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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44호분은 ‘가야 피라미드’…전문 토목집단의 솜씨

가야사…세계속으로 <3> 고령 지산동 고분군-순장과 권력

  • 박창희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4-01-21 19:16:21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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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대규모 순장 확인 무덤
- 지름 27m 순장자 40여 명 달해
- 여러 석실 정밀 축조기술 자랑
- 사후세계 믿은 계세사상도 엿봐

- 금귀걸이·청동그릇 생활상 확인
- 꿩·청어 뼈 담은 토기 식단 추측
- 日과 교류 증명 야광조개국자 등
- 찬란했던 대가야 문화 위상 대변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에 누워 왕의 하관을 맞았다. 늙은 부부가 머리와 다리를 거꾸로 포개고 한 구덩이 속에 누웠고 젊은 부부는 아이를 사이에 끼고 모로 누워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아직 돌뚜껑이 덮이지 않은 구덩이 위로 물오른 봄 숲의 비릿한 향기가 끼쳐왔다. 하늘은 파랬고, 가까웠다. 구덩이 속에 누운 여자가 그 하늘을 만져볼 듯 구덩이 밖으로 손을 뻗쳤으나 아무도 그 손을 본 사람은 없었다. 흔히 돌뚜껑이 덮이기 직전에 여자들은 가랑이 사이로 때 아닌 생리혈을 왈칵 쏟아냈고 피 냄새를 맡은 개미들이 몰려들었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의 지산동 고분 전경. 대가야읍을 감싼 주산의 남쪽 능선을 200여 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밤하늘의 별처럼 수놓고 있다. 고령군청 제공
김훈의 소설 ‘현(絃)의 노래’에는 산 채로 순장(殉葬)당하는 이들의 절규가 처절하게 묘사된다. 행간에 작가의 한숨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가야의 순장은 당시 권력 운용의 방식이자 풍습인 듯하다. 김해 대성동과 함안 말이산, 부산 복천동 고분에서도 순장이 확인됐고, 대가야의 본거지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순장은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현의 노래’는 가야금 창시자인 우륵을 다루면서 대가야 순장을 극적 모티브로 끌어들였다. 읽고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

■금산재에서 굽어보는 고령

경북 고령에서 출토된 대가야 왕관. 박창희 제공
대구에서 국도를 통해 고령읍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금산재. 이곳에서 고령 일대를 바라보면 멀리 가야산이 가물거리고 고령 주산(主山)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주산 능선에 웅긋붕긋한 고분군이 진을 치고 있다. 대가야 건국설화가 깃든 가야산에서 발원한 가천과 야천, 두 강이 만나는 회천 주변에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택리지’에서 다른 곳보다 소출이 10배에 이른다고 말한 옥토다.

대가야의 흔적을 찾는 고령 역사여행의 출발지는 대가야 왕들이 순장자들을 품고 잠든 지산동 고분군이다. 대가야박물관을 기점으로 주산(해발 310m)을 오른다. 주산은 임금(主)의 산이다. 능선 따라 볼록볼록 솟아오른 무수한 무덤들. 권력을 끌어안고 역사가 된 고분들. 능선 중턱에서 굽어 보니 밤하늘 북두칠성이 능선을 수놓은듯 묘한 신비로움에 휩싸인다. 흙을 쌓은 형태가 남아 있는 봉토분이 200여 기, 봉분이 없어진 소형분까지 합치면 대략 수천 기를 헤아린다. 대가야에 ‘대(大)’자가 붙은 이유를 알겠다.

■악습과 풍습 사이

정말로 산 사람을 순장했을까. 연구자들은 출토된 유물들을 볼때 신분이 낮은 시녀 등은 강제로 죽였을 가능성이 크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죽었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는다. 무덤의 주인공이 왕 같은 높은 사람이면 그 신하나 심지어 가족까지 같이 묻었다. 기본적으로 생매장을 하게 하고 같이 묻을 사람들을 먼저 살해한 다음 시신을 묻기도 했다. 이는 순장자들의 깨진 두개골 등 상처가 증언하고 있다.

순장이 가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 부여조에는 ‘귀인이 죽으면 사람을 죽여서 순장을 하니 그 수가 많을 때는 100명에 이르렀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신라)이 502년 봄 명령을 내려 순장을 금했다’고 적고 있다.

순장은 사회 발전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악습이다.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쥔 왕이 엄청난 무덤을 만들어 권력을 과시하고 왕권 유지를 도모한 것은 저급한 단계의 통치에 해당한다. 율령이란 법 질서가 확립되기 전의 사회 모습이다.

