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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생산·수출로 동북아海 패권 장악…한반도 해양사 큰 획

가야사…세계속으로 <1> 해상교역 강국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1-04 19:37:0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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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의 자율·수평·다양성 지향
- 오늘날 자치분권시대에도 유효

- 김해 봉황동 금관가야 유적지
- 수로왕·허왕후·가야금 등 키워드
- 시공간 뛰어넘어 문화콘텐츠로

- 장보고 앞서 바닷길 개척한 가야
- 지중해 장악한 페니키아 닮은꼴

“가야 각국은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 속에 다양성을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에 기여했다.”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가야고분군(Gaya Tumuli) 7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내린 평가다. 자율성 수평 독창성 다양성 해양성…. 가야가 지향한 가치는 오늘날 자치 분권 시대에 대입해도 유효하다.

가야가 세계문화유산이 되다니! 놀랍고 자랑스러운 한편, 낯이 붉어진다. 기록이 없어 그동안 우리가 무시하고 천대해 온 그 가야사가 아니던가. 삼국시대의 주변부에서, 삼국의 부수적 존재로 여겨온 미완의 역사.

그 와중에 이웃 나라들, 특히 일본은 이 혼돈의 허를 찌르고 들어와 임나일본부니, 기마민족설이니, 고대 식민지니 역사를 왜곡해 가야를 뒤흔들었다. 그 시간이 300여 년. 갖은 억측과 추론이 난무했지만 가야는 굳건했다. 가야사가 인류사의 한 축이 됐다는 건 쾌거 이상의 문화충격이다. 흐린 눈을 닦고 불멸의 가야사를 다시 본다.

■가야는 ‘이야기 제국’

경남 김해시 봉황동 대성동고분군과 해반천 사이 ‘가야의 거리’에 들어선 가야의 기마무사 조형물. 철을 바탕으로 강성한 제국의 이미지를 풍긴다.
가야는 이름 부자다. 가락(駕洛) 또는 가라(加羅 伽羅 迦羅 柯羅)라 불려지며, 구야 아라 안라 임나란 이름도 가졌다. 한자 표기도 伽倻, 伽耶, 加耶식으로 여러 형태다. 후세 사가들도 헷갈렸을 법하다.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는 금관가야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 비화가야 등의 나라 이름이 등장한다. ‘○○가야’라는 호칭은 고려 이후 후세의 인식이란 것이 통설이다. 중국 위나라 진수가 쓴 역사책 ‘삼국지’ 위서동이전에는 한반도의 진한·변한을 서술하면서 24개국을 언급했다. 일본의 고대 역사서 ‘일본서기’에는 가라국 안라국 사이기국 기문국 등 14개가 등장한다. 사서에 등장하는 가야 이름이 많게는 32개다. 고대 한반도의 부족국가 또는 연맹체들이 그만큼 역동적이고 다양했음을 시사한다.

가야는 ‘이야기 제국(諸國)’이다. ‘제국(帝國, Empire)’이 아니다. 제국(帝國)은 다른 민족을 통치·통제하는 정치체계로 가야의 취향과 거리가 있다. 가야는 제국(帝國)이 되기 전 망해버렸고, 제국(諸國)으로 분립했기에 세계가 인정한 유산이 되었다. 역사의 역설이다.

가야는 이야기 부자다. 그 이야기가 엄청나다. 한반도 남부 좁은 영토에서 출토된 것이라곤 믿기 어려운 고 퀄리티의 각종 부장품, 지금 가져와 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세련된 장신구, 강력한 군사력을 말해주는 무기와 판갑옷, 충격적인 순장 풍습, 철과 토기를 만든 신기술, 그리고 활발한 국제교역의 흔적들.

가야의 이야기 담론은 고대에 정체되거나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5가야설, 연맹, 순장, 철의 왕국, 해상왕국, 토기 선진국, 수로왕, 허왕후, 우륵, 가야금, 김유신…. 이런 키워드가 2000여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실 세계의 문화관광 콘텐츠로, 판타지 소재로 되살아나고 있다. 가야사를 단순히 고대사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금관가야의 옛 항구가 자리했던 김해 봉황동 유적지. 연못 옆에 가야시대 고상가옥이 조성돼 있다.
■해상왕국으로의 시간여행

가야를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적을 찾는 것이다. 가야 시간여행의 첫 기항지는 김해 봉황동 유적지다. 봉황대와 회현리 패총전시관을 끼고 있는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 시대 생활 근거지로서 한 시대 동북아시아를 호령한 중계무역 기지였다. 봉황대 둔덕의 가락국 천제단을 중심으로, 남쪽 사면을 따라 가야 선착장과 고상가옥, 망루, 수혈주거 등이 들어서 있다. 얼핏 보면 드라마 세트장 같다. 바다가 사라진 가야의 옛 항구는 싱겁기 짝이 없는 연못 습지지만, 역사 상상력을 발동하면 2000여 년 전의 고(古) 김해만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곳에 해상교역을 주무른 가야인들이 있다.

