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MZ 겨냥 체험공간 조성
- 사라지는 목욕문화 기억 넘어
- 커뮤니티 시설로 탈바꿈 시도
- 日 업체와도 생존책 모색 계획
“한때는 동네 목욕탕이 주민들 ‘사랑방’이나 다름 없었죠. 하루의 일상을 매끄럽게 씻어내고, 이웃 간 정겹게 소통하는 자랑스런 문화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커뮤니티 기능을 잃으면서 사실상 사양산업이 됐죠. 500개 정도 남은 부산 목욕탕이 요즘 부산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함께 찾고 싶었습니다.”(안지현 매끈목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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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영도구 봉래탕에서 지난 6일 열린 목욕탕 공간 전시 ‘몰래탕’을 찾은 관람객들이 볼풀 탕에서 놀고 있다. 이원준 기자·매끈목욕 제공 |
13일 부산 영도구 봉래탕에서 이색 행사가 열렸다. 목욕탕 정기휴일에 맞춰 MZ 세대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 굿즈로 봉래탕을 꾸며 체험할 수 있는 ‘몰래탕’ 프로젝트다. 때수건으로 퍼즐맞추기·샴푸통 이용 볼링게임·볼풀 포토존·DIY 목욕탕 캐릭터 색칠 체험 등 대중목욕탕 이용 경험이 적은 MZ 세대가 친숙하게끔 아기자기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MZ 세대가 SNS 상에 동네 목욕탕에 대한 호감을 전달하고, 나눌 수 있도록 기획했다.
평일 오후지만 목욕탕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볼풀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는 엄마에게 “다음엔 진짜 목욕탕에 가자”고 졸랐다. 목욕탕에 처음 와본다는 MZ 세대가 많았다. 친구와 함께 온 정지현(26) 씨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목욕갔던 기억이 나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거의 안 갔다”며 “목욕탕이 단순히 목욕만이 아닌 재미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놀이와 휴식을 위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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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두 번째 행사에서 ‘때쟁이 컬러링 콘테스트’ 체험을 하고 있는 모습. 이원준 기자·매끈목욕 제공 |
‘주인 몰래’라는 뜻으로 지난 6일에 이어 이날 진행된 행사는 민간 연구소인 ‘매끈목욕연구소’(매끈목욕)가 주최했다. 로컬브랜딩 업체인 싸이트브랜딩이 사라져 가는 동네 목욕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부산만의 동네목욕탕 문화를 다시 열고 싶어 출범시켰다. 안 소장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가던 기억,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신나게 놀던 추억을 단순히 흘려보내지 말고,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매끈목욕은 젊은 층이 목욕탕을 익숙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목욕탕을 인수해 독서·요가프로그램 등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목욕탕을 만드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목욕탕 기록 작업도 진행 중이다. 1981년 개업 후 타일 한 장 바꾸지 않은 서구 ‘구덕탕’의 옛 모습을 국내 최초로 디지털 스캔해 데이터로 담아 향후 각종 미디어 전시에 활용할 예정이다. 오는 22일에는 전국 첫 동네목욕탕 전문 잡지 ‘집 앞 목욕탕’도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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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탕을 소개한 굿즈와 팜플릿. 이원준 기자·매끈목욕 제공 |
봉래탕 대표 이영훈(50) 씨도 연구소의 행사 취지에 공감해 목욕탕 대여에 적극 나섰다. 아버지가 운영해오던 목욕탕을 물려받은 이 씨는 “목욕탕업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바뀌려는 노력이 없어 트렌드에 뒤처진 것이라 생각한다”며 “만화방이 만화카페 등으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목욕탕도 일종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매끈목욕은 국제 콘퍼런스도 기획하고 있다. 안 소장은 “오는 9월 일본의 동네목욕탕 쇠퇴를 막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로 운영 중인 코스기유, 도쿄욕장 대표들을 초청해 동네 목욕탕 발전 콘퍼런스(‘집앞 목욕탕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재미있는 여러 시도를 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