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시절 도움받아 베푸는 삶 다짐
- 암투병 중에도 활동 완치판정 받아
- 뜻 있는 분들 봉사단에 참여했으면
“봉사는 시간이 남거나 여윳돈이 있어 하는 게 아닙니다. 작은 생필품 하나 나눌 수 있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죠. 저도 시작은 그랬어요. 그땐 40년이 넘게 할 줄 몰랐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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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철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마산지회장이 봉사 기념사진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
창원시자원봉사단체협의회 마산지회장 겸 경남참사랑봉사단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순철(68) 씨가 “다른 훌륭한 분들이 많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옛 마산시 산호동(합포동)에서 나고 자란 박 씨는 한평생 남을 위해 헌신해 온 지역 대표 ‘봉사왕’이다. 최근에도 소외된 이웃에겐 더 혹독한 겨울나기를 돕기 위해 평일 5일을 꽉 채워 봉사 여정에 나선다. 본업인 탕제원(湯劑院) 일은 제쳐둔 지 오래다.
처음부터 거창했던 건 아니다. 식당을 운영하던 1983년 지역 어르신 요양시설인 성로원과 보육시설인 애육원에 종종 방문해 그들에게 말동무가 되거나 물품을 전달하곤 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다.
박 씨는 “부친이 7년간 투병하다 돌아가시고 모친께서 홀로 채소를 팔아 5형제를 키우셨다. 이런 사정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꼬박 7년간 신문 배달을 했다”며 “당시 도움을 주시던 이웃이 있었는데 너무 고마워 훗날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두 팔을 걷어붙였다. 1980년대 중반 산호2동자율방범대원으로 활동하며 수년간 이웃의 안전을 지켰다. 비슷한 시기 통장직을 맡게 되자 산호2동청년회를 발족해 지역의 궂은일을 도맡았다.
생업을 잇기 위해 택시 기사가 된 1990년부터 10년간 가야백화점 앞 거리에서 교통질서 봉사를 하며 합포초등학교 학생들의 등하교 안전을 돕기도 했다. 그런데 선행을 거듭할수록 되레 어떤 방식으로 남을 도울지에 대한 고민이 늘어만 갔다고 한다.
“더 뜻깊은 일을 하고자 1995년 동료 택시 기사와 함께 ‘사랑실은교통봉사대 마창지대’를 창단했어요. 제복을 갖춰 입고 큰 목소리로 친절하게 승객을 대하며 잔돈을 모금했어요.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앓는 창원지역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17명이 수술대에 올랐고 대부분 건강을 되찾았다. 자매결연을 한 삼성창원병원이 입원비, 식대 등을 지원해 비용을 아끼는 데 보탬이 됐다.
그런 그에게도 고비가 찾아온다. 2008년 직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3기까지 진행된 터라 대장과 소장을 각각 30㎝절제하는 대수술을 했지만 2010년 암이 간까지 전이되면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투병 생활로 택시 기사까지 그만둬야 했던 박 씨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택했다. 2009년 경남참사랑봉사단을 창단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봉사활동과 무학산 산행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어르신 목욕과 도시락 배달, 지역 환경정화, 독거노인 집 청소, 차상위 계층 학자금 지원 등에 나서며 자신보다 이웃의 안위를 돌보는 데 매진했다.
2018년 예상치 못한 기적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완치 판정을 받은 셈이다. 병마와 싸우는 도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선행은 2021년 ‘창원시 자원 봉사왕’ 선정으로 이어져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을 올랐다.
박 씨는 “남을 돕는 봉사가 오히려 나를 살렸다. 봉사는 나를 내세우지 않고 어려운 분들에게 힘이 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며 “봉사자가 늘면 늘수록 도울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뜻이 있는 분들이 봉사단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