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당 하루 보리밥 423g’
- 피해자들 증언과 일치 눈길
- 진상규명 가능성 불씨 살려
형제복지원에 앞서 집단적 인권유린이 자행된 부산의 부랑아 시설 ‘영화숙’의 마지막 입소 아동 명단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50년 이상 세월이 흘러 진상규명에 필요한 공식 문서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를 종식하는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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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이 입수한 1976년 부산지역 유일의 부랑아 시설이자 강제노역 등이 펼쳐진 영화숙 ‘잔류 아동 명단’에 당시 갇혀있던 피해자 19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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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제신문이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입수한 1976년 영화숙 ‘잔류 아동 명단’에는 강제수용된 피해자 19명의 이름·성별이 기재됐다. 남성 16명 여성 3명으로, 생년월일과 비고란은 비워졌다. 1976년은 보건사회부가 재단법인 영화숙의 법인 허가를 취소한 해다. 인권침해 사실이 확인돼 당국과 갈등을 빚은 영화숙은 ‘수용 아동이 남았다’는 이유로 한동안 운영을 지속했다. 명단 속 피해자들은 영화숙 최후의 수용인으로 추정된다.
피해자 명단은 그해 8월 재단법인 영화숙이 사하출장소장에게 보낸 급식 현황표에 첨부됐다. 법인 허가 취소로 아동복리시설을 운영할 수 없게 된 영화숙은 지자체로부터 지원받은 양곡을 반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영화숙은 비축 양곡을 아동 급식에 충당했다며 입소자와 양곡의 현황을 정리해 보고했다. 이미 상당량을 급식에 쓴 터라 돌려줄 양곡이 없다는 취지다.
이들이 작성한 표에 따르면 그해 5월 기준 영화숙은 백미 68만2938g 정맥(보리) 12만1022g, 총 80만3960g을 보관 중이었다. 영화숙은 백미와 정맥을 섞어 한 명당 423g씩 총 8037g을 19명의 하루 식량으로 소비했다고 기록했다. 하루 두 끼 수준의 식사량인데, 피해자들은 보리밥 덩어리를 하루 2번 먹는 게 끼니의 전부였다고 일관되게 증언해왔다.
영화숙에서의 반인권적 행태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2년~1976년 사이에 일어났다. 피해 생존자의 직접 증언은 일부나마 확보됐지만, 시일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당시를 입증할 문헌 자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이번 입수 문건은 영화숙 피해를 증명할 자료가 부산시와 기초지자체의 캐비닛에 잠들어 있을 것이란 사실을 방증한다. 피해자 명단은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 사하구 총무국 총무과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자료에서 발견됐다. 사하구는 행정구역상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부산시의 직할 출장소였다.
영화숙이 운영한 부랑인 시설 ‘재생원’ 피해자 손석주 씨는 “영화숙·재생원의 소재지였던 장림동은 과거엔 부산 서구, 현재는 사하구의 행정구역이다. 부산시의 기록뿐 아니라 이들 지자체에 보관된 기록물 중에 영화숙과 재생원의 피해 실태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생존자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생각하면 시간이 촉박하다. 서둘러 자료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