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소녀 노예’로 3년 감금생활 “풀 뜯어 먹다 죽는 아이 있었다”

영화숙 여성 피해자 진순애 씨

  • 정지윤 stopx@kookje.co.kr, 신심범 기자
  •  |   입력 : 2023-07-23 19:36:05
  •  |   본지 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부산시 집단수용시설 피해 신고
- “부산진역서 영문 모른 채 납치돼
- 5평 남짓 방에 15~20명씩 ‘칼잠’
- 강냉이죽 먹으며 매일 강제노역
- 그 아이들 만나 칼국수 사주고파”

“부산에 올 때마다 부산진시장이나 중앙시장을 찾아가요. ‘혹시라도 영화숙에서 지낸 옛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난 한 눈에 알 것 같은데’ 싶어 한 바퀴 돌아보는 거죠. 배가 고파 풀이란 풀은 다 뜯어 먹던 그때를 생각하면… 따뜻한 칼국수라도 한 그릇 사주고 싶습니다.”

1960년대 11살 무렵에 부산 영화숙에 붙잡혀 3년여 동안 수용됐던 진순애 씨. 현재는 경기도에 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진순애(67) 씨는 소녀의 몸으로 노예와 같은 삶을 감내해야 했다. 1960년대 부산 최대 부랑아 시설 ‘영화숙’에 붙잡힌 그는 ‘어린이’도 ‘인간’도 아닌 그 이하의 존재로 3년을 살아냈다. 혹독한 훈련, 날아드는 폭력, 부실하기 짝이 없는 끼니는 그의 삶을 고통으로 채웠다. 진 씨는 지난 4월 부산시가 지역 내 집단수용시설 피해사실을 접수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신고를 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여성 피해자다.

1956년 경주 출생인 진 씨는 열한 살 겨울 즈음 부모님을 떠나 부산으로 왔다. 부모님, 동생들과 밥 굶을 일 없던 평범한 집 딸이었지만 ‘아가씨 장사’로 생계를 꾸리는 부모가 싫어 홀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부산진역에서 진 씨는 또래들과 어울리며 방황했다. 연고 없는 부산엔 신세 질 곳이 없었지만 영화숙에 ‘납치’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뭔가 덥썩 잡더니 냅다 차에 실었다. 검은 옷의 남자 3명이었다. 차에는 먼저 붙잡힌 또래들이 몇 명 있었다”고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간 곳에선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게 시켰다. 부모님에게 연락할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이 찾는 일은 없었다. 진 씨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나를 안 찾는구나 원망했지만, 실제 연락을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고 했다.

진 씨는 여성소대에서 3년 이상 살았다. “5평 남짓한 방 한 칸에 15명, 20명씩 몰려 있었어요. 방이 좁으니 내 머리와 옆 사람 다리가 한 방향으로 눕는 ‘칼잠’을 자야 했는데, 그마저도 좁아서 서로 딱 붙다시피 했어요. 벽돌 방이니 겨울에는 엄청 춥죠. 그런 방이 소대에 7, 8개 있었어요.” 소대장 등 관리자는 여성소대원과 부적절한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같은 행동은 10대 초반 여자 아이들로 가득한 방 안에서도 자행됐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제식훈련과 구보도 피할 수 없었다. 작은 발동작이라도 틀리면 어김없이 손찌검이 기다렸다. 구보를 마친 뒤엔 근처 웅덩이에 세숫대야를 놓고 여러 명이 한 번에 씻는데, 물이 더럽다 보니 옴 같은 피부병에 자주 걸렸다고 한다. 영화숙이 자리한 서구 장림동(현 사하구 신평동) 일대는 과거 바닷물이 차 오르는 습지이면서 부산시의 폐기물 매립장이 있었다. 밭일과 같은 강제노역도 매일같이 이어졌다. 끼니라곤 건더기 없는 된장국이나 강냉이죽 정도가 전부였다. “노예나 다름 없었다. 배가 고파 근처 풀이란 풀은 다 뜯어 먹었다. 또래 한 명은 풀을 잘못 뜯어 먹고 채독에 걸려 죽었다. 사람이 죽으면 뒷산에 가서 묻어버렸다”고 진 씨는 말했다.

