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국가 재난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외신들은 한국이 과거의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5일 한국이 27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겪고도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WP는 1995년 502명이 숨진 삼품백화점 붕괴에 대해 “현대화의 열망 속에 건설업자와 공무원들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서 “한국이 초고속 경제성장 중에 무엇을 용인해왔는지 드러내 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
| 2일 부산시청 로비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windstorm@
|
WP는 또 삼풍백화점은 붕괴 조짐이 차고 넘쳤는데도 어느 하나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150여 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삼풍 참사가 고도 경제성장에 경종을 울렸다면 이태원 참사는 한국이 문화 중심지로서 존재감을 떨치던 중에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WP는 이태원 치안을 담당하는 용산경찰서는 핼러윈 주말에 10만 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도 경찰 137명만 투입했다고 지적했다면서 “책임자들의 무책임한 대응도 과거와 달라진 바가 없다. 이태원 참사로 한국이 또다시 낯설지 않은 유령과 마주해야 했다”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밀라드 하가니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 교수의 진단을 제목으로 뽑아 기사를 타전했다. NYT는 참사 현장인 폭 3∼4m짜리 골목에 대해 “경찰이나 당국은 이 골목이 위험한 병목지역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어야 한다”며 “그러나 경찰도, 서울시도, 중앙정부㎘도 군중 관리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CNN은 원래 사람들이 자주 몰리는 이태원에서 어떻게 이런 재난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난관리 전문가인 줄리엣 카이엠 CNN 국가안보 해설가는 “인파 규모를 실시간으로 예의주시해서 사람들을 밖으로 빼내야 할 필요를 감지했어야 하기에 이런 부분에서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논평에서 “서울에서 벌어진 일은 자연재해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앞서 지난 1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회견에서도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다고 해서 과연 방지할 수 없는 참극이었는가’ ‘경찰 책임이 어디까지인가’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미국 NBC 기자는 “젊은 친구들이 그곳에 가 있던 것이 잘못된 것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는가”라고 물었다. 한 총리는 “젊은이들의 잘못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경찰 수사에 의해서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변했다. 한 총리는 질의 응답 중 동시통역 기기 음성 전송에 문제가 생기자 “잘 안 들리는 것의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농담했다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