해 대출 사기를 벌인 혐의(사기 등)로 A(33) 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A 씨를 도운 가출팸 멤버 5명에게는 벌금 500만 원~징역 1년을 선고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실질적 총책인 B(40) 씨의 지시를 받아 가출했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성인 남녀를 모아 합숙시켰다. 이를 위해 A 씨는 “갈 곳이 없다면 숙식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거나, “사귀고 싶으니 함께 살자”며 마음에 없는 말로 상대를 꾀었다. 때로는 150㎏을 넘나드는 자기 몸을 들이밀며 위협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멤버를 동원해 그는 여러 사기를 벌였다. 멤버들은 범행을 돕거나 방조한 가해자인 동시에 A 씨에게 속아 범행을 강요당한 피해자였다. 일부 멤버는 그 자신이 사기 피의자가 되기도 했다.
A 씨는 주로 대출 사기로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아파트 임대차계약서를 위조해 금융기관에 대출받을 목적으로 멤버들의 명의로 대출을 신청했다. 또 A 씨는 한 멤버를 시켜 지적 능력이 모자란 또 다른 멤버가 대출받도록 꼬드겼다. 호감을 느낀 척 가장해 연애를 시작한 뒤 신혼집을 알아보자는 식으로 대출을 받게 했다. 멤버가 가입한 보험을 담보로 대출받아 생활비로 쓰거나, 멤버의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해 제멋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그가 1년여 동안 가로챈 돈은 4억4600만여 원에 이른다. 김 판사는 “아무런 경제적 기반이 없는 합숙자들에게 감당하지 못할 채무를 부담시키고, 금융기관에는 부실 대출로 인한 손실을 입혔다”고 A 씨의 죄책을 지적했다.
이처럼 가정에서의 소외 등 외로운 처지로 고립된 성인을 상대로 한 가출팸 형태의 범죄는 성행의 기미까지 보인다. 청소년보호단체 ‘틴스토리’ 박용성 센터장은 “특히 보호종료아동처럼 디딤씨앗통장 등으로 얻은 목돈이 있고 민법상 성인이라 대출도 받을 수 있는 이들을 타깃으로 ‘오갈 곳 없으니 같이 살자’며 주거 장소를 합친 뒤 대출을 받게 하는 일당이 적지 않다”며 “청소년 시절 우리가 지원했던 한 성인은 보호종료가 끝나자마자 알고 지낸 형들과 함께 살며 이들에게 1000만 원 이상을 대출해줬다가 버림받아 한순간에 길을 잃은 처지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가출팸의 주된 합숙 장소는 숙박업소다. 그러다 이익을 얻으면 오피스텔이나 작은 아파트를 구해 살기도 한다. 멤버들의 외출은 관리자가 철저히 통제한다. 친구를 만나거나 담배를 피우러 나가는 등 사소한 외출에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할 때가 많다. 식사도 대부분 관리자가 장을 봐 온 음식만 먹도록 한다. 그러면서도 관리자는 “내가 너희를 먹여 살리고 있다”며 암시에 가까운 말을 자주 한다. 범행에 회의를 느껴 도망을 시도한 멤버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범행에 가담시킨다.
지역에서 성인 가출팸을 경험했다 빠져나온 C 씨는 “외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족과 사이가 나쁜 이들을 소개받아 데려오는 게 멤버 구성의 방법이다. 저들이 주는 안정감에 속아 한 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미성년자에 비해 국가의 보호 개입 여지가 적은 성인을 위해서도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지역 한 법조인은 “미성년자가 가출해 누군가에게 임의로 보호되고 있을 땐 국가가 이를 불법으로 규정해 개입한다. 그러나 성인은 가출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제재하기가 어렵다”며 “성인이라도 사회에 완전하게 적응하기 전 단계에 놓인 이들의 손을 놓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입법적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