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아이 돌보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시간을 내서라도 우리 이야기를 알리려고 해요.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은 조치가 없고 사회적 관심도 적어서 몸과 마음이 지치네요. 너무 속상합니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코백회) 7번째 전국 투어 버스킹이 열린 지난 24일 부산역 광장에서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유족인 김희정(여·36) 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4중고’에 고사 직전 피해자…‘정부 불신’ 사례 남길 듯

이날 공연장 주변은 한산했다. 불볕 더위 아래에서 공연하며 백신 피해자의 이야기를 알린 이들은 백신 피해자도 그들의 가족도 아니었다. 이 공연을 맡은 ‘별빛 나눔 가수들의 모임’ 회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노래와 연주를 하면서 시민에게 백신 피해자의 사연을 전했다. 공연장 한 쪽에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백신 피해 내용이 담긴 영상물이 나왔다. 이 버스킹이 처음 시작된 지난 4월 피해자들이 여럿 참여해 안타까운 사연을 시민에게 알린 것과 달랐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온 김 씨와 자원봉사자들만 역사를 오가는 이들에게 백신 피해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건넸다. 간혹 부산 경남의 백신 피해자들이 한두 명씩 공연을 잠시 보고 갔지만, 여럿 자리를 차지하고 행사장을 지키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지난 24일 부산역 광장에서 ‘별빛 나눔 가수들의 모임’ 회원들이 코로나19 백신 피해자의 상황을 알리는 전국 버스킹 투어 공연을 7회째 이어가고 있다. 김채호 기자

백신 피해자와 가족들이 시민사회와 정치권에 백신 접종 피해를 주장하며 대책 마련과 관심을 촉구한 지 2년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이들도 지쳤다. 이날 버스킹 모습은 그런 피해자의 상황을 의미했다. 그간 피해자들은 정치인들과 수없이 접촉하며 포괄적 피해 보상 지원을 보장하는 제도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지원을 약속했을 뿐 현실적 조치는 없었다. 국회 앞에서 쇠사슬을 몸에 묶고 국회의장과 면담을 시도하고, 거리 집회에 참여한 야당 대표에게 대화를 요청하다가 경찰에게 제압 당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 앞에서 몇 차례 집회 중 울분 섞인 행동을 했다가 정치 목적의 시위자로 오해 받고 집회정지 통고를 받아 취소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다. 그 사이에 피해자와 가족은 몸과 마음이 상했다. 경제적 이유로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백신 접종 이후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피해자의 사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 여당 국회의원 보좌관은 “관심 받기에는 이슈의 시효가 지나도 너무 지났다”고 말했다. ‘육체’와 ‘정신’이 무너진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에‘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하는 ‘4중고’에 빠진 것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이 근처 다른 집회에 참가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하려다가 제지 당하자 오열 뒤 실신했다. 코백회 제공

백신 피해자와 가족 문제가 계속 방치되면 자칫 ‘정부와 정치 불신’의 대표적 근거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지난 5~6월 전국 만 18세 이상 1013명을 상대로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에 대해 물은 결과 ‘이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45%)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14%)보다 훨씬 많았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어떤 국민이 정부를 믿고 예방접종을 하겠냐”며 “백신 피해자 문제는 정부의 신뢰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몸을 쇠사슬로 묶은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국회 앞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법 마련 하세월에 잊혀진 ‘국가 백신 책임제’

