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소나무 뽑은 구덩이에 ‘아동’ 묻었다” 참상 담은 詩와 수필

‘영화숙·재생원’ 아픈 기록들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3-02-06 20:04:45
  •  |   본지 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부산소년의집 3기 출신 장병문 씨
- 1983년 영화숙 실태 수기로 남겨
- 1964년 수용 김경찬 씨 시집에도
- 짐승 취급 당했던 시설의 삶 생생

1960~70년대 부산 최초의 부랑인 강제수용시설인 ‘영화숙·재생원’에서의 지옥같은 삶을 기록한 문학 작품이 오래전 출간됐으나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피해생존자의 수기나 증언집이 진상규명 움직임을 촉발시킨 주요 기제로 작용했다.
1960년대 영화숙에 감금됐다가 부산 소년의집으로 전원됐던 장병문 씨가 1983년 영화숙의 참담한 실태를 수기 형식으로 발간한 책 ‘잃어버린 자식들’ 표지(맨 왼쪽)와 책 본문.
■ “인간 이하로 산 6년 폭로”

부산 소년의집 3기 출신인 장병문 씨는 1983년 영화숙의 참담한 실태를 담은 수기 ‘잃어버린 자식들’을 펴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한 6년의 한을 담아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작중 주인공 ‘종호’가 용두산공원에서 단속반에 붙잡혀 영화숙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군대식 통제에 겁을 먹은 종호는 몇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도망하지 못하도록 발바닥 매질도 당했다.

책에 따르면 영화숙에는 8개 막사가 있었다. 1~6소대, 보충대, 여성 소대·직업보도소 등에 소속된 원생 약 1000명이 살았다. 새로 붙잡혀온 원생은 보충대에서 생활했다. 새벽마다 이부자리에 소변 실수를 하는 원생이 많았는데, 이들에게는 식사가 절반만 제공됐다. ‘오줌싸개’가 아닌 원생들도 마실 물은 제한적이었고, 간식이나 성탄절 선물은 관리자에게 다 빼앗겼다.

일반 수용인은 ‘아동’으로 불렸다. 각 방 원생 중 ‘반장’이란 중간관리자를 뽑았고, 반장 위에 ‘소대장’, 소대장을 총괄하는 ‘지도장’도 있었다. 소대장들은 각목 같은 것을 휘두르며 아동들을 다스렸다. 굶거나 병들어서, 맞아서 죽은 원생은 ‘독수리산’(근처 야산) 소나무를 뽑아 생긴 구덩이에 파묻었다. 소대장이나 지도장 책임아래 훈련도 매일 진행됐다. 아동은 6·25 노래 등 군가를 부르거나, 자신들의 처지를 빗댄 노래를 불렀다. ‘찬바람이 쌀쌀대는 장림동의 영화숙, 오늘도 아침부터 구보를 뛰네’ ‘모여라 헤쳐라 엎드려 뻗쳐라 죄 안 지은 원생들 엎드려 뻗은 그 모습’ 등 가사도 다양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황송환 씨가 증언했던 ‘재생원 노래’(국제신문 지난해 11월 21일 자 6면 보도)와 유사하다.

■ “질긴 것이 생명이라 죽지도 못했다”

1964년 재생원에 끌려가 겪은 일을 시로 쓴 김경찬 씨.
재생원의 기억을 시로 남긴 작품도 있다. 민간요법 연구가 김경찬(66) 씨는 1964년 재생원에 끌려가 겪은 일을 시 ‘재생원’으로 풀어냈다. 2018년 8월 자비로 출판한 시집에 실었다. 경남 창원이 고향인 그는 부산 남포동을 전전하던 중 단속반에 붙잡혔다. 이후 1년 6개월 가까이 짐승 이하의 삶을 살았다.

‘이층칼잠 자다가도 기상하면 / 일어나서 밥 먹듯이 매를 맞고 / 강제노역 일 나가면 …(생략) / 돼지밥통 치우다가 뼉당구는 칼슘 얻고 / 마늘 파는 특미가 따로 없네 / 영양실조 걸린 아동 벌레 먹고 풀 먹다가 / 맞아 죽고 병들어 죽고 곯아죽네 / “오늘도 취사장에 돼지를 잡건만은 왕고기는 누가 먹고 / 국물만 주나 왕고기 백시라이 생각지도 않건만은 / 꽁시라이 찬밥이나 많이 줍소서” / 지옥 같은 목마름에 / 신평 쓰레기 매립장 썩은 물 많이도 먹었건만 / 죽기를 원했는데 / 찔긴 것이 생명이라 죽지도 못했네’

김 씨 또한 이후 재생원을 빠져나와 소년의집으로 옮겨갔다. 그는 “뭉그러진 낫을 들고 매일 밭일하러 나갔다. 반장의 호루라기에 늦게 반응하면 정강이뼈를 까이고 방망이로 맞았다. 먹을 거라곤 보리쌀이나 수제비가 다였다”며 “소년의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과연 내가 지금도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 “지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지길”

‘잃어버린 자식들’의 머리말에서 장 씨는 “이런 공포의 지옥이 아직도 어딘가의 고아원, 보육원, 기도원, 부랑아 수용소 등에 존재하리라고 믿으며 그런 불행한 분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바람처럼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반면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의 증언집 ‘살아남은 아이’는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 여론에 불을 붙였다.

장 씨는 최근까지 소년의집 3기 동창회 친구들과 교류했지만 현재는 연락이 끊겼다. 친구 허병우 씨는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 건 물론 전화도 되지 않는다”며 “친구가 영화숙에서 당한 일을 책으로 써내 우리에게는 화제였지만, 당시 세간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생생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니 다행이다. 책이 알려져 그때의 참상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4. 4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5. 5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6. 6[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7. 7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8. 8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9. 9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10. 10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3. 3‘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4. 4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5. 5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6. 6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8. 8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9. 9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10. 10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1. 1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2. 2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3. 3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4. 4‘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5. 5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6. 6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7. 7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8. 8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9. 9커피향 가득한 미래 작가들 ‘사랑방’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5일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6. 6“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6일
  8. 8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9. 9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0. 10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배재정 전 의원 실형 구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5. 5[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한 아이의 내일을 바꾸는 '부산의 힘'
“몸 불편한 엄마 화장실이라도 편히 사용했으면”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나노산단 분양률 50% 고무적…미래전략 앵커기업 유치 목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