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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집게 논술 돈벌이에 회의…학원 접고 문화살롱 열었죠”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13> 문화공간 ‘빈빈’ 김종희 대표

  • 고영삼 동명대 교수
  •  |   입력 : 2022-10-25 18:57:2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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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모 병시중 힘들었던 신혼
- 고통 견디려 빠져든 글쓰기
- 부산 학원계의 신화 밑거름

- 학부모 절실함 이용해 자괴감
- 일상·문화 결합공간 대표 변신
- 운영자금 없어 부동산 처분도

- 다양한 행사로 도시 품격 제고
- 물질 욕망보다 정신가치 중요
- 인생지평 넓힐 ‘리에프릴’ 설파


◇ 김종희의 인생Tip

- 그대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아찔하게 걸어가라


문화공간 빈빈 김종희 대표가 본인이 모델이 된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BIFF)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대성황이었다. 영화제 포스터에 담겨있는 한 여인도 화제였다. 백사장에 서서 바다를 응시하는 여인. 알고 보니 문화공간 ‘빈빈’의 김종희 대표였다. 그녀의 나이는 만 55세. 엄밀하게는 인생 이모작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결혼해 시부모 봉양, 아이 양육, 그리고 치열하게 경제활동을 했고 지금은 다른 업으로 갈아탔으니, 이모작이 아니라 할 수도 없다.



-지금 문화살롱을 운영하고 계신다고요?

▶네. 2010년부터입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풍경이 되는 문화공간입니다. 커피, 와인을 마시며 문학 음악 그림 영화 등 다양한 장르 속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며칠 후인 오는 31일에는 ‘음악으로 듣는 그림, 그림으로 보는 음악’이라는 테마로 서양화가 류동필과 감성 보컬 한가비의 콜라보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김종희는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최고 인문학 강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부산 수영구 KBS 인근에 있는 문화공간 빈빈의 운영자다. 공간조형예술연구소 박태홍 대표가 실내를 디자인한 빈빈에는 인문사회학책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문화공간 빈빈 설립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1997년에 논술학원인 김종희교육연구소를 차린 것이 인생 일모작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게 대박이 터지더군요. 1996년부터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이 논술 입시를 시작했었죠.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 서울대 예상 문제를 적중시켰고 이게 소문이 나서 특목고에 아이를 보낸 부모님들이 몰려오시더군요. 서면 교보문고 쪽에서 연구소를 했어요. 12년 정도 했는데 ‘군자금’을 많이 모았죠.



-준비 없이 시작하신 건 아니었지요?

▶그럼요. 사실 치열한 삶과 글쓰기 훈련의 결과였죠. 저는 결혼과 거의 동시에 시부모 두 분의 병시중을 들었는데, 8년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는 가혹한 세월을 견뎌낸 내공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을 긍정해야 했어요. 아이들을 잘 키워야 했고 내가 선택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글쓰기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는 요양원으로 가시면서 경제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장기가 되어버린 글쓰기를 살려 논술학원을 낸 것인데, 대박이 난 거죠.



김종희 대표가 문화공간 빈빈에서 다양성포럼 10월 정기 세미나를 마치고 회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고통스러운 신혼생활을 견디기 위해 빠져든 글쓰기가 그녀를 신춘문예에 당선시켜 수필가로, 부산 논술학원계의 ‘미다스’로 만들었으니. 어쨌든 33개 논술 입시를 치르는 대학의 시험에 나올 지문을 족집게처럼 맞추는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또한, 점수를 획기적으로 올리는 두괄식 기술법이란 응답법을 창안해 실력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인생 전환이었군요. 행복하셨겠어요?

▶그런데 양가감정이 일어나더군요. 족집게 강사로서 수입은 좋았는데, 어느 시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하다 보니, 학부모의 절실한 약점을 건드려 수익을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 생각이 깊어진 2009년, 12년 만에 아까운 생각 하나도 없이 접어버렸습니다.



-반전이군요. 그 뒤 설립한 것이 빈빈인가요? 인생 이모작이군요.

