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부랑아 청소라며 폭행·노역 “넉달 만에 탈출했지만 또 잡혀가”

부산 수많았던 인권유린 시설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2-10-31 19:46:32
  •  |   본지 6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손석주 씨 두 수용소 다 경험

- 재생원 갇혀있다 영화숙서 노역
- 개보다 못한 취급 받으며 생활
- 인격 짓밟힌 사람 수천 명 달해
- 이후 형제복지원도 잔혹함 반복

# 부산시 인권유린 묵인·지원

- 피란수도 도시빈민 넘쳐나자
- 사회 분리해야할 존재로 여겨
- 수용인원 많을수록 더 큰 지원
- 약자 계층 향한 공동체의 폭력
- 특정시설 넘어 지역사회 문제

국제신문이 31일 만난 손석주(59) 씨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그는 1973년 부랑아 수용시설 ‘재생원’에 수용된지 4개월 만에 어렵사리 탈출했다. 재생원 담장에는 철조망이 둘려 있었다. 하루 대부분을 철창 방에 갇혀 지낸 터라 외부로 나갈 기회가 없었다. 손 씨는 “재생원 측이 노동이 가능한 사람을 추려 일을 시킬 목적으로 인근의 또 다른 수용소인 ‘영화숙’으로 전원시켰다. 이곳은 재생원보다 자유시간이 많아 탈출 기회가 생겼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있었던 재생원과 영화숙. 왼쪽 사진이 재생원으로, 오른쪽 사진의 앞부분이 영화숙으로 추정된다. 출처=사진으로 본 마리아수녀회 40년사
전원 이틀 만에 담을 넘은 손 씨는 다대포 방면에서 오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11번 버스로 기억한다. 돈도 없었지만 탈출하기 위해 일단 탔다. 신문을 팔던 중구에 도착하고서야 안도했다”고 한다. 아들의 수용 사실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던 아버지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식의 귀가에 크게 놀랐다. 손 씨가 다니던 학교는 ‘출석일 미달’을 이유로 이미 퇴학처분을 한 상태였다.

그러나 재생원과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손 씨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닦이 생활을 시작했다. 함께 구두를 닦는 형들의 괴롭힘에 벌이마저 시원찮아 배를 곯던 그는 부산진역 앞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 남자는 ‘배고프겠구나. 자장면이라도 사 먹으라’며 20원을 줬다. 손 씨가 배를 채우고 다시 그 남자에게 가자 음료수 한 잔을 건넸다. 음료수를 마시자 갑자기 잠이 밀려왔다. 눈을 떠보니 또다시 재생원이었다. 한 차례 탈출한 사실이 들통날 것을 걱정한 손 씨는 ‘손기석’이란 가명을 만들어 생활했다.

손 씨는 또다시 10개월을 갇혀 지냈다. 그는 “하루는 재생원을 폐쇄하고 원생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했다. 선감도로 갈 사람과 영화숙으로 갈 사람을 지원받았다. 영화숙에서 탈출한 기억을 떠올려 다시 영화숙으로 갔다. 당시 200~300명의 원생 중 절반은 선감도로 갔다. 나는 일주일 만에 재탈출했다”고 기억했다. 손 씨가 말한 선감도는 ‘소년판 삼청교육대’로 불린 선감학원 수용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 수용자에게 자행된 인권유린 양상과 통제 방식은 수백 명이 죽어나간 형제복지원과 매우 흡사하다. 손 씨는 “그 시절 부랑아 수용소가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다 똑같았다.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며 “형제복지원에서도 결국 재생원에서 일어난 일이 똑같이 반복된 거나 같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아무 이유 없이 당한 피해자들이 수천 명은 될 거다. 그 시절 부랑아 시설에 갇힌 피해자 모두를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씨의 말대로 그 시절 부랑아 시설에서 인격을 짓밟힌 이는 수천 명에 이른다. 유감스럽게도 부산은 이와 같은 집단 인격 말살의 주 무대였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최종 정착지로, 수많은 이가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휴전 뒤엔 ‘전쟁 고아’로 대표되는 많은 도시빈민이 생겼다. 행정당국은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을 치안을 위협하는 거대한 집단으로 봤다. 부산시가 ‘부랑아’ ‘걸인’ 등으로 불린 당대 도시빈민에 대한 ‘청소’에 나선 이유다. 사회에서 분리 수용해야 하는 존재로, 이들을 단속해 시설로 집어넣는 것이 목표였다.