가야인들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삶의 세계가 죽음 이후로 이어진다는 계세(繼世) 사상, 영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혼불멸 사상이 가야인의 의식을 지배했기에 순장이 폭넓게 행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44호 고분의 충격

지산동 44호분의 원형을 살려 만든 대가야박물관의 대가야왕릉전시관. 박창희 제공
지산동 44호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순장이 확인된 무덤이다. 일제가 파헤치기도 했지만 1977년 계명대박물관이 이 무덤을 공개했을 때 학계는 물론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무덤의 지름이 27m, 높이가 6m로 컸고, 확인된 순장자가 무려 40여 명에 달했다.

44호분의 구조는 중앙에 3기의 대형 석실을 만들고 그 둘레에 방사선형으로 32기의 소형 석실을 배치했다. 각 석실에는 1~3단의 호석(護石)을 둘리고 그 위에 하나의 봉분을 덮었다. 땅을 파서 고르고, 돌벽과 돌널을 정밀하게 축조하고, 대형 덮개돌을 다듬어 나르고, 4~6m 높이의 봉토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쌓은 것은 전문기술자가 아니고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학자들은 5세기 후반쯤 대가야왕 휘하에 토목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전문 집단이 국가기구처럼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삼국시대 사례를 보면 왕의 장례는 통상 3년상이며, 순장에 따른 단계별 의례(순장례)도 행해졌을 것이다.

44호분이 세상에 공개되자 언론들은 ‘가야의 피라미드’가 나왔다면서 흥분했다. 이 흥분과 충격이 재현된 곳이 2000년 10월 개관한 지산동 ‘대가야왕릉전시관’이다. 전시관의 문이 곧 무덤 출입구다. 핀라이트 등 최소한의 빛만 허용한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긴장감을 유발한다. 마치 판타지 영화 세트 속에 잠입한 것 같다. 관람객들은 원형의 무덤 내부를 따라가거나, 중간에 무덤 위로 설치해 놓은 발코니에 서서 무덤의 구조를 자세하게 살필 수 있다.

■가야인들의 생활상

순장곽에서는 인골과 더불어 다양하고 희귀한 부장품이 대거 발견되었다. 세 사람이 포개져 있는가 하면 남녀 어린이가 머리를 맞대고 누운 방도 있었다. 추정컨대 말갖춤새가 나온 석실엔 왕의 마부가 묻혔을 테고, 철제투구와 무기가 나온 곳엔 왕의 호위무사가 순장됐을 것이다. 또 예쁜 금귀걸이가 나온 곳은 왕을 모시던 시녀가, 옷감 같은 섬유질이 추출된 방에선 왕의 의복 담당이 순장되었을 테다.

순장자 석실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식물이 토기에 담겨진 채 발견되었다. 닭과 꿩의 뼈가 나왔고, 누치 청어 대구와 같은 생선뼈, 고둥 소라 굴 같은 해산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식단을 엿보게 한다. 내륙인 고령에서 해산물이 나왔다는 것은 이때 대가야가 해상교역 루트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당시 낙동강 수로는 신라가 장악한 터라 아마도 섬진강 수계를 통한 서부 경남과 남해안 교역루트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왕릉전시관에는 관람로를 따라 44호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금귀걸이, 은장식쇠창, 야광조개국자, 중국 또는 백제계 등잔과 청동그릇 등은 번성했던 대가야의 문화와 대외 교류를 알려준다. 야광조개국자는 일본 오키나와 유구국과의 교류를 말해주는 희귀 유물이다.

■하지왕, 중국 관작 받아

대가야는 400년 고구려 남정(南征)에 의한 금관가야의 타격 이후 역사 전면에 부상해 562년 신라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160여 년 뚜렷한 역사를 이었다. 5세기 후반~6세기 초 대가야는 전·후기 가야 역사상 최대 판도를 형성했다. 고령을 거점으로 황강 수계, 남강 중·상류, 금강 상류, 섬진강 수계, 남해안 일대로 뻗어나간 넓은 권역은 당시 백제 영역에 버금갈 정도였다.

472년 대가야 하지왕(荷知王)은 중국 남제로부터 ‘보국장군(輔國將軍) 본국왕(本國王)’이란 관작을 제수 받았다. 이때 대가야는 임실 남원 곡성 하동 광양을 아우르는 섬진강 수계와 여수 순천을 포함한 남해안까지 진출해 최대 판도의 절정기를 구가했다. 5세기 후반 대가야 문화는 일본열도 곳곳으로 퍼졌다. 말(馬)과 그 사육 방법, 문자 사용 같은 선진 문물을 전해주며 일본 고대문화를 자극했다.

지산동 44호분은 5세기 말 잘 나가던 대가야 실상을 웅변한다. 일부 학자들은 44호분의 주인공이 하지왕일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증거는 없다.

박창희 경성대 교수(‘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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