지지부진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는 백신 피해자의 포괄적 지원을 보장하는 법안이 여야 국회의원들에 의해 10여 건 올라와있다. 백신 접종과 이상반응 간 시간적 개연성이 높고, 이상반응이 다른 원인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게 확실하면 백신 부작용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주자는 게 대다수 법안의 핵심이다. 이 중 백신 피해가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입증하지 못하면 부작용으로 인정하는 ‘입증책임 전환’ 법안도 있지만,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은 “보상 대상이 급격히 많아진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대신 피해자들은 ‘사망이나 질병 등이 원인 불명이거나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경우’ 보상하는 대체 조항을 제시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질병청은 “보상 규모가 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조율 끝에 질병청은 기존 백신 피해로 인정하지 않는 4-1 인과성 판정자(치료비 지원 대상)를 백신 피해자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안을 제시했다. 또 접종과 이상반응 간 시간적 개연성은 있으나 다른 이유로 인한 질병 발생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돼 보상·지원도 받지 못한 이들(기존 백신과 질병 간 인과성 판정 결과 4-2 등급)을 ‘지원’하는 내용도 제안됐다. 백신 접종 뒤 3일 안에 숨진 이들과 사인불명이지만 접종 이후 90일 이내에 사망한 이들에게 각각 위로금 1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지원’ 명목을 ‘보상’으로 바꾸는 용어 바꾸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관련 예산 규모가 증액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히,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 중 시간적 개연성이 인정되는 이들은 4-2 판정자도 4-1 판정에 준해서 ‘보상’ 받아야 한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한다. 또 4-2 판정을 받은 이들 중 중증장애가 생긴 이에게도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지만, 질병청은 필요한 예산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피해자와 질병청간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지난 4월 여당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강기윤 의원실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에 백신 피해자 보상 지원을 위한 법안을 상정하려 했으나 불발됐다. 이번 주 2소위원회 회의에 관련 내용이 올라와 법안 논의가 예정돼 있지만, 이달 안에 최종안이 도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국회 앞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잦은 상임위 이동에 탄력 떨어지는 법안 추진

‘백신피해 국가책임제 도입 ’을 약속했던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의원 대신 같은 당의 신동근 의원이 보건복지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백신 피해자 구제에 대한 국회 의지가 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강훈식(민주당) 의원 대신 고영인 의원이 야당 간사 직을 맡는 등 일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물갈이’ 되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코백회 관계자는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이 바뀔 때마다 상황을 설명하고 법안 추진에 힘을 실어달라고 부탁하는 일을 반복한다”며 “의원들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위원 구성이 달라지는 일은 최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에 신 의원은 “(백신 피해자 특별법 제정 등과 관련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면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고 의원 측은 “피해자 구제 제도 개선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면서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수 있도록 (새롭게 보건복지위원이 된 의원들에게도) 사안을 전해 당내 백신 피해 문제 환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정국에서 ‘백신 국가 책임제’를 약속했지만, 정부의 백신 피해 인정 확대와 관련한 특별법 추진 노력은 ‘보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와 질병청 모두 4-2 판정자(현 보상·지원 미대상자)를 보상 대상에 넣는 피해 인정 확대에 관해 난색을 표한다. 보상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백신 피해자는 “4-2 판정자들 중 보상 당위성이 높은 이들에게 만 4-1에 버금가는 부분 보상하고, 그 외의 분들은 별도의 재심 기관을 통해 판정 받을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정부 방침대로 백신을 접종한 이들이 일상과 가족을 잃은 피해를 정부가 인정하고 보상하라는 게 무리한 요구냐”고 반문했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천막 앞에서 백신 피해자들이 국회에 백신 피해 구제 법안 개정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록 기자

●자구 여력·사회적 도움 전무…“우리 좀 봐달라”

일부 법 전문가들은 질병청과 백신 제조 해외 제약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 해 피해를 인정 받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피해자들은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피해자 중 일부만 질병청을 상대로 개별 피해보상 소송 중이다. 지난해 9월 서울행정법원이 30대 남성이 “예방접종피해보상 신청을 거부한 처분을 취고하라”면 질병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백신 부작용 피해보상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소한 첫 사례여서 이후 비슷한 줄 소송이 기대됐으나 백신 피해자 상당수는 “시간·경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사례가 달라서 집단소송도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상황이 이런데, 최근 지자체는 백신 피해자의 운동 근거지조차 불법이라며 철거를 요구했다. 서울 중구청이 청계광장 내 피해자 분향소 등 집회 천막 2개 동과 적치물이 도로 무단 점용에 해당한다며 계고장을 보낸 것이다. 김두경 코백회장은 “이 분양소에 선거 때마다 각당 후보들이 왔다 갔다. 우리가 심각한 불법을 자행한 거면 이 천막을 다녀간 정치인 모두 불법을 묵인한 것”이라면서 “지자체도 정부도 정치권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못 본 척 편의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 사이에 피해자와 유족은 점점 지쳐 말라가고 있다. 우리 좀 봐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백신 접종 피해자의 사연을 알리는 대국민 버스킹 행사는 피해자들을 돕는 가수들이 주도하기로 했다. 그간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를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며 열을 올렸던 피해자들에게 잠시나마 쉴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이날 만큼은 매주 열리는 코백회 집회도 쉰다. 이 행사를 기획·총괄한 가수 레모니안 씨는 “시민이 공연을 보면서 피해자들의 사연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자는 생각으로 공연 방식을 바꿨다”면서 “집회 자체를 색안경 끼고 보는 사회적 시선도 고려해 최대한 문화행사처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코백회와 가수들은 차후 버스킹 때 백신 피해자와 가족이 대대적으로 모여 기운을 북돋울 행사를 고민 중이다.