진 씨는 고참이 되고서야 탈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후 거리를 떠돌아야 했던 그는 강인한 생활력을 발휘한 끝에 자수성가했지만, 결국 부모님과는 살아생전 재회하지 못 했다. 진 씨는 “과거 내가 겪은 고통이 그 시절을 산 또래 친구들을 위한 진상규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은 최선 다했다…뜨거웠던 ‘K-원팀’ 여정
  2. 2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연내 통과? 좌동 재건축 기대감 들썩
  3. 3낙동강 무인도에 수상한 중계기…150억대 보이스피싱 일당이 설치(종합)
  4. 4與 ‘현역 물갈이’ 기류에도…일부 PK의원들 “난 아닐거야”
  5. 5[속보]부산, 2030 엑스포 유치 실패
  6. 6부산연구개발특구 5곳 추가 지정, 동·서부산 2개축 성장전략 ‘탄력’
  7. 7[단독] 부산시 ‘통학로 개선 리빙랩’ 예산 80% 삭감
  8. 8'오일머니' 앞세운 사우디 월드컵 이어 엑스포까지 유치
  9. 9사립초 입학 전형에 영어면접까지? 부산교육청 감사 착수(종합)
  10. 10[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27> 경북 돼지 간바지
  1. 1與 ‘현역 물갈이’ 기류에도…일부 PK의원들 “난 아닐거야”
  2. 2尹 “종료휘슬 불 때까지 뛴 원팀…韓, 국제사회 많은 친구 얻었다”(종합)
  3. 3“연동형 유지” vs “병립형 회귀” 선거제 개편 놓고 野는 딜레마
  4. 4민주, 이동관 위원장 등 3명 탄핵안 재발의
  5. 5산은·고준위법 법안소위 안건 상정 불발
  6. 6與 ‘2+2 민생법협의체’ 제안에 “법사위부터 열어라” 野는 거부
  7. 7부산 뒤집기냐, 리야드 승리냐…외신도 뜨거운 관심(종합)
  8. 8北 “美백악관·펜타곤도 위성 촬영”…‘판문점 JSA 비무장화’ 폐기 수순
  9. 9윤 대통령 "엑스포 유치 실패 제 부족, 서울·부산 두 축 균형발전 그대로"
  10. 10부산정치권 2035부산엑스포 재시동 걸고, "부산 현안 차질없이 진행"
  1. 1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연내 통과? 좌동 재건축 기대감 들썩
  2. 2부산연구개발특구 5곳 추가 지정, 동·서부산 2개축 성장전략 ‘탄력’
  3. 3정부 "부산엑스포 실패했지만 국제협력 약속 그대로 이행"
  4. 4한국GM·기아·포르쉐 등 제작 결함으로 리콜(시정조치)
  5. 5천연잔디 골프장, 양한방협진 서비스…호텔급 실버주택 뜬다
  6. 62030 엑스포 후보 3개국 최종 PT 종료…투표 절차 시작
  7. 7ESG경영 앞장 콜핑, 폐어망서 친환경 섬유 뽑아낸다
  8. 8마음은 벌써 성탄 전야…유통·호텔가 ‘X-마스 마케팅’
  9. 910월 가계대출 금리 8개월 만에 5%대
  10. 10“엔데믹 맞춤관광 대책 절실” 부산시관광협회 포럼 개최
  1. 1부산은 최선 다했다…뜨거웠던 ‘K-원팀’ 여정
  2. 2낙동강 무인도에 수상한 중계기…150억대 보이스피싱 일당이 설치(종합)
  3. 3[속보]부산, 2030 엑스포 유치 실패
  4. 4[단독] 부산시 ‘통학로 개선 리빙랩’ 예산 80% 삭감
  5. 5'오일머니' 앞세운 사우디 월드컵 이어 엑스포까지 유치
  6. 6사립초 입학 전형에 영어면접까지? 부산교육청 감사 착수(종합)
  7. 7[속보]한덕수 총리 "엑스포 유치 실패 무거운 책임"
  8. 8“무채색 같던 중년여성 삶, 나전칠기 만나 반짝반짝 빛났죠”
  9. 9‘묻지마 폭행’ 의식불명인데 피의자 불구속 檢 송치 논란(종합)
  10. 10부울경 흐리고 건조…일부 지역 퇴근 때 빙판길 주의
  1. 1살아난 허웅, KCC 연패 사슬 끊었다
  2. 2손아섭 은퇴선수가 뽑은 올해 최고 선수
  3. 3주심 PK 선언에도 “아니다” 실토…골 욕심 많은 호날두의 양심선언
  4. 4황소의 돌진…시즌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
  5. 5세계랭킹 15위 신지애, 파리올림픽 조준
  6. 6불법 촬영혐의 황의조 축구대표팀 제외
  7. 7염종석 이후 31년째…롯데 신인왕 배출 내년엔 기필코!
  8. 8손캡 3골 모두 오프사이드…위기의 토트넘
  9. 9롯데의 2024년은 이미 시작됐다, 마무리캠프 현장 방문기[부산야구실록]
  10. 10류현진 30·40대 FA중 주목할 선수
우리은행
위태로운 통학로 안전해질 때까지
부산시 ‘통학로 개선 리빙랩’ 예산 80% 삭감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무채색 같던 중년여성 삶, 나전칠기 만나 반짝반짝 빛났죠”
  • 제25회 부산마라톤대회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