▶연구소를 운영할 때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순수한 김종희’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빈빈입니다. 베이비 부머들은 일할 때는 치열하지만 자기를 잃고 삽니다. 그래서 소소한 일상과 결합한 인문과 예술을 논하며 노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문현 교수님에게서 철학 석사 공부를 하고, 영남대에서 미학미술사학 박사 코스를 거쳤습니다. 또한 문화원을 만든 것이죠.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나요?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공모사업인 ‘구술 생애사로 경험하는 인문학’, 6개 교정시설 수형자 대상 인문학 사업인 ‘나는 날마다 신화를 꿈꾼다’, 12개 정신장애 시설과 함께한 ‘삶이 내게 말을 걸었다’ 등 다년도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습니다. 또 ‘중년의 인문학’, ‘일상으로 스며드는 인문학’이라는 동양고전 강독도 운영했고, ‘그림으로 읽는 인문학’도 했지요. 유병근 선생님의 제자로 구성된 ‘드레문학회 목요문학방’의 15년째 근거지입니다. 17명의 회원 모두가 등단하고 창작 열정을 태우고 있죠. 공광규, 고두현 시인도 오셨던 ‘문학콘서트’도 있습니다. ‘다양성포럼’ ‘남천문화포럼’도 여기서 펼쳐지고 있고요.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청바지’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김종희 대표가 치열하게 사색하고 한계를 넘어서면서 쓴 글을 묶어 낸 책들.
그 외에도 알찬 프로그램이 많았다. 관광객이 수없이 들고나는 불꽃 도시에도 생활 속 골목 문화공간의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저마다 애틋한 일생과 일상을 문예 도반과 함께 다지자는 욕구는 평범하나 귀하다. 백시종 소설가 북 콘서트 때는 서울 울산 대구 사람도 왔다. 빈빈은 도시의 품격을 겹겹이 쌓는 증거가 된 듯하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문제는 문화 프로그램은 돈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2010년부터 10년간 힘든 순간 참 많았습니다. 통장 잔고가 동이 나 연구소를 운영할 때 마련했던 여분 아파트 하나를 처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칭찬해주시던 친정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다행히 외부에서 인문학 강의 요청이 쏟아져 강의를 다니며 내공을 다지고 지구력을 키웠죠.



-만만치 않은 과정에 인생관이 단단해졌군요.

▶무엇보다 이 일은 저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어느 시점 ‘무릇 삶은 흔들릴 때 성숙하리니 그 흔들림조차 즐기시게’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30대가 된 아이들과 이제, 모자녀 관계 공식 대신에 동시대를 사는 인생 선후배 관계 공식을 설정한 것도 선물 같은 수확이었습니다.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살고 치열하게 즐기는,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듯 타인과 관계하는 생활양식을 물려준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매번 깊어지고 새로워집니다. 최근에는 ‘리에프릴(Re-April) 경영’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4월’이란 뜻인가요?

▶April의 어원에는 열리다(Open)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4월이 되면 꽃과 풀이 솟아나고 나뭇가지에는 연초록색 생명이 눈을 뜹니다. 여러분께 이 용어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오륙십 년 살아온 바탕 위에 저마다의 새로운 방향을 발견하되 부피는 줄이고, 감성은 키우고, 지평은 넓히는 무언가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 용어를 특허권으로 등록까지 했습니다. 생활 학습 도시 건축 예술 등에 리에프릴 용어를 붙여보세요. 상상력이 솟구치실 것입니다. 인생 후반부에는 물질적 욕망보다 정신적 가치입니다. 빈빈은 리에프릴의 사람 무늬를 담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요? 그런 생각 자체를 키우지 않아요. 난관을 건너온 만큼 성장했으니 앞으로도 꿈꾸며 나아가는 미학자이고 싶을 뿐입니다.



김종희는 자기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간절함이라 했다. 그녀는 자기 삶과 꿈을 간절히 걸고 그만큼 자신의 의식과 경쟁하며 대화한다. 물질적 욕망에 거리를 두며 품위 있게 놀 줄 아는 그녀의 생활미학은 한 경지를 본 듯한데, 이렇게 그녀가 텅 빈 욕망, 텅 빈 쾌락을 벗어나라고 한 고대 에피쿠로스(Epikuros) 철학자의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비결은 세상이 만든 경계를 넘어서는 법을 체득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는 부동산, 자녀에 대한 과한 애착, 세상의 기준, 그리고 자기 아집으로부터 거리를 둘 줄 안다. 자연히 어깨가 가볍다. 그 대신 매 순간 치열하게 살고 치열하게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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