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죽은 후 주님이신 여호와는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다(여호수아 1:1~9).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내가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령에 신실한 지도자였다. 여호와께서 들어가라는 땅은 가나안이었다. 원래 아브라함 조상 때부터 가나안 토착 원주민 틈에 끼여 더부살이를 잠깐 했었지만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로 건너가 400여 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다. 그러니 다시 들어가려는 가나안은 생소한 땅이었다. 40여 년 동안 가나안 외곽 유대광야에서 사느라 지쳐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요단(Jordan)강 건너 가나안 땅의 여리고(Jericho)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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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Jericho 함락 때부터의 싸움이 공생할 수 있을까. |
대략 BC 1400여 년 전 즈음의 역사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시키는 대로 실행했다. 사람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 못 할 뜬금없는 방법이었지만 그대로 따랐다. 언약궤를 메고 나팔을 불며 여리고성 주위를 엿새 동안 한 번씩 돌고 일곱째 날에 일곱 번 돈 후 나팔 소리에 맞춰 모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랬더니 견고했던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이 신기한 여리고성 이야기를 가지고 교회에서 어린이들이 연극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안으로 들어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섬멸 진멸 몰살 말살했다. 인간은 물론 가축까지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칼날로 멸하며(여호수와 6:21) 곡식까지도 불태웠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Theodore Gericault 1791~1824)는 자기 이름의 어원인 여리고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이 성경 속 여리고를 어떻게 해석하고 싶을까? 해석할 수 있을까? 해석해야 할까? 도저히 실현될 것 같지 않은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실현가능하게 되는 신앙의 문제로 해석하면 될까? 신앙의 영역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생명의 문제를 말하고 싶다. 여리고성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관해 어찌 생각해야 할지…. 그들은 이방신을 섬기며 난잡하며 추악한 짓을 범했기에 죽는 게 그들의 운명이라고 딱 잘라 말해도 될까? 우리는 얼마나 고결하며 순수하게 살고 있는 걸까?
여리고성 함락과 진멸 사건 이전 모세 때에도 세 번에 걸친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민수기 21:3, 신명기 2:34, 3:6). 신명기에 기록된 표현은 더욱 적나라하다. 그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진멸하였단다. 진멸(殄滅)이란 무찔러 모조리 죽여 없앤다는 뜻이다. 지옥보다 더 끔찍했을 것이다. 그 참상은 3500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땅에서 진행 중이다. 땅 모양이 매서운 칼을 닮아서인지 싸움의 양상이 무섭다. 땅의 풍수지리가 안 좋아서 요란했나? 진멸한다지만 진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들의 복수가 이어진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과 팔레스타인의 알라 하나님 간의 영적 전쟁도 아니다. 어차피 똑같은 하나님이신데 위대한 하나님끼리 전쟁을 벌일 리 없다. 인간의 영토 전쟁을 숭고한 영적 전쟁으로 승화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진멸하기 전에는 서로를 진멸하려는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나름 전환적으로 해석한 갈등의 새로운 의미에 의하면? 칡나무(葛)와 등나무(藤)는 서로 말려 죽이기보다 햇볕을 얻기 위해 서로 꼬이며 올라가 상생한다. 그렇게 연리지처럼 엉킨 갈등(葛藤)과 같이 공생하며 살 순 없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