‘청소’는 약자 계층을 향한 공동체의 폭력이었다. 수용 시설에서 자행된 대규모 인권유린은 행정의 묵인을 넘어 지원 속에서 이뤄졌다. 수용 인원이 많은 시설에 더 큰 지원금을 줬고, 조례까지 만들어 이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공공기관이 거리의 쓰레기를 수거해 민간 시설에 건네며 처리 비용을 주는 모습과 같다. 영화숙·재생원은 공동체에 의해 점차 쓰레기가 되는 삶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행정과 민간이 함께 인권유린이 일어나는 공적 공간을 형성하고 떠받친 셈이다.

■인권유린의 ‘공범’ 부산시

구두닦이로 일했던 손석주 씨의 40대 모습. 손 씨 제공
영화숙·재생원은 1960년대 부산 최대 부랑아 수용 시설이었다. ‘부랑아 시설’ 영화숙이 먼저 생기고 이어 성인 걸인 시설인 재생숙이 추가로 지어졌다. 부산시가 단속한 부랑아는 우선적으로 이곳에 배정됐다. 표면적으론 어린이와 성인을 구분해 수용했으나 실상은 나이 구분 없이 몰아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 정화 사업’이란 명목의 집단적 인권유린 최선봉에 영화숙·재생원이 있었던 셈이다.

영화숙이 공식적으로 해산된 건 1971년이다. 그 해 부산시가 재생원과의 부랑인 수용 위탁 계약을 해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976년에서야 설립 허가가 취소됐다. 손 씨가 재생원에 갇힌 시기도 1973년 전후다. 어떻게 운영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부산의 부랑인 수용 행정 실태를 연구한 서울대 김일환 박사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 ‘지역에서의 ‘부랑인’ 수용과 민간 사회복지’를 통해 1960~70년대 부랑인 문제는 특정 시설이 아닌 부산이라는 지역적 차원 전반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화숙·재생원은 부산시의 부랑인 수용을 담당하는 준공공조직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시설의 성장은 부산시의 적극적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1951년 설립된 영화숙은 서구 동대신동에서 약 50명을 수용하는 작은 시설에 불과했다. 그러다 1962년 이순영 원장 일가가 재단법인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급격하게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 해 사하구(당시 서구) 장림동으로 시설을 옮겼을 땐 400명 이상을 수용하는 시설로 ‘성장’했다. 성인 부랑자를 수용할 목적으로 영화숙 인근에 설립한 재생원도 800여 명 규모로 컸다. 부산시가 단속한 사람들을 두 시설에 일차적으로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붙잡힌 이들은 시설에 갇히거나 ‘금성개척단’ 등 강제노역 집단으로 보내졌다. 두 시설은 ‘수거된 부랑인’의 거점이었던 셈이다. 1968년에는 ‘부산시 재생원 설치 조례’가 제정되면서 시와 위탁 계약을 맺는 등 부랑자 행정에 관한 공식 권한을 위임받았다.

두 시설의 운영 기반 역시 부산시 지원이었다. 여기에 민간 구호 물품 등을 추가로 제공받았다. 두 시설은 고아 1인당 쌀보리 2홉 반과 부식비 10원, 걸인·행려자 한 명당 수용비 58원을 받았다. 부산시는 재생원 건립 때 보조금 31만 원을 주기도 했다. 이 원장은 구호물품은 국제시장 등에 되팔았고, 보조금 또한 이 원장 명의의 대지 2만여 평과 임야 6500여 평을 사는 데 쓰였다. 그런데도 이 원장은 부산시가 건네는 수용비가 너무 적다는 핑계로 수용자를 학대했다. 1970년 이 원장은 12년간 각종 국고보조금과 구호단체의 지원품을 횡령한 혐의로 부산시 공무원 4명(방조 혐의)과 함께 구속됐다. 다만 이 원장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

부산시가 영화숙을 지원한 이유는 비용 절감 목적이 크다. 김 박사는 “당국의 입장에서 경찰 단속을 통해 ‘부랑’ 집단을 ‘수집’하고 거리를 ‘청소’한 뒤 민간 시설에 수용하는 것은 가장 행정적 부담이 적은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도시정비 사업을 명목으로 고지대 판자촌 등 불량 주택을 철거한 영향으로 정책이주민이 양산되면서 부랑인 또한 늘어났다. 결국 도심 외곽 지역에 대규모 수용 시설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났다. 이 시설을 운영하는 대상자로 낙점된 게 영화숙인 것이다.