다음 기항지는 봉황대 동남쪽의 봉황동 패총(조개더미). 1907년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발굴했다는 초기 철기시대 유적이다. 이곳에서 뼈나 뿔로 만든 도구, 토기, 석기, 가락바퀴, 불탄 쌀, 중국 동전, 일본 야요이 토기가 출토되었다. 중국 동전은 왕망의 신나라 때(기원전 14년) 만들어진 ‘화천(貨泉)’으로 유적 형성 시기와 당시 중국과 낙랑(평양), 김해, 왜국과의 교류 상황을 전해준다.

가야 시대 김해 연안, 즉 고 김해만은 지금보다 해수면이 5~6m 높아 봉황동 선착장은 천혜의 국제무역항이 될 수 있었다. 고 김해만을 근거지로 역사지도를 그려보면, 기원 전후 사천의 늑도 세력과 창원의 다호리 집단을 만나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함안의 아라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합천의 옥전고분 세력, 고령의 대가야 세력을 만나게 된다.

늑도 세력 외 가야 제국(諸國)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낙동강 연맹체를 이뤘을 것으로 본다.
초기 철기시대 유적지인 봉황동 패총전시관.
■사활을 건 해상교역 쟁탈전

가야의 해상교역 전통은 기원 전후 사천의 늑도 유적에서 시작되었다. 1985~1986년 부산대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 가야 사람과 개의 뼈가 출토되었고, 늑도식 토기와 반량전·오수전 같은 중국 화폐, 그리고 낙랑토기, 일본의 야요이 토기가 다량 확인되었다. 늑도는 초기 철기시대 가야의 국제무역항인데, 가락국이 등장하면서 김해로 주도권이 옮겨졌다.

늑도와 김해뿐만 아니라, 함안 아라가야와 고성 소가야의 해상교역 활동도 꽤 활발했던 것 같다. 아라가야는 마산만 진동을 통해 바다로 나갔고, 소가야는 고성을 거점으로 해양교역을 펼쳤다.

가야가 해상왕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철이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國出鐵’(국출철)이라 하여 ‘나라(가락국)에서 철이 생산되어 낙랑지역부터 왜까지 수출한다’고 적고 있다. 가야는 주변국들이 탐낼 만한 철을 생산·가공·유통하여 해상교역의 패권을 잡았다.

해상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조선술과 항해술, 철 제조 기술, 교역의 상술, 손재주 등 기술적 문화적 바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얘기다. 가야인들이 해양족 DNA를 지녔다는 것은 새로운 연구 대상이다. 9세기 해상왕으로 불린 신라 장보고의 길을 앞서 개척한 사람들이 바로 가야인이다.

■가야와 해양수도 부산

해상왕국 가야는 고대 지중해에서 패권을 장악한 페니키아와 닮은 데가 있다. 페니키아는 기원전 25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약 2000년간 존재했던 해양 국가다. 육지형 국가와 달리, 해양국가는 교역을 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강이나 해안을 따라 적절한 협력 거점에 영토를 형성한다.

페니키아의 본토는 김해 가락국과 마찬가지로 ‘여뀌잎처럼 좁은 땅’이었으나 전성기 때는 교역을 통해 로마보다 훨씬 넓은 활동 범위를 가졌다. 지중해를 무대로 활동하며 기술 문자 예술 등 다방면에 족적을 남겼으나 자체 역사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한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 세기, 페니키아에 대한 기록과 유물이 대거 발굴되면서 해양 제국의 면모가 밝혀졌는데 이런 상황이 가야사와 흡사하다. 페니키아와 가야는 닮은 꼴 세계적 해양 국가였다.

가야의 해상교역 전통은 ‘해양 수도 부산’ 담론으로 이어진다. 부산 신항이 낙동강 하구 끄트머리에 있다는 것은 고 김해만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이다. 부산항의 개항 원년을 1876년 부산항 강제 개항으로 잡느니, 1426년(세종 8년) 삼포 개항으로 잡느니 논쟁할 것도 없이, 해양 수도 부산의 웅혼한 뿌리는 가야의 해상왕국 스토리에 닿아 있다. 금관가야가 자리한 김해는 경남인데, 부산이 그걸 품을 수 있냐고? 이런 식의 협량한 시선으로는 글로벌 해양도시를 만들 수 없다. 해상왕국 가야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자율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

낙동강 하구에서는 지금 세계자연유산 등재, 국가도시공원, 맥도그린시티 조성 사업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여기에 가야의 역사 자산이 새로운 담론으로 논의되어야 하겠다. 낙동강 하구는 지역 초월, 문화 초월, 지형 초월의 통찰적 시선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야 할 신해양의 기수역이다.

글·사진=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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