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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폭탄, 찬물 샤워…오전 6시면 출근전쟁 소리에 잠 깨

슬기로운 물만골 탐구생활 <3> 한달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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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양간 개조한 집에서 월세살이
- 햇볕 잘 들지않아 벽지에 곰팡이
- 도시가스 없어 기름보일러 사용

- 막노동 일용직 많아 새벽 분주
- 밤 9시엔 ‘암흑’…아파트와 대조

- 점방 귀하고 이발소엔 ‘거미줄’
- 그래도 주민 “불편함 모르겠다”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은 행정 1번지 부산시청과 약 2㎞ 떨어진 황령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황령산 고갯길 마을로 유명하다. 부산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과는 걸어서 1.3㎞가량이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한 달 전인 지난달 8일부터 물만골에 월세를 얻어 생활하고 있다. 이곳 일상은 오전 6시에 시작됐다. 막노동이나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국제신문 최혁규 기자가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에서 집을 얻어 생활 취재에 나섰다. 사진은 최 기자가 일어나 머리를 감고,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 기사를 쓰는 모습. 이원준 기자
■외양간 개조한 집

취재진이 얻은 집은 과거 소 키우던 우사(牛舍)였다가 집으로 개조됐다. 박호생 물만골 노인회장의 도움으로 구한 월셋집은 방 두 칸에 부엌으로 사용된 흔적이 있는 다용도실을 갖췄다. ‘물만골 캠프’는 만족스러웠다.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던 기자에게 이곳은 넉넉했다. 가구가 없어 크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성인 10명이 잘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박 회장네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은 세대 간 격리공간이 돼 사생활 침해는 없다.

문제는 습기였다. 더위가 찾아오기 전 이례적으로 5월에 많은 비가 내린 탓이다. 담장에 막혀 햇볕이 잘 들지 않아서일까. 방에 넣어둔 두루마리 휴지와 종이곽에 든 뽑아 쓰는 휴지가 습기를 잔뜩 머금어 주름이 질 정도였다. 얇은 이불과 매트는 습기를 피해 차에 넣어두고 보관해야 했다. 빨래도 잘 마르지 않았다. 박 회장이 “바른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던 흰 벽지엔 곰팡이가 슬었다. 그렇다고 이방인 주제에 제습기를 들고 와서 호들갑을 떨 수도 없는 노릇. 벽에 신문지를 펼쳐 붙이는 임시처방을 했다. 많은 비가 내린 부처님오신날 연휴에는 방 안의 습도가 너무 높아 벗어둔 운동화와 외투가 물을 머금은 듯 무거웠다.

■‘일찍’ 하루의 시작과 끝

국제신문 취재진이 월세로 얻은 집은 과거 소 키우던 우사였다. 김영훈 기자
마을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빈집이 많아서인지 불이 켜진 집과 꺼진 집이 비슷했다. 물만골역 일대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와 물만골의 밤은 확연히 달랐다. 밤 9시가 넘자 암흑이 찾아왔다. 동네 한 바퀴 산책하려 나섰다가 가로등이 드문 칠흑 같은 어둠에 괜히 움츠러들기도 했다. 화가 잔뜩 난 채 짖어대는 대형견도 위협적이었다. “어느 집의 개인지 몰라도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니 조심하라”는 충고가 피부에 와 닿았다. 온 종일 짖어대는 개의 주인은 ‘물만골지기’로 불리는 이현태 어르신이었다. 70대 할머니 한 분은 “저녁에는 황령산 들개들이 배가 고파 내려오곤 하는데 조심해야 한다. 통장이 ‘들개 네 마리가 산에 있으니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데 저놈의 개가 저렇게 짖어대서 그런가 마을 안으로는 들개들이 안 내려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밤이 깊어지자 5월 하순에도 싸늘함이 느껴졌다. 바가지로 물을 받아서 샤워를 해보고자 보일러를 확인했는데, 등유를 넣어 쓰는 ‘기름 보일러’였다. 마을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 “기름 사장(주유소 관계자) 부르면 된다. 보일러 돌려서 쓰면 된데이”라고 집 주인이 설명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찬물로 머리만 감았다. 이곳 지하수가 좋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올라 바가지로 찬물을 받아 몸에 끼얹었다. “여기가 물만골이구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선배 기자는 “20년 전 강원도 양구에서 군 생활하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6시. 승용차와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골목골목에서 평소 보지 못했던 주민이 바쁜 걸음으로 길을 나서고 있었다. 컵라면과 햇반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니 벌써 8시.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을은 다시 ‘한가함’을 되찾았다. 허연호 통장은 “물만골 마을 사람은 대부분 오전 6시께 일을 나갔다가 오후 3시가 넘어서 서서히 들어온다. 청소 일이나 막노동을 하는 분이 많아서 그렇다. 그래서 시골처럼 일과가 일찍 시작되고 일찍 끝난다”고 전했다.

■문 닫은 점방과 이발소

문이 닫힌 물만골 이발소. 송진영 기자
마을에 정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생수가 떨어졌다. 가까운 상점을 찾아 마을을 찾아 헤매자 한 어르신이 “총각 뭘 그리 찾노”라고 말을 건네셨다. 물이나 라면 같은 생필품을 파는 곳이 없냐고 묻자 “저쪽 마을입구에 작은 점방이 있다”며 손가락을 뻗었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문 닫은 작은 가게 하나가 보였다. 다른 곳을 둘러봐도 흔하디 흔한 편의점조차 없었다. 허 통장은 “그 점방은 문을 거의 열지 않는다. 우리도 걸어나가서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본다”고 설명했다. 식당도 귀했다. 유일한 음식점은 마을버스 종점에 있는 ‘물만골 휴게소’다. 음료수와 컵라면을 파는 이곳은 마을버스를 타고 황령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산장 역할을 한다. 식사할 데를 찾는 취재진에게 주인 아주머니는 “미리 말하면 밥상을 차려준다”고 귀띔했다. 물만골에 정착해 처음으로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물만골에는 생활기반시설이 거의 없다. 마을 한 복판에 ‘이발, 5000원’이라고 적힌 이발소 문에도 거미줄이 쳐진 상태. 그래도 마을 주민에게서 불편한 표정은 읽지 못했다. ○○댁이라고 불러달라는 70대 후반 할머니는 “없이 사는 게 익숙해서 그런가 불편한 것도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보다 좋아졌다. 30년 전엔 마을버스가 있었나. 밑에 동네에 내려가면 온갖 짐 다 짊어지고 애 업고 등산하면서 올라왔다”며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눈치 안 보고 스트레스 안 받고 편하면 된 거 아이가”라며 웃었다.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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