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부산 원도심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 상징이다. 6·25 피란민들이 만들어낸 산복도로와 부산의 발전을 가져온 항만·해양산업이 공존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원도심 지역에 고도제한을 적용해 난개발을 막고 있다. 그러나 이는 쇠락하는 원도심의 개발을 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이에 원도심 기초지자체는 고도제한 해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동·서·영도·부산진구로 이뤄진 원도심 산복도로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부산시에 ‘원도심 일원 고도제한 해제(완화)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14일 밝혔다. 협의체는 건의서에서 “50여 년이 지난 부산의 고도제한 규제는 원도심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고 있다”며 “낙후된 원도심이 아닌, 미래 부산을 선도하는 원도심이 되기 위해선 고도제한 해제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각 구는 고도제한 완화를 위한 자체 용역을 통해 해제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구는 망양로 일대 고도제한 해제 타당성 용역 결과, 북항 재개발과 더불어 이미 지어진 고층 건축물들로 인해 현재 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중구 역시 망양로 고도지구 완화 검토 용역을 바탕으로 시 도시계획위원회에 해제 의견을 제출했다. 1964년 만들어진 산복도로 망양로는 부산진구~서구까지 8.9㎞에 이른다. 서구 역시 2022년 9월 용역을 진행해 서·동대신 등 4개 지구의 고도제한 해제가 타당하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협의체 측은 지형상 경사지가 많아 고도제한이 개발을 막는 걸림돌이라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가 선행해야 주거환경 개선 방안이 뒤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구는 재개발·재건축 전담팀을 통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준비하는 한편, 원활한 정비사업을 위해 고도제한 완화를 계속해서 요구 중이다. 신창식(63) 중구전통시장상인연합회장은 “원도심 일대의 고도제한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이대로 소멸할 수도 있다”며 “청년층 유입과 개발 효과 등을 고려할 땐 고도제한 해제는 원도심의 숙원 사업”이라고 말했다. 시는 산복도로 고도제한을 정비하는 ‘2030 부산도시관리계획’ 용역을 진행 중이며, 오는 6월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조건적 고도제한 해제보다는 보존할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성대학교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고도제한 해제는 난개발을 불러 일으켜 부산의 정체성을 해칠 수 있다”며 “시범지구를 선정해 점진적인 작업을 동반하면서 공공이 저층 주거의 질적 보완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