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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역사 호주 ‘안작데이’…참전군인 희생 온종일 추모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6> 호주의 한국전 기록과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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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 이후 치러온 행사
- 매년 4월 25일 전사군인 기려
- 새벽별보며 시작 늦은 오후까지
- 전국 주요도시서 동일하게 열려

- 한국전쟁 위한 별도 추모공간
- 부산 유엔공원의 위령탑 비문
- 그대로 새겨 두 공간 강한 연결

- “눈·추위 익숙지 않은 호주인
- 6·25는 특히 힘들었던 전쟁”

올해도 어김 없이 108번째 호주 ‘안작데이(Anzac Day)’의 새벽이 찾아왔다. 안작은 호주와 뉴질랜드 군단(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의 약자다. 그 시작은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작은 영국 등과 함께 연합군의 일원으로 1915년 4월 25일 튀르키예(당시 오스만 제국)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갈리폴리에 상륙했던 연합군은 튀르키예군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이 전투에서 8000여 명의 호주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뉴질랜드 군인까지 포함하면 1만 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했다. 수많은 사상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14년밖에 되지 않은 호주 국민에게 엄청난 쇼크였다. 호주 국민은 1916년 4월 25일부터 매년 이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안작데이 행사를 연다. 지금은 안작이 참여했던 제1·2차 세계대전, 6·25전쟁 등 모든 전투 작전 전쟁 등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을 추모하는 날로 확대됐다. 우리의 현충일과 비슷하다.
지난 4월 25일 오전 9시30분부터 호주 캔버라 안작 퍼레이드에서 참전용사들이 행진하고 있다. 김태훈 PD
■새벽 추모

지난 4월 25일 새벽 4시 호주 수도 캔버라 호주전쟁기념관의 ‘캡틴 레그 손더스 정원과 조각공원(Captain Reg Saunders Courtyard and Sculpture Garden)’. 9도의 기온 탓에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30분 뒤 시작되는 안작데이의 ‘새벽 추모 기념식(Dawn Service)’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현충일 행사와는 조금 달랐다. 우선 행사 시작이 새벽이었다. 이는 갈리폴리에 상륙할 때의 시간이다. 목숨을 걸고 싸운 군인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함께 하려는 호주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하루를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어느새 수만 명의 사람이 몰려 한마음으로 추모했다.

행사 시작 전 일찍 도착하면 총리 등이 참석하는 주요 국가 행사를 10m 정도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생경했다. 수만 명의 사람이 몰렸지만, 별도의 신분 확인이나 입장 티켓은 없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무질서할 것 같았지만, 뒤늦게 도착한 인파는 정원 내 별도 공간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행사에 동참했다.

새벽 추모 기념식은 호주 해군 공군 육군 장병 대표가 나와 각각 전쟁을 직접 경험한 병사의 편지와 일기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레그 손더스 대위와 브라이언 쿠퍼 하사의 이야기도 낭독됐다. 묵념, 추모 연주, 양귀비(퍼피) 헌화, 호주 국가 제창 등이 이어졌다. 이와 같은 형태의 추모 행사는 캔버라뿐만 아니라 시드니 멜버른 퍼스 등 주요 도시에서도 같은 시간 열렸다.

호주전쟁기념관 내부에 기록된 한국전쟁 전사자의 명단. 김태훈 PD
캔버라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추모 연설에서 “우리는 함께 모일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모일 것입니다. 우리가 빛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그들 덕분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안작 퍼레이드에서는 호주가 참전한 여러 전쟁과 전투에서 생환한 참전용사와 유족 등 수백 명이 행진했다. 이들을 지켜본 시민은 연신 박수로 호응했다. 어린애부터 나이가 지긋한 참전용사까지 남녀노소 모두가 참석한 퍼레이드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도 볼 수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한 행사는 이날 오후 4시45분까지 계속됐다. 마지막 행사는 호주전쟁기념관 내부에서 열린 ‘라스트 포스트(Last Post)’였다. 라스트 포스트는 하루 활동이 끝남을 알리는 나팔 소리다. 장례식과 기념식에서 마지막 작별을 뜻한다. 죽은 자의 의무가 끝나고 평온히 쉴 수 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나팔 소리는 구슬프게 울렸고, 긴 행사가 마무리됐다. 라스트 포스트 행사에서 군복을 입고 참석한 일부 젊은 추모객이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하루 종일 진행된 만큼 청년에게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행사였다. 108년의 역사를 가진 안작데이가 현재 식순으로 정착된 것은 1930년대 중반으로 알려져 있다. 100년 가까운 세월, 이 행사를 치르는 호주인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호주가 기억하는 한국전쟁

안작 퍼레이드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비에 마련된 참전용사 동상. 쇠로 만든 기둥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340여 명의 호주 군인을 상징한다.
호주에서 한국전쟁의 발자취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호주전쟁기념관과 국회의사당 사이로 뻗은 안작 퍼레이드. 이곳에는 안작이 참여한 제1·2차 세계대전 등의 참전비가 조성돼 있다. 한국전쟁 참전비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1950-53(KOREAN WAR 1950-53)’이라고 새겨진 영문 철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유엔군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1만7000여 명의 호주군을 위해 2000년 4월 18일 조성됐다. 한국전쟁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렸다는 점에서 다른 추모 공간과 차별화됐다. 흰색과 회색을 사용해 한국의 화강암 지대, 혹독한 겨울 등을 떠올리게 했다. 추모 공간 양쪽으로 꽂혀 있는 쇠로 만든 기둥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340여 명의 호주 군인을 상징했다. 기둥 사이마다 호주 군인의 동상도 보였다.

추모 공간 가운데는 ‘평화’라는 한글과 함께 경기도 가평에서 온 돌이 놓여 있었다. 호주군이 참전한 전투를 지도 등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외부의 오벨리스크는 무덤 없이 숨진 군인을 위해 마련됐다. 이곳에 새겨진 비문은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영연방위령탑에서 가져와 한국과 호주를 연결하고 있다.

호주전쟁기념관에서도 한국전쟁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상 1층은 호주군이 참전한 제1·2차 세계대전 위주로 구성돼 있다. 지하 1층은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참전했던 전쟁과 관련된 전시 자료를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는 한국전쟁 이야기로 메워져 있다. 특히 안작이 활약한 가평전투를 자세히 안내했다. 가평전투는 1951년 봄철 안작과 캐나다군 등 영연방 국가가 중공군의 공세를 막는 데 크게 기여한 전투다.

6·25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국전쟁은 호주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시드니에서 캔버라를 방문한 브라이언 홉슨(83)은 “한국전쟁을 알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몰라도 저와 비슷한 세대는 거의 대부분 알 겁니다. 유엔이 주도한 전쟁으로 호주 군인은 유엔군의 일부였죠. 호주 군인에게 이 전쟁은 상당히 힘든 전쟁이었습니다. 호주 사람들은 춥고 눈이 많이 오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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