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밥 한끼 함께 먹고 싶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 첫 연대

부산 최대 부랑인시설 생존 3인, 50여년 만에 만나 편안한 식사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2-11-24 19:45:47
  •  |   본지 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강냉이죽·보리밥 한덩이로 연명
- 양념불고기 실컷 먹어라” 눈물
- 인권유린 등 규명에 의기투합

“석주야! 네가 석주구나. 정말 잘 왔다. 너에게 밥 한 끼 꼭 해주고 싶었다. 네가 당한 일, 내가 잘 안다. 정말로 잘 왔다.”
50년 만에 만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 유수권(왼쪽부터), 손석주, 박상종 씨가 24일 부산 사하구 유 씨 자택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24일 오전 11시 유수권(가명·68) 씨는 50여 년간 숨겨온 서러움을 비로소 쏟아냈다. 손석주(59) 박상종(65) 씨를 마주하는 순간 그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들은 1960년대 부산지역 최대 부랑인 시설 영화숙·재생원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살아남은 피해자다. 세 사람은 이날 처음 사하구 하단동 유 씨 자택에서 만나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었다.

식사 자리는 “영화숙·재생원에서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주고 싶다”는 유 씨의 바람으로 마련됐다. 그는 손 씨가 털어놓은 당시의 기억(국제신문 지난 1일 자 1·6면 보도)을 신문으로 본 뒤 용기 내어 비참했던 삶을 증언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접수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는 지난 1년간 박 씨 뿐이었다. 형제복지원(부산)이나 선감학원(경기)과 달리 피해가 알려진 게 없어 자신과 똑같은 일을 당한 누군가를 만나 위로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밥상에는 숙주 우삼겹 볶음과 돼지 양념불고기가 올랐다. 유 씨가 하단오일시장에서 장 봐온 음식들이다. 동생들에게 고기반찬을 대접하고 싶은 큰형의 마음이 담겼다. 유 씨는 “지금이야 흔한 음식이지만, 그때 우리는 죽 한 그릇 배부르게 못 먹었다. 영화숙·재생원에선 구경도 못 해본 고기를 실컷 먹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년의 몸으론 견디기 힘든 강제노역에 시달렸지만, 식사는 강냉이죽이나 보리밥 한 덩이로 하루 두 끼만 겨우 먹었다.

푸짐한 만찬상을 앞에 둔 세 사람은 굶주려 죽지 않기 위해 뭐든 먹어야 했던 기억을 주고받았다. “형님, 저는 밭에서 돌게 잡다가 난데없이 재생원으로 끌려와선 2년 반을 잡혀 살았어요. 늘 배가 고팠어요(박 씨).” “알지, 나도 밥 사준다는 아저씨 따라가선 영화숙에 5년을 지냈다. 얼마나 못 먹었는지, 방에 쥐가 지나면 ‘왕건이’라면서 온 원생들이 달려들었어(유 씨).” “미군들이 간식을 주고 가면 직원들이 모조리 압수해가는 통에 맛도 못 봤어요(손 씨).” 난생처음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동지를 만난 이들은 한참을 서로 맞장구치며 웃음꽃을 피웠다.

영화숙·재생원(1962년~1972년)은 형제복지원(1975년~1982년)에 앞서 존재한 부산의 부랑인 시설이다. 집단적 인권유린의 양상과 정도는 형제복지원과 다르지 않았다. 군대식 통제와 고된 노역, 열악한 식사에 매일같이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50년 전에 시설이 사라져 당시를 증명할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이들은 영화숙·재생원에서의 인권유린 실태를 규명하려면 먼저 피해자들이 모여 연대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오랜 시간 목소리를 내온 끝에 진상규명 결실을 본 것처럼, 영화숙·재생원 생존자들 역시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복지원은 2013년 10월 피해자들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만든 후 약 9년 만인 지난 8월 진상이 규명됐다.

