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아침 한 경찰 간부가 그날 아침 한 서울 지역 신문에 실린 칼럼을 공유했다. 그 칼럼은 지휘관과 현장 경찰이 겪는 어려운 사정을 쭉 열거한 뒤 ‘만일 내가 그때 현장 치안을 맡은 책임자였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자신은 없다’고 쓰여 있었다. 자신은 누구를 손가락질할 수 없으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고 적었다.
칼럼을 읽을수록 섞인 감정이 치밀었다. 지난 1일 공개된 11건의 112 신고 녹취록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책임 문제에 대해 여러 경찰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큰 틀에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현장 문제를 지적하는 부분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론했다.
A 경찰관은 “기동대를 불렀는데 인파가 예상보다 적거나 별일 없이 지나가면 ‘별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었다’며 툴툴대는 일이 다반사다. 법적 권한도 없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통제하면 상인과 행인의 불만도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말단 경찰관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상부에 보고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입장을 바꿔서 생각을 해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가 헛되지 않으려면 이런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 치안 현장의 지휘 권한을 강화하고 경찰 내 자유로운 보고가 오갈 수 있는 통로를 정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시민이 비판하는 건 경찰 개개인이 아닌 이런 수동적인 조직 문화다. 경찰 조직은 상명하복 문화 탓에 현장 의견이 축소되거나 묵살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현장은 상황이 위급한데도 상부에 보고하기를 꺼리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경찰은 11명의 절박한 시민 목소리가 담긴 녹취록을 반드시 읽어봤으면 한다. 시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부모님보다 먼저 찾게 되는 것이 경찰이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살았다는 안도감을 들게 하는 것이 시민의 경찰이다. 그런데 왜 경찰은 시민이 아닌 당시 경찰관의 상황을 대변하는가.
‘가장 위급한 순간 떠오르는 숫자 112’. 퇴근길 부산경찰청 1층 로비의 패널에 글귀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밤, 모르는 사람의 무게에 짓눌려 죽어갔던 젊은 시민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길 바란다.
박호걸 메가시티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