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시아 국제회의 열기도
가야는 흔히 전기엔 김해 금관가야, 후기엔 고령 대가야가 맹주였다고 하고 그런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최근 아라가야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다. 말이산 고분에서 고대 가야의 별자리가 발견됐다고 하고, 가야 최초의 봉황 장식 금동관이 복원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아라가야에 뭔가 있었네”하고 관심을 보인다. 가야 전기·후기를 통틀어 아라가야가 이인자였다는 얘기도 낯설지 않다.
그런 정황을 보여주는 장면이 ‘일본서기’에 실려 있다. ‘일본서기’는 왜곡 과장이 심해 사료 가치를 낮게 보지만, 최근엔 이를 적극적으로 해석, 가야사의 빈 곳을 채우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가 529년의 ‘안라 고당회의(高堂會議)’다. 아라가야 주최로 6세기에 동아시아 국제회담을 열었다는 것이다.
가야를 대표한 아라가야와 백제·신라·왜의 사신이 한곳에 모였다. 가야의 상황은 다급했다. 금관가야와 인근의 탁기탄이 신라의 침입을 받았고, 백제 성왕은 섬진강 하류로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회의 개최 목적은 양국의 세력을 미리 차단하는 것. 회의 참석자는 아라가야 왕과 대인(大人), 신라 사신 2명, 왜 사신 1명이었다. 새로 만든 높은 당(고당) 위에서 회의가 진행됐다.
고당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된 건 아니지만, 아라가야가 이를 주도하고 새로운 강소국(强小國)의 면모를 보인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일본서기’ 흠명기(544년)에는 “가야 여러 나라(임나)는 안라를 형(兄) 혹은 아버지(父)로 여겨 오로지 안라의 뜻을 따른다”고 전하고 있다. 2018년 함안 가야리 왕성 유적에서 고당 터가 발굴되어 이상의 기록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