지난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례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강기윤 의원은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에게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국회방송 캡처

●“다시 힘내자”…특별조사위원회 필요성, WHO 설득론 대두

피해 보상 전 단계인 인과성 조사 판단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쏠린다. 지난 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강기윤 의원은 지영미 질병청장에게 “백신 접종 이후 억울하게 숨졌지만 백신과 인과성 판정을 받지 못한 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의 피해에 대해 애민·사회과학적 판단이 이뤄질 기회를 주는 게 맞다. 이런 조사 판단을 할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현재의 피해보상전문위원회 중심의 인과성 판정 방식에서 벗어나 백신 피해 상황을 종합적으로 조사·판단할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꾸리자는 것이다. 현 질병청 산하 피해조사전문위원회가 의학계 중심으로 인적 구성이 이뤄진 반면, 특조위는 정부·학계·법조·의료계·시민단체·백신 피해자·노동계·정치권 등 다양한 인사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식이다. 기존 피해보상전문위 판단이 의학적 견해를 중심으로 이뤄져 한계가 있었다면 특조위의 조사·판단은 법·사회·관습적 판단이 포함된 포괄적 판단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 청장은 “비슷한 위원회 구성을 검토 중”라고 답변했다.

기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한 제도 개선 노력과 더불어 해외 기관을 상대로 피해자와 전문가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질병청의 인과성 판단 상당수가 WHO 판단 결과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 점을 감안, WHO로부터 국내 발생 빈도가 높은 해외 사례의 인과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다. 이미 일부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있다.

지난 24일 부산역 광장 앞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버스킹 공연에 참석한 피해자 유족 김희정 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채호 기자

●젊은 미망인이 보여준 희망…“힘들어도 부끄럽지 않게”

이날 대국민 버스킹 부산 행사장을 3시간 가까이 지킨 희정 씨도 남편의 사인 규명을 위해 해외 논문과 사례를 모으고 있다. 남편 사망 뒤 부검 진단서에 적힌 혈전증과 백신의 연관성 관련 해외 사례와 연구 논문을 정리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내기 위해서다. 생화학 박사 학위 소지자로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희정 씨는 해외 논문이 익숙하다. 그는 “정부와 보건 당국이 (국내 의료진이나 연구기관의 말은 안 들어도) WHO 판단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보이는 것 같다”며 “그렇다면 전 세계 피해자들과 연대해 WHO를 설득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희정 씨의 남편은 화이자 2차 접종 이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암이 몸 속 장기 곳곳에 퍼져 수술을 받았지만, 이후 4일 만에 호흡 곤란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을 통해 “몸 안에 많이 생긴 혈전이 동맥을 막아 호흡 곤란이 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후 희정 씨는 남편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많은 의사로부터 “백신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백신이 아니고서는 건강했던 젊은 남성에게 생긴 암이 한 달만에 장기 곳곳에 퍼져 혈전이 혈관을 막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는 게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희정 씨는 올해 4살 된 아이를 홀로 키운다. 많이 힘겹지만 끝까지 코백회 활동에 참여하며 남편의 사인 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는 “저를 비롯한 코백회 회원들 모두 정부 정치권 시민을 상대로 목소리를 낸 지 2, 3년 째다. 생계와 코백회 활동을 함께 하니 다들 지쳤다”면서도 “그래도 계속 남편의 사인 규명을 위해 노력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