■지역사회의 원죄…어떻게 기억할까

영화숙은 미국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를 주축으로 한 마리아수녀원에 의해 그 실체가 폭로되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1969년부터 영화숙·재생원 관련 비위와 내부 폭력에 대한 내부 제보자들의 고발을 모아 부산시와 중앙정부에 보냈다. 영화숙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결국 부산시는 영화숙·재생원 수용자 600여 명을 다른 수용소로 분산시키는 한편 재생원 위탁 계약을 해지했다. 그러나 재생원이 사라진 뒤에도 ‘부랑인을 거리에서 청소해야 한다’는 식의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등이 늘어나자 도시를 ‘미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영화숙이 맡았던 부랑인 집단 수용·관리 역할을 대신할 새 민간 집단이 필요했다. 이런 흐름 속에 나타난 게 바로 형제복지원이다. 형제복지원은 영화숙이 부랑자 수용 계약을 맺은 근거였던 ‘재생원 설치 조례’를 통해 부산시의 업무를 수탁했다. 군대 체계를 차용한 통제 방식과 잔혹한 폭행·성적 가혹행위는 고스란히 형제복지원에서 되살아났다.

재생원에 수용됐다가 탈출한 뒤 재차 형제복지원에 갇히게 된 사람도 있다. 11세 무렵 전통시장에서 잠을 자던 중 억지로 차에 실려 재생원에 끌려간 황송환 씨다. 그는 재생원에서 제식훈련을 받으며 3년 가까이 강제 노역을 했다. 이곳을 빠져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제복지원(당시 형제육아원)으로 잡혀갔다.

도시빈민을 향한 집단적 인권 유린은 시를 매개로 시설에서 시설로 맥을 이어왔다. 특정 시설만의 문제가 아닌 당대 지역사회 전반의 문제로, 그 원죄가 시에 있는 셈이다. 김 박사는 “민간시설 하나만 봐선 당시의 인권유린 실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지역사회가 이들을 ‘치워야 할 존재’로 인식하고 그 결과로 수용 시설이 유지됐다는 점을 봐야 당대 상황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고민이 필요하다. 시가 책임을 가지고 피해자를 발굴하는 사업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위용 드러낸 기장촬영소…부산 대작영화 길 열렸다
  4. 4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5. 5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8. 8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9. 9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10. 10“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1. 1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2. 2“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3. 3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4. 4[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5. 5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6. 6軍 “향후 발생 상황 모든 책임 전적으로 北에…책임있는 조치 강력 촉구”
  7. 7유엔사 “DMZ 지뢰 폭발, 정전협정 위반 판단”
  8. 8“北 김주애 후계 내정자 입지 강화…키 160cm·몸무게 50kg 이상”
  9. 9‘핵잠수함 특별법’ 국무회의 통과(종합)
  10. 10與 “미래기금으로 지방정부 지원 축소될 일 없어”
  1. 1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2. 2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3. 3부산지역 건축물 노후화 심각… 63.3%가 지은 지 30년 이상
  4. 4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법원 인가…정상화 첫발(종합)
  5. 5亞·유럽게임 대거 참가…지스타 판 커진다
  6. 6공정위, 5개 항공사의 부산~괌 노선 공급 좌석 축소 요구 거부
  7. 7부전~마산 복선 전철 터널 붕괴 원인 조사 기간 7주간 연장
  8. 8정부 '발전 5사 통합준비委' 발족…내년 10월 단일법인 출범
  9. 9도토리 숲 언덕서 ‘휴식 한 모금’…바리스타과 겸임교수 깊은 손맛
  10. 10해양·AI 중심 ‘플라이아시아’ 내달 개최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4. 4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5. 5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6. 6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7. 7혈세 쓴 도시재생 거점시설 2년간 텅텅
  8. 8부산·울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명뿐
  9. 9교실로 들어온 ‘북극항로’…지구본 만들며 배워가요
  10. 10부산 동아대 인근 도로서 싱크홀 발생…노후 상수도관 누수 원인
  1. 1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2. 2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3. 3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4. 4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5. 5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6. 6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7. 7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8. 8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9. 9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10. 10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중구 절반이 GB…다운목장 등 과감한 해제로 신성장동력을”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