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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전사로 가족 뿔뿔이 흩어졌지만…“아들로서 자긍심 느껴”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9> 영국군 故 제임스 토마스 헤론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11-12 19:02:17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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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 직업군으로 입대한 제임스
- 여군 운전병이던 헬렌 만나 결혼
- 2차세계대전서 다치고도 한국행
- 영국 날아온 부고에 헬렌 우울증
- 네 남매 기숙학교·고아원 등 생활

- “돌아가신 어머니 유엔공원 묻혀
- 아버지 곁으로 50년 만에 재회
- 기억 없는 부친이지만 늘 그리워”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네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살 처지가 안 됐죠. 결국 저와 셋째 형은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 갔어요. 그래도 원망스럽지는 않습니다. 당시엔 다들 그랬으니까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북쪽의 작은 마을 로지스에서 만난 패트릭 데이비드 앨런 헤론(72)은 아버지의 전사 후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담담한 말투로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왕립 노포크 연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제임스 토마스 헤론이다. “아버지가 참전했을 때 저는 생후 6개월째였고, 전사했을 때도 9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알 기회가 없었죠. 아버지와 관련한 모든 정보는 어머니와 형제자매에게서 들었습니다.”

■가족의 탄생

1951년 8월 한국으로 파병가는 기차에 탄 제임스 토마스 헤론(맨 왼쪽)이 아내 헬렌과 아들 대니로부터 샌드위치와 마실 것을 받고 있다. 패트릭 데이비드 앨런 헤론 제공
1921년 영국에서 태어난 제임스는 어린 나이였지만 1938년 직업 군인으로 입대했다. 1941년 평생의 짝인 패트릭의 어머니 헬렌을 만나 결혼했다. 헬렌은 여군이었고 운전병으로 보급품이나 총탄을 나르기도 하고, 조리사로도 복무했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마 두 분이 이야기하면서 친밀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까지 골인했죠. 두 분은 함께 춤을 추는 등 사교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굉장히 사랑했다고 들었어요.”

둘의 행복한 신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93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 탓이다. 제임스는 태평양 전쟁에 파병됐다. 당시 영국령 버마(미얀마)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제임스는 왼쪽 눈을 크게 다쳤다.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 더 이상 군 생활을 이어가긴 어려웠다. “1946년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아 군 복무를 마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제임스의 귀환으로 패트릭 가족은 다시 안정을 찾았다. 1947년 네 남매 중 셋째 대니도 태어났다. 제임스는 아이들과 함께 토끼 사냥을 가기도 했고, 집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수영을 배우는 곳이 있어서 함께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1951년엔 막내인 패트릭까지 태어났다. “아버지와 직접적인 기억은 없지만 두 형과 누나로부터 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는 무척 자식에게 잘해주셨어요.”

■한국전쟁 참전

1941년 제임스 토마스 헤론(왼쪽에서 세 번째)과 아내 헬렌(왼쪽에서 네 번째)이 결혼식을 기념해 사진을 찍고 있다. 패트릭 데이비드 앨런 헤론 제공
제임스가 군에 돌아가기로 하면서 가정의 평화는 또다시 요동쳤다. “아버지가 제대 후 영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군 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자원해서 한국행을 택했죠.”

1951년 다시 군대에 복귀한 제임스는 영국 왕립 노포크 연대 소속으로 그해 8월 한국으로 파병가는 배에 올랐다. 2개월 뒤 부산에 도착한 제임스는 최전방으로 투입됐고, 병사와 보급품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1951년 11월 어느 날, 제임스는 여느 하루와 마찬가지로 총알 등 보급품을 가지고 부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19살의 어린 병사가 운전대를 잡았고, 제임스는 조수석에 앉았다. 2개 갈림길이 있었는데, 운전병의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다. 실수의 대가는 엄청났다. 제임스가 탄 차가 지뢰를 밟았고, 그는 왼쪽 다리와 손을 크게 다쳤다. 운전병은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4, 5일 전에 지뢰를 밟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버지의 왼쪽 다리와 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살아날 가망이 없었죠.” 그해 11월 16일 제임스는 머나먼 한국 땅에서 숨을 거뒀고,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제임스의 전사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땅에 닿았다. 이 소식을 들은 헬렌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 “당시 8살이었던 큰 형 지미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담긴 전보가 밤늦게 도착했다고 말해줬습니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

패트릭 데이비드 앨런 헤론이 인터뷰하는 모습. 김태훈 PD
제임스의 전사로 가족은 한마디로 ‘풍비박산’ 났다. 당시 군인 부부가 결혼하면 둘 중 한 명이 전역을 해야 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역한 헬렌은 생활비를 제대로 마련할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이 제공하던 집에서도 6개월 내 짐을 싸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네 남매는 기숙학교, 고아원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첫째 지미는 숙식이 제공되는 군사학교에 갔다. 둘째 캐시도 수녀원에 딸린 학교로 진학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셋째 대니와 패트릭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헬렌은 새 남편과 재혼했다. 패트릭이 8살이 돼서야 헬렌이 찾아와 함께 살자고 할 만큼 모든 가족의 형편이 계속 좋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저와 셋째 형 대니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찾아오셨죠. 그때도 저와 대니 중 한 명만 새집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대니를 데려가려 했는데, 대니가 저를 데리고 가라고 해서 제가 어머니와 살게 됐습니다. 그때 새집에는 방이 없어 다 같이 살긴 어려웠습니다.”

1965년 드디어 흩어졌던 가족이 모두 모여 재회했다. 그러나 일시적이었다. 그렇게 한 번씩 만나 안부를 묻고 또 흩어져 살았다. 패트릭은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영국군이 어머니에게 유족 연금 지급을 거부한 것에 관해서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그 당시엔 다들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군에 갔고, 전사했던 것이었죠. 슬프지만 원망하지 않아요. 다만 어머니가 재혼했다고 영국군이 유족 연금을 못 준다고 결정한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둘째 누나 캐시가 영국군에 이의를 제기해 받긴 했습니다.”

■그리운 아버지

패트릭의 가족은 제임스를 계속 그리워했다. 제임스가 전사했을 때 4살밖에 안 된 셋째 대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국 런던 인근에 있는 비행장을 찾아 혹시나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을까 기웃거리기도 했다. “셋째 형 대니는 비행기 한 대가 내리는 걸 보고 신나서 뛰어가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대니가 아버지를 보러 비행장으로 가는 걸 누구도 막지 못했어요. 거기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아버지를 묻곤 했죠. 대니가 유독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헬렌도 제임스가 보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고인이 된 헬렌은 2001년 1월 10일 드디어 남편 곁에 묻혔다. 50년 만의 재회였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곁에 안장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둘째 누나 캐시가 어머니의 유해를 모시고 유엔기념공원으로 갔고, 그렇게 부모님은 영원히 함께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두 분 모두 행복할 것 같습니다.”

패트릭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다섯 차례나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두 분을 보살피고 있다. “아버지를 알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정말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아버지의 아들로서 자긍심을 느낍니다.”

영국=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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