이날 모임은 영화숙·재생원 피해 생존자들의 연대 구성을 위한 초석이 될 전망이다. 손 씨는 “보도를 계기로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이 서로를 알게 됐지만, 여전히 그 수는 매우 적다. 단체를 만들려면 더 많은 피해자를 찾아야 한다”며 “여러 정당에 문의해 피해 사실 규명을 도와줄 방법을 묻고 있다. 다른 집단시설 피해 단체에도 방법을 자문 중이다”고 설명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속보]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칼리드 공항, 또 피격 12명 사망 309명 부상
  2. 2극지해양미래포럼, 오륙도 조간대 체험·플로깅 행사 개최
  3. 311일 부울경, 구름많고 경남 서부내륙엔 소나기 소식도
  4. 4[속보]'가평 계곡살인' 이은해, 남편 유족연금 2년넘게 1300만 원 챙겨… 환수 0원
  5. 5경기 안성 한 국도서 승용차 비탈길 추락, 30대 운전자 사망
  6. 6찬바람 부는 건설업…'비자발적 이직' 35개월來 30만명 돌파
  7. 7'대구 상가 천장 마감재 붕괴사고', 경찰 합동감식 진행
  8. 8울산 5개 구·군 재정자립도 모두 4년 전보다 하락
  9. 9울산 북구, 내년 구의원 월정수당 15% 인상안 주민 의견 듣는다
  10. 101245회 로또 복권 1등 10명…당첨금 각 30억 651만 원씩
  1. 1울산 북구, 내년 구의원 월정수당 15% 인상안 주민 의견 듣는다
  2. 2與 “한동훈 딸 수사 덮었나”…법무장관 당시 수사개입 의혹 공세
  3. 3나경원 ‘젤렌스키 감사 서한’에 與 “매국”…나 “친북 정권”
  4. 4국힘 “李 대통령, 北 저자세 정동영 즉각 경질하라”
  5. 5조경태, 9일 봉하마을서 盧 참배…與 사하을 기초의원들 “복당 반대”
  6. 6김희정 의원 ‘대주주 회생동의 촉구’ 국제신문 농성장 찾아 응원
  7. 7부산 기관장 후보 김태호·김명수, 시의회 인사청문서 부적격 판정(종합)
  8. 8李대통령 “능력 안되면서 큰자리 요구하다 안 되니 내부 공격”
  9. 9‘정청래 비자 보류’에 민주당은 유감…국힘 “한미동맹 균열”
  10. 10이 대통령 지지율 직전과 같은 37%…민주당 35%, 국민의힘 26%
  1. 1극지해양미래포럼, 오륙도 조간대 체험·플로깅 행사 개최
  2. 2찬바람 부는 건설업…'비자발적 이직' 35개월來 30만명 돌파
  3. 31245회 로또 복권 1등 10명…당첨금 각 30억 651만 원씩
  4. 4부산 주유소 휘발유 평균가 ℓ당 1839.5원… 전주보다 1.3원 ↓
  5. 5부산 복덩이 ‘부캉이’ 대선소주 모델됐다(종합)
  6. 6산은 회장 “통합 LCC 본사 부산행 결정 땐 적극 지원”
  7. 7부산 찾은 외국인 올 1~8월 343만 명 돌파…프랑스 관광객 작년보다 111%↑
  8. 8전재수 “가덕 공사비 증액 법 개정 조속 통과…소급적용도 추진”
  9. 9[뉴스 분석] 수도권, 가덕신공항 또 트집…국책사업 발목 자성 촉구 목소리(종합)
  10. 10태웅, 1년 갈등 ‘봉합’…노사정 상생협약 체결
  1. 111일 부울경, 구름많고 경남 서부내륙엔 소나기 소식도
  2. 2[속보]'가평 계곡살인' 이은해, 남편 유족연금 2년넘게 1300만 원 챙겨… 환수 0원
  3. 3경기 안성 한 국도서 승용차 비탈길 추락, 30대 운전자 사망
  4. 4'대구 상가 천장 마감재 붕괴사고', 경찰 합동감식 진행
  5. 5울산 5개 구·군 재정자립도 모두 4년 전보다 하락
  6. 6한글날 연휴 둘째 날 북항에 5만9천명…‘부캉이’ 누적 방문객 127만명
  7. 7중동 바퀴벌레 부산에 터 잡았다…감만항에 바글바글
  8. 8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흐려져…가끔 비 내리는 곳도
  9. 95t건설기계로 용접 작업자 들이받아 숨지게 한 무면허 운전자 징역 1년
  10. 10[속보] 서울서 지인 여성 찌르고 도주한 영국인, 9일 만에 영국서 검거
  1. 1한화 김경문 감독·손혁 단장 동반 퇴진…후임 인선 착수
  2. 2가을야구 못간 롯데 자이언츠, 정규시즌 3위 승부처돼 난감
  3. 3니가 치면 나도 친다…프로야구 막판에 안타왕 쟁탈전
  4. 4AG 4개의 金 호령한 바다의 왕자…“다음은 올림픽 포디움”
  5. 5김영광, 보복 운전 사과 “운전 습관 돌아보겠다”
  6. 6막 오른 ‘HJ중공업·동부건설 챔피언십’…최예본·한아름 공동 선두
  7. 7“핸드볼 8년 만의 아시안게임 金…맏언니로서 기뻐”
  8. 8SON A매치 최다골 대기록에도…뒤숭숭한 韓축구
  9. 9하현승, 계약금 16억에 키움 입단
  10. 10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우리은행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기초생활수급비로 홀로 생계…병원비 부담에 치료 막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누이센터·대봉산 휴양밸리 등 준비해 온 사업, 완성할 차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